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작품의 뒤를 지키는 겹겹의 마음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진진묘》

글, 사진 김지연 미술비평가


예술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고, 무엇으로부터 지탱될까. 세간의 주목을 받는 작품을 보며 흔히들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작가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 하지만, 호기심의 범위는 거기까지다. 위대한 작품은 위대한 예술가가 만들어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 기획한 전시 《진진묘》는 그런 예술가의 삶 뒤에 가려진 또 다른 삶과 관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바로 예술가의 배우자다. 전시를 구성한 여섯 작가 모두 남성 작가이니, 여기서는 예술가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가 되겠다.



(좌)민복진_가족_브론즈_260x70x240cm_1991 (우)백영수_가족_캔버스에 유채_89x116cm_1984


사랑 이상, 아내를 향한 화가의 마음

전시의 제목 《진진묘》는 장욱진이 아내 이순경을 그린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진진묘’란 ‘부처의 참된 이치를 재현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장욱진은 이 그림에서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내조했던 아내를 보살로 표현했다. 장욱진의 표현처럼, 예술가가 성장하고 작품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묵묵히 그 뒤를 지켜주는 누군가의 배려와 희생이 필요하다. 이 전시는 장욱진을 비롯하여 김기창, 문신, 민복진, 백영수, 이응노 등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예술세계를 이들의 아내의 시선에서 새롭게 바라보았다.


장욱진은 작품세계 전반에 걸쳐 아내와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움을 표현하곤 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진진묘>를 비롯해 아내와 자신의 모습을 나란히 그린 드로잉 작품, 아내에게 선물한 작은 그림 <아기>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남편의 뒷바라지와 가사는 물론 본인의 작품 활동까지 하느라 늘 잠이 부족해 예민해진 아내 박래현을 그린 김기창의 <화가 난 우향>, 가족과 아내의 모습을 표현한 민복진의 <부인상>과 백영수의 <가족> 등 예술가들이 직접적으로 아내의 영향을 받아 작업한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장 안을 가득 채운 작품들은 물론, 창밖으로 보이는 민복진의 조각 작품 <가족>은, 미술관을 둘러싼 푸른 산과 어우러지며 따스한 풍경을 자아낸다. 또한 전시의 초입에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진진묘>는 장욱진의 작품을 모티브로 만든 것으로, 관객이 자연스럽게 전시의 주제에 몰입하도록 이끈다.



(좌)장욱진_무제_종이에 채색_35x25,58cn  (우)장욱진_진진묘_캔버스에 유채_22.8x16.2cn_1973


우리는 남성 예술가의 아내를 흔히,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라는 단어로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그 단어는 너무 추상적이고 설명이 부족하다. 전시에서는 여섯 예술가의 작품과 함께 인터뷰 또는 자료 영상을 함께 보여주는데,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사랑 이상이었다. 누군가는 그 관계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들었고(민복진), 누군가는 그 사람에게 온전히 기대어 작업과 삶을 버텨냈다.(김기창, 문신), 누군가는 그 관계를 위해 십자가를 졌고(김기창의 아내 박래현), 누군가는 그를 통해 예술을 알았고(이응노의 아내 박인경), 누군가는 너무 이해한 나머지 미워할 수 없어 함께 했다.(백영수의 아내 김명애) 예술가들의 아내는 작품의 소재가 되거나 개념에 영향을 주고, 예술가의 흔들리는 마음을 지탱했다. 살뜰히 먹이고 입히며 일반적인 아내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은 물론이었다. 또한 예술가의 사후에는 이들의 작품을 관리하고 자료를 기록하며, 재단 설립과 미술관 건립 등 업적을 널리 알리고 기념하는 사업까지 도맡아 했다. 단지 한 예술가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다고 표현하기에 그들은 실제로 너무나도 많은 일을 했다. 부부의 관계를 시작하는 것은 열정이나 설렘이지만 그것을 지탱하고 지속하는 것, 상대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변화로 이끄는 것은 깊은 배려와 헌신이다.




작품의 표면 아래 겹겹의 층이 드러난다

전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한 뒤, 다시 한 번 돌아보자 작품 뒤에서 여섯 예술가가 아니라 여섯 여성의 삶이 선명하게 보였다. 사실 박래현과 최성숙, 박인경은 김기창의 아내, 문신의 아내, 이응노의 아내이기 이전에 또 다른 위대한 예술가였고, 이순경은 장욱진의 아내가 아니라 30년 이상 서점을 운영하고 여성 최초로 출판문화공로상을 받은 출판인이었다. 남편의 이름이 워낙 널리 알려져 있기에 충실한 아내, 위대한 예술가의 그림자라고 불리지만, 사실 이들은 타인의 보조가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살아낸 한 사람이었다. 여성이 세상에 나서기 어려웠던 시대에 태어났기에 자신을 내보이기보다 남편의 삶을 더 돋보이게 만들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배우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일구며 동시에 한 예술가를 키워낸 것이다. 어쩌면 두 사람 몫을 해낸 이들이 더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들을 ‘누군가의 아내’가 아니라 각자의 이름으로 기억하고 싶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살찌우는 것에 관해 생각한다. 우리는 그렇게 자라나 꽃피운 것, 눈에 띄게 드러나는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그 뒤에는 언제나 또 다른 삶들이 있다. 배우자, 가족, 그리고 우리를 지탱하는 수많은 관계처럼 말이다. 반대로 타인의 삶에 내 삶이 가려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처음에는 존경이었고, 그다음에는 안쓰러움이었고,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미워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김명애 인터뷰 중)라는 말처럼, 지속하는 사랑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혼자서 이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을 알고 난 뒤 다시 작품을 본다. 원래 알고 있던 뛰어난 작품의 표면 아래로 겹겹의 층이 드러난다. 작품의 아름다움, 한 예술가의 삶, 그의 뒤에 가려진 고된 삶, 그렇게 살아내느라 미처 세상에 보이지 못한 작품이나 이야기,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뒤섞인 갖가지 감정들. 그렇게 보면 작품이라는 것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일지도 모른다. 위대한 작품의 뒤를 지켜온 모든 것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김지연 | 미술비평가, 작가. 예술과 도시에 깃든 사람의 마음, 서로 엮이고 변화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범위를 한정 짓지 않는 글을 쓴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미술무크지 『그래비티 이펙트』, 기타 여러 매체에 기고하며, 저서로는 퍼포먼스 아티스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삶과 예술에 관한 책 『마리나의 눈』, 보통 사람을 위한 현대미술 에세이 『보통의 감상』이 있다.



※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전시 《진진묘》는 2021년 10월 24일 막을 내렸습니다.

전시에 대한 정보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누리집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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