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동심: 함께하는 마음, 아이의 마음, 움직이는 마음

장욱진과 민복진의 '가족', 양주장욱진미술관


양주시 장흥면에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자리한다. 미술관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입장하면 야외 미술관인 장흥조각공원을 거쳐 미술관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장흥조각공원에는 국내외를 대표하는 30여 명 작가들의 조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제목과 주제가 가족, 여행자, 꿈, 사랑, 돈키호테, 마법사 등으로 따뜻하고 긍정적인 작품이 대부분이다.


작품들을 둘러보면 민복진 작가의 작품이 월등히 많다. 조각가 민복진은 양주 출신으로 한국 근‧현대 구상조각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2016년 그의 별세 후 양주시는 장욱진미술관 조각공원 내에 민복진 존을 조성했고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의 청동조각 <가족>으로 친숙한 민복진은 1979년 프랑스 르 살롱 전에서 한국인 최초로 금상을 수상해 한국 조각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평생 가족과 사랑이라는 주제에 천착했다. 돌과 브론즈라는 차가운 소재로 엄마와 아기, 모정 등을 표현하며 따스함과 생명력을 전했다. 부드러운 곡선과 양감, 과감한 생략과 변형이 민복진 작품의 특징이다. 민복진은 예술계 안에서의 명성에 비해 일반 대중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는데 미술관이 개관하면 그의 작품세계가 널리 알려지길 소망한다.

현대사회의 각박함과 몰인정, 가족주의의 붕괴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너무 식상해서 논쟁거리조차 되지 않지만 우리는 실로 비정한 세상을 살아가는 중이다. 사회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으로써 개인주의를 인정하지만 서로의 선線을 지키느라 최소한의 선善마저 잃은 느낌이다. 따뜻한 말 한 마디, 용기 내어 건넨 손길이 살아가는 데 가장 큰 힘이 된다는 진리를 누구도 모르지 않는다. 다만 선先이 되지 못할 뿐이다. 삶이 고단해 자기 자신에게 여유가 없기 때문이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예술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좋은 매개가 되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차갑고 단단한 돌덩이가, 날카로운 쇠붙이가 장인의 손길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는 모자母子가 되었다. 민복진 작가의 작품이 장흥을 주 무대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장흥의 타깃은 꾸준하게 ‘복수複數’였다. 가족, 친구, 이웃으로 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장흥을 오갔다. 그중에서도 주연은 어린이가 아닐까. 홀로 장흥을 오는 어린이는 없다. 그렇다고 나처럼 홀로 여행하는 이를 홀대하는 곳은 아니지만 장흥은 ‘같이의 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장소임은 분명하다. 민복진의 작품들 사이를 지나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앞에 닿는다. 장욱진이야말로 회화로 선善을 표현한 이가 아닌가. 그의 작품은 무해한 소재들로 가득하다. 나무, 집, 까치, 참새, 소, 개, 닭, 그리고 아이….

두리랜드, 가나아트파크, 장흥조각공원에 이르기까지 장흥이란 놀이터에서 마음껏 발했던 동심이 장욱진의 화폭으로 고스란히 옮겨간 듯하다. 여기서 동심은 같을 동同을 써서 同心이라 읽어도 좋고 아이 동童을 써서 童心이라 읽어도 좋다. 움직일 동動을 써서 動心이라 읽어도 무방하다. 함께하는 마음, 아이의 마음, 움직이는 마음 모두 뜻이 통한다. 사실 장욱진은 양주와 딱히 연이 없다. 현재의 세종시인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나 자란 후 거주지로는 서울과 남양주 덕소, 충주 수안보를 거쳐 말년에는 용인시 구성면에 머물렀다. 이러한 배경에서는 어떤 연유로 양주시 장흥면에 장욱진미술관이 들어섰는지 궁금하지만 단순히 지역의 성격과 작가의 예술세계만 놓고 보면 이만한 적소가 또 있을까 싶다. 마치 장흥과 장욱진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느낌이다.

야외미술관에서 민복진의 조각이 전했던 따스함은 장욱진의 회화에서도 같은 결로 느껴진다. 민복진의 가족이 실제 자연 안에 있었다면 장욱진의 가족은 붓질로 표현된 자연 안에 있다. 장욱진은 천성적으로 서울이 싫다했고 그리하여 그의 화실은 늘 자연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12년간 살았던 남양주 덕소의 화실 앞으로는 한강이 흘렀다. 그 시절, 그의 그림 속에는 강이 흘렀다. 『강가의 아틀리에』는 그가 자연과 새벽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어떤 환경 안에서 어떤 느낌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있는 장욱진의 산문집이다. 그는 ‘물장구를 치며 나체로 뛰노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 적나라한 자연을 본다’고, ‘태양과 강과 태고의 열기를 뿜는 자갈밭, 대기를 스치는 여름 강바람’ 같은 것이 자신을 ‘자연의 아들’로 만들어 준다고 했다. 그의 덕소 화실이 어떤 풍경이었는지는 사진으로 짐작할 뿐이지만 현재의 장욱진미술관은 장욱진이 묘사하고 또 머물렀던 ‘강가의 아틀리에’에 부합한다.


