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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7) 고려시대부터 이어온 뿌리 깊은 가문

경기도박물관 기증유물 이야기

〈경기도박물관 기증유물 이야기〉 시리즈는 경기도박물관과 경기신문(강경묵 기자)이 기증 유물의 가치와 기증자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특별 기획한 연재 시리즈입니다. 경기도박물관 전시실의 기증 유물을 중심으로, 유물의 기증절차와 보존처리과정, 문화재 등록, 전시 과정 등 경기도박물관 학예사가 여러분에게 기증 유물의 모든 것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드립니다.


시리즈 원문은 경기신문(kgnews.co.kr)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지지씨에서도〈경기도박물관 기증유물 이야기〉시리즈를 총 10회에 걸쳐 만나볼 수 있습니다.




▲ 2011년 12월 13일 경기도청 경기도지사 집무실에서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용인이씨 대종회 이희상 회장과 충정공파종회 이홍규 회장 등이 기증 유물을 관계자들과 함께 살펴보고 있다. (사진=경기도박물관 제공)


경기도에는 수원·광주·죽산·양주 등 해당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명문가가 있다. 이 중 용인이씨는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의 건국에 공을 세운 개국공신인 이길권(李吉卷)을 시조로 현재까지 약 1100년 넘게 지속된 경기도의 뿌리 깊은 명문가이다.


이길권의 후손들이 고려 조정에서 관직에 올랐음은 여러 차례 '고려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9세인 이인택(李仁澤)은 9개의 고을에서 군수 등을 지내며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이 그의 집 앞에 그 은혜를 기린다는 이름에서 유래한 ‘자은교(慈恩橋)’라는 다리를 놓았다.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을 ‘잔다리’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전한다.  




▲ 이재학 초상. 용인이씨 부사공파중 판관공 종손 이태한, 경한, 봉한 기증. 경기관찰사를 지낸 이재학(1745~1806)의 초상화이다. 이재학은 문장에 뛰어났고 글씨를 잘 썼다. (사진=경기도박물관 제공)


용인이씨의 중시조인 14세 이중인(李中仁, 1315~1392)은 고려 말에 문하시중을 지내고 구성부원군(駒城府院君)에 봉작됐다. 유교와 불교의 예제에 밝아 공민왕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장례를 진행하기도 했다.


목은 이색(李穡)과 포은 정몽주(鄭夢周)가 그에게 학문을 배웠다고 하며, 고려가 멸망하자 개풍군 광덕산 서쪽의 두문동(杜門洞)에 입산해 나오지 않음으로써 고려 왕조에 충절을 지킨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이 됐다. 이후 그의 후손들은 참판공파, 부사공파, 주부공파, 판관공파, 현감공파, 사직공파, 승랑장공파, 부사공 계종공파, 부정공파, 사용공파, 함흥파 등 11개 파로 분파됐고, 더욱 세분돼 60여 파로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시조 이길권부터 13세 이광시까지 14명의 위패는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에 있는 추원사(追遠祠)에 모셔져 있다.




▲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 용인이씨 판관공파중 장양공 종손 이종한 기증. 이일 장군은 여진족의 니탕개 반란(1583)과 녹둔도 침입(1587)이 있자, 1588년 두만강 건너편에 있는 북간도 지역의 시전부락을 토벌해 300여 호를 불사르고, 적의 목 500급을 베는 전과를 올리는 장면을 그렸다. 원래의 그림은 이일 장군의 손자인 경상좌수사 이견(李汧, 1616~1668)이 화공에게 몇 점을 그리게 해 여러 후손들에게 나누었다. 세월이 지나 한 점 밖에 남지 않게 되자, 이일 장군의 8세손으로 조선후기 여항문인이자 화가인 소당(小塘) 이재관(李在寬, 1783~1849)이 1849년에 다시 3점을 모사했는데, 그 중 하나다. (사진=경기도박물관 제공)


이렇듯 용인이씨는 고려시대부터 용인 지역을 대표하는 토성(土姓)으로 자리를 잡았고, 조선시대에는 과거급제자 86명을 배출했으며 11명의 경기관찰사를 내기도 했다. 정승 3명과 판서・참판・한성판윤・대사헌・관찰사 등의 고관대작을 낳았고, 대제학・문형・청백리 등을 적지 않게 배출한 조선후기 대표적인 경화사족(京華士族)이었다.


경화사족은 서울 근교에서 거주하는 근기남인, 소론, 북학을 수용한 노론 낙론계 학자들이 중앙학계의 주류를 이루면서 여러 대에 걸쳐 관료생활을 하는 가운데 성장한 집단이다. 용인이씨는 조선 후기에 가장 번창해 정조는 주연(酒宴) 석상에서 이재학(李在學, 1745~1806)에게 “용인이씨는 가계(家系)가 오래됐고, 이름난 조상의 음덕으로 대대로 계속해 고관을 많이 배출하니 가히 대성(大姓)의 집안”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 이돈상 초상(조복본과 상초묵화본) 중 상초묵화본. 용인이씨 부사공파중 판관공 종손 이태한, 경한, 봉한 기증. 이돈상은 1864년 경과증광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1881년 대사헌에 임명됐으며, 이듬해 5월 한성부판윤이 됐다. 이돈상 초상 조복본은 그 예가 희귀하기 때문에 매우 가치가 있으며, 특히 초상화 제작 과정을 알려주는 상초묵화는 국내 유일본으로 평가된다. (사진=경기도박물관 제공)



용인이씨 가문, 세 차례의 유물 기증  


경기도박물관에 용인이씨의 유물이 기증된 것은 모두 세 차례이다. 첫 번째로 2009년에 용인이씨 부사공파 중 판관공 종손인 이태한, 경한, 봉한 님은 초상화, 고문서, 서화, 민속유물 등 700여점이 넘는 유물을 기증했다. 판관공파 종중은 이숭호, 이재학, 이규현, 이삼현, 이원명, 이돈상의 6판서를 배출한 명문가문이다. 이들 6판서 중 이재학, 이규현, 이원명은 경기관찰사를 역임했다.


