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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30호 | [영화리뷰] 당신의 '장국영'은 안녕하십니까? -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비평의 자격과 문화예술교육



  예술이, 문화가 만만하고 편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숨 쉬듯 밥 먹듯 일상이 예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문화기획. 거대한 구조 속에서 화려함이 수반되지 않더라도, 예술이 사람만으로도, 마음만으로도, 간혹 발휘되는 재기발랄함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유쾌하고 황홀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움직임의 주체가 되고 어우러짐의 힘을 발견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생각했다. 그것은 나의 꿈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러 도착한 2020년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한 해를 보내면서 해넘이 후에는 좀 나아지리라 기대해 보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위기가 일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그러다 문득, 이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고,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이 속에서 또 다른 가치를 찾아보는 것도 나에게 주어진 귀한 기회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문화란 무엇인지, 특히 생활문화가 무엇인지, 왜,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팬데믹 상황에서 나는 어떤 가치를 지켜가야 할 것인지.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그래,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 가보자.

복잡하고 어렵고 난해할 때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쉽고 간단한 처방은 원형을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쪼개서 생각해 보는 것.

복잡한 머릿속을 분해하고 기름칠하고 재조립할 작정을 하고 있을 때,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내 앞에 나타났다.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는 걸까. 나는 복잡한 미로를 찾기 위해 이 영화에 의지하기로 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 영화 포스터 - >


# 찬실이가 머무르는 집, 그 이상의 의미

- “그대들이 어디를 가나 주인공이 되니, 자기가 있는 그곳이 모두 참된 곳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평생 영화만 만들며 살고 싶었던 찬실이의 소박한 꿈은 감독의 뜬금없는 죽음으로 산산이 부서진다.

하지만 그는 “망했다, 정말 망했어!”를 외치며 단출한 살림살이를 이고 지고 산꼭대기 초라한 집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할 때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여배우 소피의 집에 놀러 간 찬실이는 그곳 가사도우미가 그만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주저 없이 걸레를 잡고 청소하기 시작한다. 찬실이는 이날부터 가사도우미를 자청한다. (㥰 근심) 소 (避 피할) 피를 쓰는 여배우 소피는 발연기의 여왕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연기 공부는 뒷전이다. 그저 폴 댄스나 술 빚기에 여념이 없다. 생계를 위해 소피에게 불어를 가르치는 영화감독 김영(Kim Young)은 언젠가는 영화를 찍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여지껏 시나리오만 쓰고 있다. 그들 모두 ‘되고 싶은 나’와 ‘현실 속 나’의 간극 속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한다.

사건은 사람이 만나야 발생하고, 사건이 생겨야 관계가 형성된다. 소피의 집은 이 세 명이 교차하는 접점이고 사건의 발원지가 된다. 소피의 집이 찬실이의 현실 속 관계를 확장시킨다면, 찬실이의 산꼭대기 집은 그의 영혼적인 측면을 확장시킨다. 찬실이는 영화 내내 경사진 비탈길과 계단을 오르면서 집으로 향한다. 그 고단함은 그의 풀리지 않는 현실 문제들과 닮아있다. 그는 지금껏 소처럼 일한 자신의 젊은 시절을 한탄하면서도 여전히 영화가 자신의 전부라고 믿고 있다. 현실은 비루하고 사랑은 절망적이고 자존감은 바닥이다.
게다가 이곳에는 귀신같은 주인 할머니가 있고, 진짜 귀신인 장국영이 있다. 후미진 방에는 할머니의 죽은 딸의 유품이 빼곡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찬실이는 서서히 이 집에 젖어 들고,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곁을 스스럼없이 내어주는 할머니와 밥숟가락을 나누고,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장국영과 시시콜콜 고민거리를 나눈다. 세월에 묵혀있던 할머니 딸의 유품은 지난날 아름다운 청춘을 떠올리게도 한다.

찬실이는 이곳에서 치유 받고 성장하고 자신을 어루만진다.


소피의 집과 할머니의 집.
이 두 개의 공간은 찬실이의 현실 에너지를 응축시키기도 하고 영혼적인 치유와 확장을 이루어내기도 한다. 두 개의 집은 찬실이가 삶에 대한 태도, 가치, 그리고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 공간 속에는 혈연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 할머니는 오래전 딸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냈고, 목소리만 등장하는 어머니 아버지는 찬실이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어느 누구도 상대 가족에 대해서 묻지도,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대방의 호칭을 야무지고 정확하게 부른다. 그리고 상대의 지금 상태, 마음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사랑이라는 굴레로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무례를 범하지 않는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뿐, 캐묻지는 않는다. 다가오면 함께 걷고, 조언을 구하면 성의껏 답한다.
그렇게 그들의 관계는 견고해지고 유연해지고 편안해진다.