사실 양주시는 장욱진미술관 이전에 천경자미술관 건립을 추진했다. 그러나 작가 측과 협약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해 장욱진미술관으로 변경된 것이다. 두 작가 모두 한국 현대미술의 대가들이어서 둘 중 누구의 단독미술관이었대도 아쉬움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자리 잡게 된 장욱진미술관은 마치 처음부터 장흥에 있기로 계획된 것처럼 장흥과 어울린다. 미술관 옆으로는 석현천이 흐르고 뒤로는 응봉과 형제봉이 대지를 감싸고 있으니 장욱진이 살아서 이 미술관을 봤더라면 퍽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을까 싶다.

미술관은 건축가 최성희, 로랑 페레이라 부부(최페레이라 건축)가 설계했는데 흰색 외관이 매우 심플한 듯하면서도 보는 각도에 따라 형태가 달라 보이는 입체적인 디자인이다. 기다랗게 뻗은 건물은 예각, 직각, 둔각으로 곳곳이 꺾여있어 전체의 형태를 한눈에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자세를 고정하고 눈에 들어온 것만 보면 단선의 삼각 지붕, 사각 외벽의 건물인데 움직이면서 보면 “이게 뭐지?”싶은 복잡한 건물이다. 지붕재와 벽재는 모두 흰색 폴리카보네이트 패널로 이루어져 있어 심플하면서도 도대체 저 건물 안에는 무엇이 들었을까 호기심을 자아낸다. 미술관은 높은 곳에서 봐야 비로소 전체 윤곽이 잡힌다. 부감으로 평면을 보면 장욱진의 <호작도> 속 호랑이가 연상되는 모양이다. 그 형태 때문에 한국적 토속미를 구현했다는 언론 보도도 꽤 보이는데 정작 건축가는 미로 같은 공간을 만들고자 했을 뿐 특정 이미지를 염두에 두진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호작도>의 호랑이 디자인이 정설로 굳혀진 까닭인지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에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화가 장욱진의 호랑이 그림 <호작도>와 집의 개념을 모티브로 설계했다’고 안내되어 있다.

어쩌면 장흥과 장욱진미술관을, 정확히는 장흥과 장욱진을 일치시키고자 하는 나의 시선 또한 꿈보다 해몽일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요소가 한 울타리에 모여 있다 해서 그 개별적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풍경을 이루기에 그 안에서 공통점을 찾고 ‘함께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예술은 복잡하다. 삶을 모방한 것이니 당연하다. 심플한 듯하면서도 복잡한 미술관의 형태처럼 장욱진은 스스로 ‘나는 심플하다’고 수없이 말했지만 그의 작품은 말처럼 심플하지 않았다. 장욱진의 작품 대부분은 한 손으로 놀릴 수 있는 작은 사이즈다. 또한 겉으로 보면 아이들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평이한 그림체다. 그러나 그는 그 작은 화폭을 남이 흉내내지 못할 자기만의 방식으로 쪼개고 꾸몄다. 문명적인 것을 뛰어넘어 원초적이고 고대적인, 마치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것 같은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선만으로 이루어진 간결한 도상을 추구했다. 자연을 가장 자연답게 표현하는 장욱진의 방식이었다. 가족과 보금자리, 가축들이 늘 그의 그림 안에 어우러져 있었지만 장욱진은 고독한 예술가였다. 오직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발적인 고독을 택했고 술을 끼니처럼 마셨다. 안정된 교수 생활도 일찌감치 접고 오로지 전업 화가의 길을 걸었던 그가 그림을 팔아 큰돈을 쥘 수 있었던 때는 예순에 접어들어서였다. 꾸밈도 허세도 없는 사람이어서 위선이 싫다 했고 그림은 삶이고 술은 휴식이라 말했다. 그에게 나이를 물으면 곧바로 “나는 일곱 살”이라고 대답했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처음으로 반기는 장욱진의 작품은 1978년작 <가로수>다. 커다란 네 그루 나무 아래 세 식구가 산책을 하고 강아지, 소가 이들을 뒤따른다. 가로수 위에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 작품은 작가 생전에도 워낙 인기가 좋고 소장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아 가족들이 몰래 숨겨놓고 보았다는 일화가 있다. 그 이유를 단박에 알 것 같다. 미술관 가장 첫 번째 자리에 걸린 이유도 같을 것이다.

장흥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장욱진의 <가로수>를 꼽는다면 또 끼워 맞춘다는 소릴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장흥이 그림 안에 있고 그림이 장흥 안에 있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33권 『50만 살의 청춘- 경기 북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양주시 : 유원지와 폐사지 사이에서>에서 발췌했습니다.


세부정보

  •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관람시간/ 10:00~18:00 월요일 휴관

    누리집/ www.yangju.go.kr/changucchin

    관람료/ 어른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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