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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DMZ를 다시 생각하다

경기학광장Vol.3 _ Column & Study

< DMZ를 다시 생각하다 >


- 경기학광장Vol.3 _ Column & Study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년 전쯤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위치한 경순왕릉을 취재하러 찾아간 적이 있다. 당시 경순왕릉은 민간인이 쉽게 들어갈 수 있은 곳이 아니었다. 민통선 초병들에게 기자라고 신분을 밝혔으나 퇴짜를 맞았다. 사단장 엄명이라 했다. 할 수 없이, 장남면사무소를 찾아가 사정을 밝히니, 계장이 앞장을 서 주었다. 철책 너머로 대남방송이 왕왕 울리는 경순왕릉 앞에 앉아서 한참 임진강을 내려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신라의 마지막 왕이 어쩌다 여기에 묻혔는지는 잊었지만, 저 멀리 흘러가던 임진강물의 반짝임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한참 시간이 흘러 장단군 지역의 역사를 더듬어볼 기회가 또 있었다. 등록문화재 제 76호인 장단면사무소 관련 자료를 조사할 때였다. 경의선이 지나가는 교통요지이자, 곡창이었던 장단군의 중심지 장단면은 일제강점기에 번창하던 곳이다. 1934년 지어진 장단면사무소는 화려한 면사무소를 준공해 당시 유일한 건축 잡지 <조선과 건축>에 소개될 정도였다.
하지만 해방 이후 장단군은 38선이 지나면서 둘로 나뉘었다. 장단면은 남쪽 땅이었으나, 휴전이 이뤄졌을 때 장단면의 2개리는 북쪽 땅이 되었다. 장단면사무소는 지어진 지 10여년 만에 잡초와 덩굴로 덮인 건물로 버려졌다. 장단면은 결국 1962년 파주로 편입되었다. 경기도 장단군이라는 지명은 사라졌다. 군사분계선 남과 북의 장단 사람들에게 지난 70년은 어떤 세월이었을까?

임진각 자유의 다리

DMZ? PMZ 아니었나?

“여기는 진실을 묻어두어야 평화가 유지되는 곳이야.”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한국군 장성 표 장군(기세봉)이 위협하듯 내뱉는 대사다. 표 장군은 인민군 중사 오경필(송강호)과 한국군 병장 이수혁(이병헌) 사건을 조사하러온 한국계 스위스인 소피 장 소령(이영애)에게 위협하듯 저 대사를 던진다.
‘진실을 은폐해야 평화가 유지된다.’ 더러 그런 경우가 없지 않다는 걸, 우리 모두 삶의 경험으로 안다. 하지만 한 겹만 들춰지면, 가짜 평화는 박살난다. 더구나 표 장군의 평화는 ‘적대적 의존관계’로 유지되는 위태로운 평화다. ‘선거에 유리하게 휴전선 부근에서 총 한 방 쏴 달라’는 요청과 하나의 맥으로 닿아 있다. 진실은 언제까지나 은폐될 수 없다.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은 완벽한 무장지대다. DMZ가 아니라 차라리 PMZ(Perfect Militarized Zone)라고 불러야 했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은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선으로부터 각기 2㎞씩 후퇴함으로써 적대 군대 간에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한다.”(제1조 1항)
서해에서 동해까지 248㎞의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남북 각각 2 ㎞ 구역을 설정하면, 연면적이 907㎢(2억7,500만 평), 서울시보다 1.5배 정도 넓다. ‘적대행위방지’ 가 목적이었던 비무장지대가 무장지대로 바뀌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초소를 설치하면 우리도, 상대방이 화기와 병력을 배치하면 우리도, 비무장지대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무장 병력이 밀집된 무장지대가 되었다.
반세기 가까이 이어지던 무한경쟁 악순환은 2000년 6·15를 계기로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면서, 좀처럼 해체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2018년 9·19 군사분야 남북합의서에 이르기까지 18년이 걸렸다. 2019년 6월 강원도 고성 최동북단 GP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불과 5개월 지난 2019년 11월 현재 9·19 군사합의는 휴지조각처럼 취급되기 일쑤다.
비무장지대는 여전히 아픈 손가락이다. 아니, 곪은 손가락이다. 분단 시스템 아래 여전히 돌아가는 반 평화회로의 현장이다.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 나오는 “전쟁은 평화다”라는 구호만큼 반어적이지는 않지만 만만찮은 역설이 지배하는 공간이다. 비무장지대의 역설은 물리적 공간성을 초월해 우리의 심성을 지배한다. 안보가 중요하잖아, 안 그래? 안보 없이는 평화도 뭐도 없는 거야!

