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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연소 아이돌의 탄생
2023 안성맞춤남사당 바우덕이 축제에 앞서
유랑 민중놀이집단인 남사당패의 기원은 조선 중기에 사찰이나 그 주변을 근거지로 삼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하던 사당패에게서 찾는다. 사찰에는 남자 승려 비구, 여자 승려인 비구니, 남자 신도(거사 혹은 처사라고도 한다), 여자 신도(보살)가 기거하는데 이들을 묶어 사중이라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보살을 '사당우바이'라고도 불렀는데, 여기서 사당패라는 말이 나왔다. 사당과 거사가 짝을 이루어 잡가, 타령 등을 부르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공연한다고 해서 이들을 사당패라 부른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절의 사당과 거사들이 공연을 나선 것은 아니고 일부 사찰에 한해서였다. 익산 함열 성불암, 함평 월량사, 남해 화방사 등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일대에 사당패로 이름난 절들이 꽤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당패의 근거지는 경기도 안성 청룡사였다. 사당을 양성해 전국에 보급하는 교습소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시대 학자층의 기록을 보면 사당패를 패륜, 역모를 할 수 있는 집단, 백성에게 피해를 주는 무리 등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당패가 천시받고 배척받았다는 사실을 여러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이 고아나 걸인, 가난한 농가 출신이기도 했지만 매춘하는 집단이라 는 이유도 있었다. 해서 공연을 빌미로 음지에서 돈을 갈취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이에 대한 단속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청나라와 일본을 통해 전문적인 기예가 조선으로 유입되면서 노래를 주로 공연했던 사당패는 경쟁력을 잃는다. 대우와 인식이 좋지 않자 사당패에 들려는 어린 여성들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자 ‘사당 교습소’ 역할을 했던 청룡사 사당패는 남성들로 이루어진 남사당패로 개편해 여러 가지 재주를 부리는 예인들을 영입하고 땅재주, 꼭두각시놀음 등 볼거리가 다양한 공연을 구성했다. 이에 다른 지역의 사당패는 자연스럽게 소멸했고 안성 청룡사의 남사당패가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게 되었다.
안성 청룡사 대웅전 모습
안성시의 마스코트이자 고장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 바우덕이는 남사당패의 우두머리, 즉 꼭두쇠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바우덕이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구전에 따르면 바우덕이가 남사당패에 들어갔던 때는 그의 나이 5세로 1853년이고 15세이던 1863년에 꼭두쇠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남사당이라는 이름은 1898년 <독립신문>에 처음 나타나므로 바우덕이가 활동했던 때만 해도 아직은 사당패였을 시기였다. 그러나 후대에 남사당패로 이름이 바 뀌고 고유명사화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면서 ‘남사당패의 바우덕이’가 된 것이다. 안성시와 향토전문가들도 사당패로 바로잡기에는 남사당패라는 이름이 공고해졌고 바뀐 후의 공연 구성이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어 혼돈과 충돌을 줄 이고자 남사당패의 바우덕이로 굳힌 것 같다.
바우덕이 사당과 바우덕이 동상
조선 사회에서 사당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있었지만 이들의 성취는
분명했다. 예인집단답게 노래와 재주로 사람들의 고된 삶을 위로했고 때로는
양반 계층을 희화하고 비판하면서 신분 낮은 이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기도 했
다. 특히 바우덕이는 1865년 경복궁 중건 때 지친 노역자들의 사기 증진을 위
해 경복궁에서 사당패를 이끌고 공연을 진행했다고 전해진다. 이 공로로 바우
덕이는 정3품 당상관 벼슬 상당의 옥관자를 수여 받았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
있어선 기록이 확실치 않다. 다만 여러 기록을 종합할 때 당시 사당패가 사회
적 지위는 낮았을지라도 공연예술 분야에 있어선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비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로 따지면 연예인이나 다름없었고 ‘리더’ 바우덕이의 주 활동 시기가 10대 후반이었으니 오늘날 아이돌 스타급의 인기와 명성을 가졌다고 봐도 무관하다.
2022년 안성맞춤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에서 바우덕이를 연기하며 줄타기를 선보이는 남사당패 단원. 사진=안성시
바우덕이는 특히 명창으로 소문나서 죽고 난 뒤로도 오랫동안 조선 제일
의 가수로 이름을 날렸다. 1909년 <황성신문>의 한 기사는 ‘비취’라는 여인
이 있는데 노래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는 내용을 전하며 ‘안성 청룡 바우덕이
가 와도 그 머리를 뒤로 하고 쥐구멍을 찾겠다더라’는 문장을 보탰다.
남사당패가 등장하기 이전 시대의 사당패라고 하지만 집단 전체를 이끄는 우두머리를 여성으로 추대했다는 것은 그만큼 바우덕이의 실력이 출중했음을 의미한다. 언제부터 불렸는지는 모르겠으나 구전되는 옛 속요 중에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
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을 날리며 떠나를 가네’라는 가사의 노래가 있다. 바우덕이의 인기와 상품화된 이미지를 엿볼 수 있다.
