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보기

경기문화재단

꿈엔들 잊힐 리야 영세불망永世不忘 어비울, 용인시 어비리

경기학광장Vol.4 _ Village & History

< 꿈엔들 잊힐 리야 영세불망永世不忘 어비울, 용인시 어비리 >


- 경기학광장Vol.4 _ Village & History -



경기학광장은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가 발간하는 계간지입니다. 경기도와 31개 시군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고자 합니다. 전문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경기학광장의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
고향의 봄(홍난파 작곡, 이원수 작사)은 1926년 만들어진 이래 시대를 넘나들며 불려온 동요이다. ‘고향의 봄’ 속 우리 고향의 모습은 눈 감으면 손에 잡힐 듯 따뜻하고 정겹다. 낮은 동산에 꽃들이 흐트러지고 실개천에서 물고기 잡는 아이들, 함께 흥얼거리며 힘든 농사일 중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마을공동체의 모습이 그려진다.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2017년 승격)에 위치한 어비리(魚肥里)는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정겨운 고향이다. 본래 어비울(村)이라 불린 이 곳은 1971년 12월에 어비울 저수지(이동저수지) 제방이 완공되기 전까지 600여 년의 전통과 역사를 지닌 마을이었다. 지금은 원어비울(元魚肥村) 마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수몰되어 경기도 최대규모의 담수량을 자랑하는 ‘이동저수지’로 명명되고 있다. 이동(二東)읍의 명칭은 원어비울을 가로지르는 어비천(川)을 사이에 둔 상동촌(上東村)과 하동촌(下東村)이라는 두 마을을 하나로 합쳐서 만들어진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이동읍이라는 명칭의 유래에서 알 수 있듯 역사가 깊고 넓은 지역에 해당한 원어비울은 현대화를 거치면서 거대한 제방 안의 깊은 물 속으로 잠기고 말았다.



어비리 저수지(이동 저수지) 전경


어비울 영세불망비 비각


동도사 석불좌상


물고기가 살찌는 풍요로운 마을, 어비리魚肥里

어비리 지명의 유래는 지형의 생김새를 딴 것에서부터 역사적 사건, 전설적인 설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어비울은 물고기 어(魚)에 날개 비(飛)라 하여 “지형이 고기의 날개 지느러미와 같이 생겨 어비촌이다”라고 용인시 ‘연혁대장’에서 전하고 있다. 본래 마을 가운데를 진위천의 본류가 흘렀고 물이 깊었는데 1960~70년 사이 정부에서 수역마을(어비3리) 쪽에 제방을 쌓아 저수지가 생 겼고 어비울에 물고기가 많이 살게 되어 날개 비에서 살찔 비(肥) 로 바뀌었다.
구한말 명성황후시해사건이 벌어지고, 1896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아관파천 하던 시기에 친일 개화파인 김홍집 내각이 붕괴하였다. 당시 탁지부 대신이었던 어윤중이 역적으로 몰려 여장을 한 채 가마를 타고 고향인 보은으로 낙향하던 중 이곳 주막에 잠시 쉬어가게 되었다. 주변을 살피던 어윤중이 행인에게 이곳의 지역명을 묻자 “용인의 어비울이올시다”라고 대답하였는데, 어비울의 한자 뜻이 고기 어자, 슬플 비자, 답답할 울자라고 했다. 불길한 느낌이 든 어윤중은 이 말을 듣자마자 길을 재촉하여 막 떠나려 할 때 당시 용인 군수 김순승을 비롯한 마을 주민 정원로 등이 나타나서 쇠도리깨로 어윤중을 타살하였다. 그 후 사람들은 어비울(魚悲鬱)을 어비리(魚肥里)로 고쳤더니 후에 저수지가 되었다고 한다.
어비는 본래 물고기로 만든 비료를 뜻하는 한자어이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물고기가 살찐다’라는 뜻이 되는데 실제로 마을에 저수지가 생겨서 말 그대로 ‘고기가 살찌는 곳’이 되었다. 조선초기에 정착한 세거가문 강릉 김씨 족보에도 이미 어비촌으로 나타난다. 다른 유래는 마을에서 식수와 관개용수 마련을 위한 도랑 작업을 하던 중 마른 땅에서 황금빛 붕어가 튀어 나르니 좋은 징조라 하여 마을 이름을 물고기가 나는 어비(魚飛)촌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훗날 고기가 풍성하게 살찌고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의미에서 어비(魚肥)촌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어비울에 공동체가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13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순흥 안씨(順興 安氏)를 시작으로 강릉 김씨(江陵 金氏)와 청송 심씨(靑松 沈氏) 등이 정착하면서 600년의 마을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경기 일원에서 보기 드문 전통과 역사가 있는 마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비울의 주요 세거성씨 중 1397년(태조 6) 순흥 안씨 6세조인 지돈녕공 안이녕이 고려말 정란을 피하여 낙향, 어비천 변에 정착한 것이 어비울 마을의 기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어 1408년(태종 8) 강릉 김씨 22세조인 참의공 김귀성이 앞서 기록한 순흥 안씨 안이녕의 사위가 된 것을 계기로 어비울에 정착하면서 강릉 김씨의 터전으로 잡았다. 다음으로 1565년(명종 20) 청송 심씨 11세조인 종사랑공 심수륜이 낙향하면서 청송 심씨가 어비울에 정착한다. 1766년(영조 42)에 청주 한씨 21세조인 정지빈이 어비울에 분가하면서 총 4개의 세거 성씨가 어비울에 자리를 잡는다. 주요 세거가문의 족보기록을 보면 어비울에서 공동체가 정착하고 삶을 영위한 시기와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어비낙조 풍광