‘DMZ 생태관광’의 참 가치

2000년 이래 비무장지대를 평화와 생태의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여러 차례 제시되었다. 몇 가지만 꼽아 보자. 2003년 DMZ 생태관광추진 전략, 2007년 평화생명지대 관광자원 전략, 2009년 DMZ 접경지역 중심의 한반도 생태평화벨트 조성, 2014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 지역 추진…….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제기된 DMZ 세계평화공원 구상도 빼놓을 수 없겠다.
남북관계가 일진일퇴, 냉탕과 온탕을 오고가는 상황과는 무관하게 비무장지대의 상징성을 살려 아픈 손가락을 자랑스러운 손가락으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야 나무랄 데가 없다.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누가 경기도지사·강원도지사가 되든, DMZ를 본때 있게 살려보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라는 대의와 분단의 고통을 직접 짊어지고 살았던 이른바 ‘접경지역’ 주민들의 실리를 외면할 수 없고, 외면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생태를 관광과 연결시키려는 발상이 가장 먼저 눈에 거슬린다. 물론 ‘안보’와 ‘관광’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결합한 ‘안보관광’보다야 생태관광이 낫다. 이를테면 강원도 양구군 서화면 대왕산 용늪을 돌아보면서 우리나라 람사르 협약 보호 습지 1호의 생태를 감상하는 일이, 펀치볼 을지 전망대에 가서 요령부득의 설명을 듣는 일보다 한결 값지다. 경기도 연천군 중면 태풍 전망대보다는 조금 더 들어가 철새 탐방을 하는 쪽이 더 유익하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안보관광’이 전혀 쓸모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땅굴을 걸어보며 전쟁과 비정규전의 의미를 되짚어볼 수도 있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가서 해방 전후 역사부터 격동의 현대사와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까지 반추해 보는 일도 무익하지 않다. 다만 구태의연한 스토리텔링을 반복적으로 들어야 하는 일은 고역이다. 남한 사람 내부에서 작동하는 반공의 회로판을 전제하지 않으면 조 리도 잘 닿지 않는 이야기들은 소화하기 힘들다. 분단의 비극과 전쟁의 공포를 소비하는 기분이랄까.
‘생태관광’ 얘기로 다시 돌아와 보자. 흔히 DMZ는 50년 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생태계의 보물 곳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왕산 용늪으로 가는 길에, 태풍 전망대로 가는 길에, 곳곳에서 쉽게 눈에 띄는, 선명한 지뢰 표지판은 인간의 발길 운운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비무장지대 산양과 멧돼지들은 용케 지뢰를 피한 탓에 살아 있는 게 아닐까. 시계(視界) 확보를 위해 주기적으로 화염을 방사했던 지역에서 멸종 위기 희귀식물 군락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그들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증거로 봐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생태계는 보전되었으니 다행이다. 이곳을 생태관광이라는 명목으로 다시 개방하면 머지않아 생태계는 또 무너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기우였으면 좋겠다. 남북관계가 밝아질 전망이 보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접경지역 부동산 뉴스는 마음을 어둡게 한다.
생태 보고는 인간이 간섭하지 않을 때 생성된다. 미래의 평화는 인간과 인간 간의 평화를 넘어서, 인간과 동물, 인간과 자연 사이의 평화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DMZ 생태관광을 구상하고 계획 하는 주체들도 아마 모르지 않을 것이다. DMZ 생태관광은 그동안 갈 수 없었던 곳에 가서 진귀한 생태계를 보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같은 희귀사례가 생성되게 된 경위를 되돌아보 는 계기여야 하지 않을까?


