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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문화자산 4. 이상촌을 꿈꾸던 남양주 봉안마을


경기도 문화자산 

4. 이상촌을 꿈꾸던 남양주 봉안마을 



글과 사진 김준기(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의 봉안마을에는 봉안교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교회건물과 그 옆에 세워진 녹슨 종탑이 유서 깊고 사연이 있는 교회임을 직감하게 만듭니다. 봉안교회의 역사는 백년을 훌쩍 넘어가는데, 가나안농군학교로 유명한 김용기 장로의 부친 김춘교 씨가 1912년 예봉산 밑에 기도처를 둔 것이 이 교회의 출발점이랍니다. 이후 1915년 봉안교회가 정식으로 출범하였는데, 당시의 교회는 예봉산 자락의 구디마을이라는 데에 있었고, 기와집이었다고 합니다. 전통 한옥을 교회로 개조했던 것이지요. 그러다 현재의 위치인 하봉마을에 서양식 건물로 된 교회가 지어진 1936년의 일입니다.


(좌) 봉안교회 (우) 봉안마을 전경 


봉안마을은 이상촌 건설을 위한 꿈이 펼쳐졌던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이러한 꿈 역시 봉안교회의 역사와 함께 하였지요. 부친으로부터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았던 김용기 장로(1909년~1988년)는 1930년대 말 봉안마을에 이상촌을 세우기로 결심합니다. 초기 봉안이상촌은 40~60명이 동참한 신앙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였습니다. 봉안이상촌에서는 각종 과일과 채소, 고구마 농사와 양봉, 산양 키우기 등으로 마을의 경제적 발전을 모색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의생활을 개선하고 금주·금연운동과 야학을 운영하는 등 주민들을 계몽하는 활동도 활발히 전개하였습니다.


처음 김용기 부부가 황무지를 일구어 만든 고구마밭 300평에서 시작되었던 이상향의 꿈은 농지가 밭 1만300평, 논 1만4000평, 과수원 1만2000평으로 늘어나며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게 되었고요. 일제의 압제가 극에 달했던 1940년대에 봉안이상촌은 여운형 선생을 비롯한 항일운동가와 애국지사, 학병징집 거부자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지요.


현재 봉안마을에는 아쉽게도 당시 이상촌에 대한 흔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봉안이상촌은 6·25동란 때 폭격으로 폐허가 되고 말아 당시의 건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거든요. 하지만 이후 지역 신앙인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교회가 재건되어 봉안교회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고, 토박이 어른들을 통해 이상촌 건설 당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봉안이상촌의 건설은 미완성으로 끝나고 말았으니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김용기 장로의 경험은 가나안농군학교의 초석이 됩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1962년 김용기 장로가 농촌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기독교 합숙교육기관입니다. 1954년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현재의 하남시 풍산동)에 있는 야산을 개간해서 만든 농장에 체계적으로 농민 교육을 하기 위해 제1가나안농군학교를 세운 것이지요. 가나안농군학교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모델이 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가나안학교에서 매일 새벽 5시에 울리던 ‘개척종’이 ‘새벽종이 울렸네.’라는 새마을운동 노래로 이어졌던 셈이지요. 한번은 박정희 대통령이 김 장로를 찾아와 “국민과 우리나라가 잘살게 하는 게 내 목표인데, 김 선생이 벌써 이뤘네.”라며 “내가 뭘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으니 김 장로는 “그저 안 도와주는 게 도와주는 겁니다.”라고 대답하였다는 일화도 전합니다. 김 장로의 자립자생에 대한 의지는 “가난을 싸워 이겨야 한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마라.‘ 등 도처에 써있던 표어를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김 장로의 이상향 건설에 대한 노력은 그의 아들대로 이어졌고, 지금은 양평군 옥현리로 이사를 간 제1농군학교에 이어 1973년에는 강원도 원주에 제2농군학교가 세워지는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시선을 해외로 돌려 2008년에는 가나안세계지도자교육원이 설립되기도 하였습니다.


(좌) 하남시 풍산동에 있는 제1가나안농군학교 건물(출처: 경기건축토털) (우) 김용기의 조카인 김문일이 1945년에 그린 봉안이상촌 지도 (『새마을운동의 산실 봉안이상촌』, 경기문화재단·남양주역사박물관, 2012, 19쪽)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언급해야 될 점이 있다면 김용기 장로가 태어나기 백여 년 전에 이미 능내리에서는 농촌 이상향을 꿈꾸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인데요, 봉안마을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는 마재마을에 살고 있었지요.


다산 선생은 조선후기 중농주의 실학자로 사회적 모순의 근본이었던 토지제도의 개혁을 주장했습니다. 그가 주장한 토지 개혁안 중에는 여전론이 있는데, 이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을 단위의 농업공동체를 중심으로 공동경작을 시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전은 개인의 소유지가 아닌 국가의 소유지를 활용하고, 30호로 구성되는 여(閭)를 단위로 공동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며, 생산물에 대해서는 경작에 참여한 노동의 정도에 따라서 차등 분해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다산의 이러한 주장은 공론에 그치며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가 태어나고 살았던 농촌마을을 바라보며 이상적 공동체 사회의 모델을 마련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 1930년대 말 능내리 봉안마을에서 김용기 장로에 의해 시도되었던 주민들의 공동경영을 통한 이상촌 건설은 다산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즉 정약용 선생이 이상적 농촌 공동체에 관한 화두를 던졌고, 김용기 장로가 이 화두를 이어받아 실천했다고 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둘 사이에는 100년 이상의 시간적 격차가 있으니 영향수수 관계를 증명할 길은 없습니다만 능내리가 오랜 시간 동안 농촌을 기반으로 하는 이상촌의 건설의 꿈이 깃들어 있는 곳이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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