아트스페이스 어비움 야경

사라진 마을, 사라진 공동체

어비리는 맑은 물이 흐르고 기름진 땅에서 해마다 풍작을 거두는 풍요로운 농촌 마을이었다. 마을의 주변으로 병풍처럼 산들로 쌓여 있어 안정적이며, 일몰이 되면 해넘이의 장관이 펼쳐진다. 세거가문인 강릉 김씨의 24세조 회와공 김언신은 ‘어동팔경魚洞八景’을 노래했는데, 그중 ‘어비낙조’는 현재의 ‘용인 8경’ 중 하나로 불리고 있다. 저수지로 변해버린 지금의 모습은 저수지 수면과 황금 들판을 동시에 붉게 적시는 낙조의 황홀함으로 표현된다. 마을에는 수령이 500년은 족히 넘은 신수(神樹)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수몰로 잘려서 땔감으로 팔려나가는 비운을 겪었다. 그 흔적으로 마을에서 보관하던 뿌리마저 사라졌다. 수백년을 살아온 마을에는 대동(大同)의 전통이 살아있었다.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대동제(大同祭)가 해마다 열렸다. 집마다 축언을 하고, 천지 만물에 대한 감사함을 전함은 물론 조상 대대로 이어온 전통을 지키는 것이 마을공동체의 신념이었을 것이다. 마을에는 ‘금단사’라는 사찰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금단사는 이후 마을에서 재건하였는데 ‘동도사’로 불렸다. 이 역시 수몰로 인해 현재의 어비1리 마을회 관에서 어진로를 따라 동쪽으로 약 500m 지점으로 이전하였다. 다행인 것은 1963년 ‘어비리 삼층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194호)’과 ‘동도사 석불좌상’을 현재의 동도사로 옮겨왔다. 정부의 시책에 의해 수몰된 마을공동체는 뿌리까지 해체되었고, 사라진 마을은 남아 있는 몇 가지의 단서로만 추억하게 되었다.

1952년부터 71년까지 20년의 긴 시간, 이동면 원어비울에서 살았던 주민들에겐 잊을 수 없는 세월이었을 것이다. 600년을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마을 수몰사의 전 과정이 이루어진 시기이기 때 문이다. 한국전쟁이 종전되기 이전에 정부 시책에 의해 이동저수지 기초측량조사 작업이 1952년 4월 시작되었다. 민심은 동요하였고 1956년부터 농지의 암매매가 성행했다. 주민들은 ‘어비울 저수지 공사반대투쟁위원회(대표 심응두)’를 결성했다. 국회와 농림부, 언론사 등에 반대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하였고, 물리적인 저지 투쟁에 돌입했다. 1962년에 세부측량 작업을 저지하기 위해 권중식, 김영래 등의 주민들은 물리적인 충돌도 감수했다. 63년에는 강경순 농림부장관, 박창원 경기도지사 등이 현장점검을 나왔을 때 대담을 통해 공사의 부당함을 강조하고 강력히 항의했다. 정부는 수몰 지역의 공동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저수지 공사를 감행했고, 결국 힘없는 마을은 1967년 마을 공회당에서 눈물의 고별식을 마친다. 1969년 6월 담수가 시작되었고, 1971년 12월 어비리 저수지, 일명 이동저수지가 완공된다. 규모는 관개 면적 3,152㏊, 유효 저수량 17,200,000t, 제방 길이 666m, 제방 높이 18m로 경기도 최대크기이다.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맞서다 끝내 떠나고 마을은 저수지 아래로 영원히 잠들었다. 제방 공사로 어비울 전역에 농지 450여 정보, 가옥 370여 호가 수몰되면서 2천351명은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어비울 저수지 드론전경


영세불망비

다시, 고향의 봄은 오는가?