구 장단면 사무소

평화의 철학이 먼저다

지난해 가을 임진각 일대를 찬찬히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자유의 다리부터 평화누리까지 눈여겨 볼만한 공간이 많았다. 정작 임진각은 옥상의 관망대 외에는 이렇다 할 시설이 보이지 않았다. 가장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은 임진각 아래 소규모 놀이동산이었다. 임진각이 분단의 비극, 이산가족의 한과 관련된 장소이므로 유희용 탈 것 따위는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꼰대의식’이 발동해서는 아니다. 관광지이니 놀이시설이 있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문제는 놀이시설이 임진각을 어수선한 잡동사니의 집합소처럼 보이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통일공원’이라 이름 붙은 임진각 뒤편 공원과 놀이시설은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을 실감할 수 있는 장소다. 통일공원에는 다양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조형물들은 설립 시기도, 설립 주체가 제각각이다.
형태와 미관이 다른 조형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어리둥절해진다. 임진강 지역 전적비, 미 육군 제187공수전투단 기념비, 미국 전 대통령 트루만 동상, 인디언 머리 형상 기념비, 김포국제공항 폭발사고 희생자 추모비, 통일의 탑, 미얀마 아웅산 순국 외교사절 위령탑과 충혼비, 황진이 비, 미군참전 기념비, 민족정기 현창탑, 세 여인상(신사임당·유관순·이화림)……. 도대체 어떤 맥락에서 이런 조형물들이 들어섰을까? 게다가 누가 세웠느냐를 두고 신흥 종교 단체에서 세웠다는 의혹이 짙은 조형물까지 있다.
일사불란하게 체계적으로 세워졌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분단 이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격랑을 거치면서, 평화의 관념이 바뀌었고, 조형물을 세운 주체는 자신의 가치 관에 따라 당대의 표현 양식으로 세운 조형물들이니, 둘러보면서 한국과 한국인의 내면 변화를 한 장소에서 따져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점은 분단과 전쟁을 체험한 나라이면서도 평화의 철학이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저 우연히 쌓이고 그 위에 덧쌓인 지층의 중첩만 감지된다.
2000년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밝힌 여러 가지 DMZ 관련 구상과 계획이 반짝 관심에 그쳤던 이유는 남북관계의 해빙- 냉각 반복에 근본 원인이 있다. 남북관계가 꾸준히 개선되었더라면 DMZ에 대한 관심은 계속 증가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가끔은 그게 오히려 다행이 아닐까라는 엉뚱한 발상도 해 보게 된다. “통일 대박”이라는 속은 텅텅 빈 수사로 대형 시설과 건물이나 마구 세웠다면, 비무장지대 전체가 임진각 ‘통일공원’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잡동사니가 되지는 않았을까?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소극적 평화와는 달리 모든 갈등과 폭력을 넘어서고자 하는 적극적 평화는 열린 개념이다. 모두가 동의하는 평화의 개념에 도달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오 히려 그렇기에 구성원들이 어떤 평화를 원하며 추구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거듭 던져져야 마땅하다. 평화의 철학은 그 과정에서 깊어지고, 정련되어야 한다. 모든 DMZ 프로젝트는 평화의 철학, 평화를 향한 열망 위에서 구상되고 설계되어야 하지 않을까.


경순왕릉

역사의 한을 달래는 예술의 상상력을

올해 9월 ‘Let’s DMZ’라는 행사가 경기도 북부 곳곳에서 열렸다. 연천 장남통일바라기축제장과 김포 아트빌리지 일원에서 선보인 ‘ART DMZ’, 고양 킨텍스의 ‘DMZ 페스타’와 ‘DMZ 포럼 2019’,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막을 연 ‘PEACE MAKER CONCERT’는 문화와 예술의 힘으로 우리 모두의 비무장화, 평화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듯하다. 부족한 점, 아쉬웠던 점은 앞으로 계속 보완해야 하겠지만, 예술의 상상력과 문화의 힘을 DMZ와 적극 연계하려 한 시도는 반갑다.
남북관계가 2018년 극적 해빙 이후 2019년 하반기 급속한 결빙 상태로 변했음에도,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DMZ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는다고 거듭 천명한 점도 마음이 놓인다. 이화영 경 기도 평화부지사는 “DMZ 세계 관광지 정책을 통해 기억의 박물관을 지으려고 하고 있다.”(<머니투데이> 11월 5일 인터뷰)고 밝혔고, 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는 “경기도를 대표하는 최고의 브랜 드 자산은 DMZ”(<연합뉴스> 11월 5일)라고 주장했다. 깊은 ‘평화의 철학’을 바탕에 둔 지속적인 관심이 계속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사족을 하나 보태고 싶다. 앞으로 DMZ구상에 따라 시설이나 건축물을 지을 때는 비보풍수(裨補風水)의 정신을 최대한 살려 달라는 당부다. 가급적 새로운 무엇을 만들기 위해 자연과 생태를 교란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제1일 터이나, 마지못해 세워야 한다면 지난 세월의 한을 달래는 장소와 방법을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 철원 철새 도래지

글 양훈도 경인일보에 24년 간 재직했다. 기자 생활 그만두고 늦깎이로 북한학을 전공했으나, 기자 시절 경기도를 돌아다니며 지역 르포를 쓴 경험 덕분에 경기도 생활사에 관심이 많다. 근대문화 흔적들이 품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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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경기학광장 Vol.3 _ 2019 겨울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19.12.18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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