기증 유물 중에는 이재학, 이규현 관련 유물이 다수 포함돼 있으며, 조선후기 이후 경기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사대부들의 삶과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료들이다.


두 번째는 2011년 용인이씨 대종회(회장 이건상)와 충정공파종회 이홍규 회장이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이세백과 그의 아들 이의현 부자 전신 초상을 비롯해 16~19세기 시대별 각종 교지(敎旨) 등 유물 100여점을 기증했다. 기증 유물 가운데 이세백과 이의현 부자 전신 초상은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유물로 보물급 초상화에 해당한다.



▲ 이의현 초상, 용인이씨 충정공파 종손 이홍규 기증. 이의현(1669~1745)의 64세 초상으로 1732년(영조 8)에 그려졌다. 이의현은 경기도관찰사를 지내고 형조․이조 판서를 거쳐 영의정에 올랐다.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당세 세계의 문화거리였던 북경 유리창을 조선에 처음 소개하기도 했다. 아버지 이세백과 함께 부자가 정승 반열에 올랐다. 이 초상은 시복본을 입은 전신상으로 2.5미터에 이르는 대형 초상화이다. 시복에 두른 서대는 정1품의 관직을 표시한다. 높은 사모, 호피 받침, 돗자리, 명암 표현 등에서 18세기 초상화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사진=경기도박물관 제공)


용인이씨 문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인 이세백(李世白, 1635~1703), 이의현(李宜顯, 1669~1745), 이재협(李在協, 1731~1790) 3정승 중에서 이세백과 이의현은 조선 후기 노론의 영수이자 부자 정승으로도 유명하다. 이의현은 관료로서 최고의 자리인 영의정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학자로서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와 '도곡집(陶谷集)'을 남겼고, 조선시대 사대부의 모범이 되는 대표적 인물로 손꼽힌다.


경기도박물관은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용인이씨 후손들이 기증한 875점의 유물 중에서 372점의 유물을 골라 2013년 3월 27일부터 6월 16일까지 '경기명가 기증유물 특별전: 천년의 뿌리, 용인이씨'를 열었다.


이 전시에서는 용인이씨 가문에서 보존해왔던 초상화와 서화작품 등 보물급 유물에서부터 용인이씨와 왕실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값진 유물들, 그리고 당시 사대부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민속 유물 등이 소개됐다. 상당수 유물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거나 현존하는 유일한 작품들이었다.


이 전시를 계기로 박물관에 위탁된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는 2018년, 용인이씨 판관공파 장양공 이일 장군 종손 이종한 님으로부터 관련 자료 10여 점과 함께 박물관에 기증됐는데, 이것이 세 번째 용인이씨 가문의 유물 기증이다.  




▲ 박본수 경기도박물관 학예실장(사진=황준선 기자)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는 이일(李鎰, 1538~1601) 장군의 여진족 토벌 작전을 그린, 보기 드문 전쟁기록화이다. 이일 장군은 21세의 나이에 1558년 무과에 급제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세자인 광해군을 도와 왜적을 방어하고 평양을 수복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선조 21년(1588)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임기 중에 '제승방략(制勝方略)'을 완성해 변방의 국방 체제에 운용했다. 선조 21년(1588) 여진족의 녹둔도 침입에 대한 대응책으로 두만강을 건너 시전부락(時錢部落)을 공격해 큰 성과를 올렸는데, 이 그림이 바로 그것을 그린 그림이다.


화면 맨 위에는 전서체로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라는 제목이 쓰여 있다. 화면 가운데에는 여진족을 토벌하는 전투 장면을 그렸다. 맨 아랫단에는 당시 이 전투에 참여했던 이일 장군을 비롯해 휘하 장병들의 계급과 이름이 있는데, 우화열장(右火熱將)으로 이순신(1545~1598)의 이름도 보인다.


용인이씨 가문에서 경기도박물관에 첫 번째로 많은 유물을 기증한 용인이씨 부사공파 판관공 종손 이태한 님은 유물 기증과 관련해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용인이씨 종중에서는 우리 집이 ‘6판서댁’으로 불렸어요. 한국 전쟁 때는 안산 시골 우리 집이 피난처였어요. 지금은 반월공단이 들어서 없어졌지요. 유물을 기증하고 나서 처음에는 조상님들께 죄스럽기도 하고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박물관에서 보관을 잘 해주고, 특별전까지 열어 용인이씨를 많이 알려주니 기증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용인의 토성인 용인이씨 가문에서 기증한 유물은 가문의 보물에서 도민의 보물, 나아가 국가의 보물이 됐다. (글=박본수 경기도박물관 학예실장)


[ 정리 / 경기신문 = 강경묵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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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경기도박물관 기증유물 이야기(7)] 고려시대부터 이어온 뿌리 깊은 가문

    / 박본수 경기도박물관 학예실장

    정리/ 경기신문=강경묵 기자

    등록/ 2020.12.28

    출처/ 경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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