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물이 흐르는 땅에 푸르고 싱그러운 사람들

청춘 MT의 성지, 가평군

가평에는 북한강과 이어진 특별한 물길 세 곳이 있다. 북한강이 지나는 청평호, 산 위의 저수지 호명호수, 연인산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용추계곡이다. 각각 가평8경의 1,2,3경을 담당한다. 청평호는 1944년 청평댐이 준공되고 생긴 호수로 오랫동안 레저 관광지로 사랑받아왔다. 같은 인공호수로 한강 본류의 팔당호는 상수도원으로 보호받아 유원지와 낚시터가 개설되지 않았다. 그래서 수변 드라이브 코스 등 호수 주변만 즐길 수 있지만 청평호는 호수 안으로 들어가 수상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관광도시로서 가평의 명성은 청평호가 상당 부분 쌓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름이면 수상스키, 웨이크보드, 모터보트 등을 타며 물살을 즐기는 사람들이 청평호로 모여든다.

청평호는 일명 ‘빠지Barge’(수상레저를 즐기는 선착장)의 성지로 불린다. 수상레저의 종류도 다채롭다. 널찍한 튜브 위에 몸을 싣고 모터보트에 매달려 가는 플라잉보트, 대형 튜브로 설치된 워터 번지점프와 슬라이드, 서핑과 카약을 결합한 패들보드 등 해를 거듭할 때마다 새로운 형태의 수상 놀이기구와 시설이 등장한다. 전국에 크고 작은 워터파크들이 많이 생겼음에도 청평호의 여름은 늘 시끌벅적하다. 같은 물놀이여도 인공시설과 자연이 주는 맛은 완전히 다른 법이다.

예전에 라오스의 북부 도시 방비엥을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가이드북에서 방비엥을 가리켜 ‘라오스의 가평’이라고 소개한 문장을 읽고 어떤 고장인지 단박에 느낌이 왔다. 방비엥은 대부분 면적이 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골짜기마다 흘러내려오는 계곡에선 각종 액티비티가 이루어지는 동네다. 방비엥에 들른 이들은 계곡에서 튜브를 타든 다이빙을 하든 짚라인을 타든 레저 한 가지씩은 하게 된다. 액티비티가 8할인 여행지라 그렇다. 그래서 인도차이나 반도를 여행하는 모험심 넘치는 젊은 배낭여행자들은 방비엥을 꼭 들른다. 이들은 암암리에 숲속에 들어가 마약 파티까지 벌이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위법 행위마저 ‘청춘’이란 명분으로 포장될 순 없지만 어쨌거나 이 작은 고장은 젊음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가평도 그렇다. 청평과 대성리를 중심으로 모여든 청년들이 건강한 기운을 불어 넣는다. 맑은 물이 흐르는 땅에 푸르고 싱그러운 사람들이 찾아 합을 이룬다. 이들은 심신에서 발산하는 힘을 사방으로 내뿜는다. 꿈을 찾거나 좇는 중이고 생애 가장 순수한 사랑도 한다. 좌절하고 방황하지만 아직은 젊음이 무기가 될 수 있는 때. 그들이 한데 모여 청평으로, 대성리로 여행을 떠난다. 굳이 나누자면 청평과 대성리는 청년이 주 방문층이어도 그 카테고리가 다르다. 청평이 20~30대 청년이 삼삼오오 모여 수상 레저를 즐기러 오는 곳이라면 대성리는 20대 초반 대학생들이 최소 10명 이상 모여 MT를 오는 ‘MT촌’이다.


서울, 경기권 대학생들이라면 한 번쯤은 MT로 가는 곳이 대성리였다. MT는 ‘Membership Training’의 줄임말인데 이는 사실 영미권에서 쓰지 않는 콩글리시다. 여하간 MT는 과거 대학 문화의 대표적인 키워드 중 하나였고 새내기 때는 자의로든 타의로든 최소 한 번은 갔다. 막상 가면 트레이닝은커녕 술판만 벌이고 오는 일이 다반사라서 MT가 실은 ‘마시고 토하고(Masigo Tohago)’의 뜻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심지어 자신의 주량을 모르는 신입생이 선배들의 강권에 못 이겨 치사량의 술을 마시고 사망하는 일까지 일어나곤 했다. 매년 봄마다 이러한 사고가 끊이지 않자 술을 강권하는 문화는 많이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MT는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 행사가 되어 대성리에는 예전처럼 많은 학생들이 모이지 않는다.


세대가 바뀌면서 대학생들 또한 단체보다는 개인, 친교활동보다는 스펙을 쌓는 활동에 더 치중하는 까닭이다. 더구나 전 세계적인 감염병 사태로 최근의 대학 신입생들은 MT를 가본 적이 없음은 물론이고 어떤 학생들은 MT가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대학생들을 주 손님으로 받던 대성리 일대 펜션과 민박집 여러 곳이 폐업하거나 가족이나 연인을 타깃으로 리모델링을 했다.

그럼에도 MT 1번지라는 명성은 아직 남아있어서 적막하진 않다. 1박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청년들이 이따금씩 대성리역 앞에 짐을 푼다. 전철을 타고 오기도 하고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광역 버스를 타고 오기도 한다. 서울과 가까운 한적한 시골 강변이라는 지리적 요건은 예나 지금이나 장소 선정의 결정적인 동기로 작용하는 듯하다. 내가 대성리역을 지날 때도 역 앞 계단에 앉아 단체사진을 찍는 20대 초반 청년들이 있었다. 모두 마스크를 썼음에도 눈을 보면 활짝 웃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몸짓과 표정에서 상큼한 오렌지 향이 풍기는 듯했다. 그들도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대성리를 추억할 때 ‘청춘’이란 두 글자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33권 『50만 살의 청춘- 경기 북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가평군 : 청춘이라는 축제>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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