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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어린이박물관

경기도어린이박물관 오픈랩 전시 「어린이라는 세계」 - <오문자>

2021-10-01 ~ 2021-12-19 /


<오문자>


본인은 관념 속 어린이가 아닌 ‘실제 삶 속의 어린이’를 만나고 연구해 온 구성주의 유아교육학자입니다.

레지오 교육실천에 영감을 받아 어린이의 유능함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어린이 고유의 학습방식에 부합되는 지원 책략을 연구해 왔습니다.

과거에는 삼성복지재단과 그리고 현재는 한솔어린이보육재단과 일하며 새로운 관점의 보육을 소개하고, 숙명여대와 KCCT 등을 통해 교사교육을 하며 우리 현장의 변화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연구의 시작>

대학에서 어린이 관련 분야를 전공하지 않았던 본인은 첫 아이 육아 중 처음 어린이의 존재와 능력을 알아보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났습니다.

15개월 즈음 영아가 혼자 놀이하는 상황에서 보여준 강한 집중력과 지구력에 놀랐고, 나름의 궁금증과 내재적 의도가 존재함을 몸의 움직임, 자세, 표정을 통해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과연 저 아이의 머릿속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라는 큰 호기심이 생겼고, 이를 계기로 발달심리학 강좌를 듣고, 이어 유아교육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본인에게는 연구를 시작하면서 첫 연구문제를 찾았다기보다는, 처음 가졌던 포괄적 질문이 이 분야를 선택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고 아직도 유효한 연구문제로 남았습니다.

박사과정 진학 시, 처음 본인을 이끈 연구문제인 어린이들의 인지적 과정 자체를 연구하는 심리학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연구 결과를 토대로 어린이의 인지적 발달을 지원하는 응용학문인 유아교육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한 내적 갈등이 있었고, 사실 아직도 이 두 흐름을 양립시키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연구의 현재, 어린이와 나>

어린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면 항상 기존 사고방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성인의 세상 바라보기와는 다른 신선한 시각을 발견하고 놀라게 됩니다.
어설프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항상 나름의 논리가 있다는 점은 어린이도 성인처럼 엄연한 인격적 존재라는 점을 상기시켜, 지적 존재로서 본인을 다시금 겸손해지도록 만듭니다. 동시에 종종 자신들의 세상 바라보기가 정당하고 가치 있다고 믿기보다는 성인이 어린이를 위해 단순화시켜 놓은 진리 혹은 정답을 되새길 때 칭찬받는 것에 익숙해진 어린이들을 접하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어린이다울’ 권리를 상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의 어린 시절은 성인 중심의 문화 안에서 성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어린이가 더 인정받곤 했습니다. 지나치게 활동성을 보이거나 흥분을 보이는 것 역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요소였습니다.
전혀 “젊지 않은” 어린이에게 “점잖게”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듯 했습니다. 반면, 성인들이 어린이에게 관심이 적은 상황이 오히려 성인과 단절된 세상에서 우리만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학업 성취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지금보다 덜하고 경제적으로 덜 풍요로운 탓에, 항상 형제들과 놀잇감과 놀이 자체를 만들어 놀았던 기억이 많습니다.
실패를 고무줄과 연결하여 움직이는 자동차를 만들어서 놀았던 경험, 집 마당에 물을 얼려서 썰매를 타기 위해 했던 작업처럼, 지금은 과학 놀이 kit에서 봄직한 것들을 직접 만들며 많은 깨달음을 얻곤 했습니다.
어린이들의 다양한 놀이를 들여다볼 때, 어린 시절의 경험의 흔적들이 어린이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줍니다. 더 나아가 그동안 잊고 지내던 사소한 것들에서 느끼는 발견과 즐거움을 지금 이 나이에도 느끼곤 합니다.
지금의 나이에도 주변의 사물이나 현상들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신기하고 ‘더 알아보고 싶은’ 현상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은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 안에 조금 다른 모습으로 공존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연구의 미래>

지금 시대에는 어린이의 존재가 더욱 부각되긴 하지만 동시에 어린이들이 감당해 내야 하는 것도 이전 시대보다 더욱 복잡하고 과중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만의 시대적 과제와 나름의 고민이 만만치 않으므로 섣불리 우리가 그들 세계를 이해한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어린이들이 성인 세계로 성급하게 편입되기를 강요하기보다 성인들이 어린이의 현재 세계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게임이나 만화를 성인의 잣대로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들 문화이자 소통 언어라는 점을 인정하고 알아보고자 노력해야만 어린이와 성인 세계 간 연결고리가 생성될 것입니다.
본인의 연구는 ‘인지적 존재로서 어린이’에서 출발하였으나, 지금은 ‘시대적이며 사회적 존재로서 어린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두 측면의 분리는 불가능하다고 보며, 현재 개인의 사고 발달 안에는 역사 문화적 발달의 유산이 자리 잡고 있음을 강조하는 사회적 구성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며 어린이의 발달과 세상 알아가기를 돕고자 합니다. 또한, 어린이를 연구하되 막연한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자 합니다.
치열하게 나름의 환경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현재 눈앞의 어린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을 토대로 그들의 발달과 배움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어온 과거의 지적 문화적 유산을 어린이가 모두 내재화하고 답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현시대 정보의 홍수 속에서는 정보의 양보다 유용한 정보를 선별하고 활용할 수 있는 판단력과 사고력이 가장 필요합니다. 특히 가상현실과 물리적 현실 속에서 세계가 하나가 되는 현 상황에서는 고립보다는 소통, 경쟁보다는 협력하는 자질이 요구됩니다. 판단하고, 사고하며, 소통하고, 협력하는 행위는 모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현시대 어린이들은 자신이 세상을 알아갈 능력이 있다고 믿고 타인들과의 교류 안에서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본인의 존재도 인정을 받고 본인의 발전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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