# 환타지를 환영해. 내 마음속의 ‘장국영’
- 당신은 멋진 사람이예요. 조금만 더 힘내요.
실직하고 돌아온 찬실이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현실은 가사도우미이지만, 직업이 뭐냐는 주인할머니 물음에 영화PD였다고 답한다. 하지만 김영이 계속 ‘PD님’ 하고 부를 때는 정작 그 호칭이 못마땅하다. 이제는 찬실이 조차도 PD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오락가락한다. 게다가 ‘오즈 야스지로’ 영화가 가진 미덕을 설파하고 ‘크리스토퍼 놀란’과 홍콩 영화에 이맛살을 찌푸리던 찬실이는 자신도 모르게 ‘장국영’을 좋아한다고 인정해버린다.
그의 생각과 생활은 뒤죽박죽이다.
그때 찬실이의 눈앞에 장국영이 나타난다. 그는 영화 <아비정전> 속 장국영의 모습과 사뭇 거리가 있지만, 찬실이는 그를 그냥 장국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둘은 친구가 된다.



장국영은 찬실이가 고민할 때마다 기분 좋은 상담가가 된다. 할 수 있는 것, 잘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라 강조한다. 그리고 행여나 찬실이가 영화를 그만둘까 내심 불안해하다.
이런 장국영과 달리 찬실이가 가장 궁금한 것은 애정사업의 성공 여부다
‘잘 지낸다’는 장국영의 답변을 ‘잘 된다’로 해석한 찬실은 김영에게 돌진하지만, 결국 그에게서 돌아온 답변은 ‘누나’라는 호칭이다.
수치스러움과 절망에 빠져 번민과 눈물의 시간을 보낸 찬실이.
하지만 장국영이 건넨 응원과 격려는 다시 그를 일으켜 세운다.
어쩌면 장국영은 찬실이 내면에 숨어있던 또 다른 자아일지도 모른다.
찬실이는 이제 진짜 원하는 것이 생겼다. 사는 게 뭔지 그 길을 탐색해 보고 싶어진 것이다.
물론 그 속에 영화도 있다.
영화가 전부였던 그에게 삶이 서서히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찬실이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시도하면서 온전히 혼자의 힘으로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나이 듦은 늙어감이 아닌 미래를 향한 발걸음.
-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 대신, 애써서 해.
언제나 젊음은 찬양받아왔고 나이 듦은 안타까움의 대상이다. 젊음은 창대하고 나이 듦은 쇠퇴의 상징이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이 또한 아름다운 우리의 삶이기에, 불혹의 찬실이가 나이 듦을 대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중요하다.
찬실이는 젊은 시절 매혹됐던 영화의 끈을 여전히 부여잡고 있고, 10년 동안 안아보지 못한 남자 품에 갈구한다. 이것들은 지금의 찬실이에게 절대적인 가치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에게서 등 돌렸고 연애는 그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전부라 믿었던 영화와 연애는 찬실이를 보기 좋게 배신했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인 할머니의 자작시 앞에서 찬실이는 펑펑 눈물을 쏟아낸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금껏 절대적으로 믿어왔던 삶에 대한 가치를 떠나보내는 그만의 의식일까, 아니면 지나간 시절이 결코 돌아오지 않음을 깨닫고 난 후의 탄식일까. 젊은 시절 너무도 목말랐고, 그래서 좋아하는 일로 자신을 꽉 채우면 행복할 줄 알았다는 그. 하지만 이렇게 나이가 드니 목이 말라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됐다는 그. 그는 다시 길을 찾기 시작한다, 나이 듦을 부정하며 이미 떠나가 버린 젊음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있기보다 미래를 향해 한발씩 내딛는다. 찬실이는 더 이상 숨 가쁜 계단도 가파른 비탈길도 오르지 않는다. 선두를 이끌어야만 행복이라 느꼈던 찬실이는 이제 행렬의 마지막에서 사람들의 길을 밝혀준다. 그리고 그들과 인생여정을 함께 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영화PD로서, 또 누군가는 영화감독으로서, 또 누군가는 배우로서. ‘현실 속 나’와 ‘되고 싶은 나’가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우주 멀리서 보내는 장국영의 응원을 받으며 찬실이는 가만히 읊조린다.
우리가 믿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삶의 지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마음에 새기며 나 또한 가만히 읊조린다.
우리가 믿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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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진 '지지봄봄' /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2012년부터 발행하고 있습니다. ‘지지봄봄’은 경기도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가까이 바라보며 찌릿찌릿 세상을 향해 부르는 노래입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이라면 어디든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다양한 삶과 배움의 이야기와 그 안에 감춰진 의미를 문화, 예술, 교육, 생태, 사회, 마을을 횡단하면서 드러내고 축복하고 지지하며 공유하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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