수몰 투쟁 가운데서도 어비울 주민들은 천혜의 사시사철 풍부한 물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했던 전화사업을 벌였다. 이는 전국적으로도 보기 드문 앞서가는 문화농촌의 자발적 실천이었다. 1961년 개화된 문화농촌을 만들기 위해 주민들은 수력발전추진위원회(대표 심현옥)를 결성한다. 발전에 소요되는 시설, 규모, 제반 경비 등 사업 시행 계획을 수립한다.
어비울 아랫거리 마을 어귀에 위치한 물레방앗간의 수차를 가동 하는 수력 방식이었다. 100여 곳의 보안등과 80여 호 가정의 전등을 밝히는 역사적인 사업이었다. 아마 최근 인기리에 방영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연출 이정효)’에 등장하는 북한 마을의 저녁 풍경쯤이 연상된다. 1962년에는 전주가 세워지고 내외선 설치공사가 이뤄졌다. 마침내 점등식이 거행되었고, 어비울의 밤을 밝혔다.
이처럼 시대를 앞서간 농촌 마을은 사라졌고 같은 고향을 마음에 품은 공동체도 서서히 무너졌다. 땅과 그곳에서의 삶을 추억하고픈 원주민들은 1983년 ‘용어회’를 결성하며 영원히 그 존재를 기억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이들은 1985년 원어비동유적 영세불망비(元魚肥東遺蹟 永世不忘碑)를 건립하며 그 뜻을 널리 알렸다. 이 비문에는 고향을 잃어버린 이들의 애달픔을 써 내려갔다. 마을의 형성 과정과 거주 성씨 등을 새겨 놓았다. 수년이 흘러 2002년에는 영세불망비를 보존하고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비각을 세웠다. 2004년 제막식을 진행하면서 어비울 수몰민 중 연락 가능한 1천여 명 가운데 일부가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지역 언론 보도에 용어회 정선용 회장의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는데 참담함과 그리움이 묻어 나온다. 그는 “600여 년간 가족처럼 정다웠던 부락민들이 고향을 물속에 묻고 헤어질 때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며 “어비울이 후대에까지 잊히지 않도록 용어회 모임이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간절한 바람과 달리 어비리는 수몰에 이어 연거푸 수난 시대를 겪었다. 이 지역은 용인과 오산, 안성시가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다. 경계지역이다 보니 각 기초지자체의 중심지보다 상대적으로 관심과 지원이 저조했다. 게다가 2007년에는 기피시설인 장례시설이 들어서면서 마을 간 갈등을 빚는 등 남은 공동체마저 분열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남아 있던 원주민조차 다른 곳으로 떠나기 일쑤였고 전원생활을 꿈꾸는 타지인의 비율이 점점 높아졌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고 했다. 2010년대 후반 들어 사라진 원도심, 소외된 경계지 어비리에도 꽃망울이 맺히고 있다. 척박한 문화 불모지였던 이곳에 시각예술 전시장 겸 문화예술교육장인 아트스페이스 ‘어비움’이 그 꽃망울 중 하나다. 이동저수지 제방 아래 위치한 어비움은 지난 2017년 5월 개관, 전시부터 공연과 체험교육 등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바람에 꽃씨가 퍼지듯 어비움 개관 이후 얼마 되지 않아 황무지와 다를 바 없었던 이동 저수지를 둘러싼 어비리 도로에 대형 카페와 식당 등이 들어서면서 마을의 변화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여기에 같은 해에 과천지역 화훼·묘목 업체가 어비리에 이웃한 남사면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확정되면서 국내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원예유통단지가 조성되는 중이다. 남사화훼단지는 어비리로 점차 영역이 넓어지는 추세고, 매년 봄이면 화훼단지를 찾아오는 외지인으로 전에 보기 힘든 활력이 넘치고 있다. 또 농어촌공사가 이동저수지의 수문 확장 공사를 진행하면서 용인시도 해당 지역의 공원화 등 개발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져 ‘어비리의 봄’을 기대케 한다.


아트스페이스 어비움 전경


아트스페이스 어비움 기획전시 화룡점정 전


아트스페이스 어비움 실내 전경


글 조두호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박사수료)을 수학하였다. 안양의 재래시장인 석수시장에서 대안예술과 공동체문화를 기획했다. 수원의 공공기관에서 학예연구팀장으로 근무였으며, 동시에 공공예술 및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지역의 의제와 문화예술생태적 기획을 이어왔다. 최근 쇠퇴하는 원도심의 문화적 도시재생을 연구하며, 포천시 관인면의 문화재생 사업을 총괄기획하고 있다.

더 많은 경기학광장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경기도사이버도서관 바로가기]




information

  • 경기학광장 Vol.4 _ 2020 봄호

    발행처/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센터

    발행인/ 강헌

    기획/ 이지훈, 김성태

    발행일/ 2020.03.30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