2022년 안성맞춤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 야외 공연 모습. 사진=안성시
바우덕이 이야기를 제법 길게 늘어놨지만 사실 그에 대한 신뢰할 만한 기록은 부족한 편이고 구전되면서 살이 붙은 이야기가 많다. 심지어 생몰연도와
활동 시기에 대한 기록도 혼재돼 여기에 그를 기리는 문장들을 더 나열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안성시에서는 이 고장 전통문화유산의 구심점으로 바우덕이를 활용해왔고 앞으로도 그 지위의 격이 낮아질 것 같진 않다. 가상의 캐릭터도 만들어 지역을 홍보하는 판국에 과거에 실재했던 인물이면서 현재의 남사당패 공연단까지 대표할 수 있는 상징이니 정사正史에 너무 엄격해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바우덕이는 바우덕이대로 인물에 대한 정확하고 중립된 연구는 필요해 보인다.
청룡사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바우덕이를 기리는 사당이 있고 자동차로 5분 거리에 바우덕이묘가 있다. 바우덕이사당은 2005년에 지어졌고 바우덕이
묘는 실전됐던 것을 불당골 개울가에 묻혔다는 구전에 따라 1989년에 묘비와
상석을 갖춰 조성되었다. 바우덕이 한 사람을 기린다기 보다는 안성에 훌륭한
무형유산을 남겨준 남사당패 전체를 기리는 시설이 아닐까 싶다. 소위 셀링포인트는 집단보다는 개인, 그중에서도 결핍된 배경과 비범한 재능을 가진 인물에 있겠지만 유산의 본질은 현재까지 계승되도록 한 여러 사람의 실력과 노력에 있다.
주말마다 상설공연이 열리는 안성남사당 공연장 풍경 사진=경기관광포털
2001년을 첫 회로 매년 가을 개최되어온 ‘안성맞춤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는 이제 전국의 수많은 축제 사이에서도 내실 있고 전통 있는 축제로 거듭
났다. 매년 그 구성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보통은 바우덕이 추모제를 시작으
로 남사당놀이를 비롯해 국악 콘서트, 안성 예술인의 밤, 명품탈춤, 남사당 퓨전 공연 등이 열려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축제의 주 무대는 안성시 보개면에
있는 안성맞춤랜드다. 안성에서 가장 넓은 잔디밭이 깔린 시민공원이다.
안성맞춤랜드는 2011년에 개장했지만 이 자리에는 이미 10년 먼저 문을
연 남사당전수관이 있었다. 남사당패 공연단은 이곳에서 연습과 공연을 해왔
다. 이후 부지가 확장되면서 안성남사당공연장, 박두진문학관, 천문과학관, 안
성맞춤랜드공예문화센터 등이 남사당패의 새로운 이웃이 된 것이다. 안성맞춤랜드는 이제 소풍 오기 좋은 시민공원이자 축제장으로, 안성시를 대표하는
문화예술 복합단지로 자리매김했다.
2022년 안성맞춤 남사당 바우덕이 축제 실내 공연 모습. 사진=안성시
남사당공연장은 남사당전수관 옆에 자리한다. 축제가 아니어도 3월부터 11
월까지, 매주 주말마다 신명 나는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단순히 전통 기예를
보여주는 공연이 아니라 종합예술무대라고 해도 손색없는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진 공연이다. 기본적으로 풍물놀이, 어름줄타기, 버나접시돌리기, 살판땅재주, 덧뵈기
가면극, 덜미인형극 등 여섯마당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꼬마 바우덕이가 꼭두쇠로
성장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살로 붙인 연극이다. 코미디극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이 많고 현대적인 소재들을 적절히 섞어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다. 마당마다 대사와 움직임에 코믹 요소를 가미했으며 무엇
보다 기본기가 탄탄한 단원들의 기예와 단합된 연기가 감탄을 자아낸다. 극이
절정에 이르면 영화 <왕의 남자>로 친숙한 전통 줄타기가 펼쳐지고 바우덕이
가 줄 위에 몸을 띄울 때마다 관객들의 눈동자와 고개도 함께 줄을 탄다. 이윽고 극의 막바지에 이르면 흥겨운 풍물 연주와 함께 무동춤이 시작된다. 단무동,
3무동, 5무동까지 절묘한 균형감각으로 선보이는 ‘인간 피라미드’에 입이 벌어
진다. 올림픽 개막식의 퍼레이드를 연상케 하는 웅장한 연출이다.
안성이 고향인 필자는 남사당 공연을 볼 때마다 애향심이 치솟는다. 소도시 자체 제작 공연의 완성도가 굉장히 높다는 점, 그리고 그 기반은 예부터 전해진 역사 깊은
전통 공연임에 그저 안성시민이라는 사실만으로 자부심을 느낀다. 해서 시시때때로 공연을 주변에 홍보한다. 나는 진심으로, 다른 도시에 없는 이 안성
의 공연 콘텐츠가 앞으로 ‘안성탕면’보다 더 유명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무엇 하나 아쉬운 요소가 없다. 민중에서 탄생한 한국 고유의 무형 문화유산이고 역사와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고 ‘현존’하며 예술가와 관객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복합적인 장르의 종합예술. 그것이 안성 남사당 공연이다. 홍보도 홍보지만 무엇보다 현재 남사당공연단에 소속된 예술가들에 대한 처우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는 요절한 조선의 바우덕이
가 아니라 지금 우리 눈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줄을 타고 있는 바우덕이이기
때문이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1권 『우리들의 캠퍼스- 경기 남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안성시 : 광대와 미륵>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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