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전통’과 ‘MZ’가 만난 핫플레이스

50주년 맞이한 한국민속촌을 돌아보며


촌(村)은 주로 마을 또는 지역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쓰이지만 같은 한자를 쓰는 촌을 명사로 사용하면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촌놈’처럼 촌이 접두사로 오면 그 뜻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기흥구에 있는 한국민속촌은 골프장을 뒤뜰로 삼고 아파트단지들과 이웃한다. 명사로서 ‘촌’과는 거리가 있지만 촌을 수식하는 ‘민속’이 전통적인 시골의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민속은 짧게 정의하면 민간의 풍속을 이른다. 민간 생활과 결부된 신앙, 습관, 풍속, 전설, 기술, 전승 문화 등을 두루 묶어 민속이라 칭한다. 오늘날을 사는 현대인이 받아들이는 단어의 함의는 교과서나 백과사전 등에서 접하는 ‘옛것’ 정도일 것 같다.



한국민속촌 전경 ⓒ경기관광포털


전통가옥과 옛 풍습을 유지하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오래된 마을은 전국 곳곳에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안동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이 있고 조선시대 읍성과 마을이 보존된 순천의 낙안읍성 민속마을도 있다. 민속촌은 이들 마을처럼 실제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유구한 사적은 아니다. 마을이 개장한 때는 1974년이고 당연히 내부의 건물들도 모두 그때 처음 지어져 개보수를 해왔다. 한국민속촌은 대한민국을 주제로 한 백과사전이 있다고 할 때 그중 한국의 전통 부문, 그중에서도 ‘가옥과 풍습’ 챕터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연출한 공간이다. 하회마을 등의 오래된 민속마을은 현재까지 사람이 거주하고 지역에 따른 일정한 양식과 규범이 존재하지만 한국민속촌은 그 전체를 아우른 총체적인 모습으로서 한국 전통마을을 표상한다. 그러나 민속촌은 아카데믹하게 지식을 전달하는 박물관 같은 공간이 아니다. 굳이 분류하면 조선의 어느 마을을 테마로 한 관광시설이다. 테마파크란 얘기다. ‘가상의 세계를 창조해 이용자가 그 세계관에 몰입하게 하는 복합 관광시설’을 테마파크로 정의한다면 한국민속촌은 그 표준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국민속촌의 공식적인 수식이 ‘전통문화테마파크’다.



한국민속촌 전경 ⓒ경기관광포털


사실 20여 년 전 한국민속촌에 단체견학을 갔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가까운 용인 에버랜드와는 비교할 수 없이 시시한, 도저히 테마파크라고 부를 수 없는 장소였다. 기와집과 초가집, 그리고 물레방아가 있는 사극 촬영 장소일 따름이었는데 가상의 세계는 고사하고 교실 밖에서 진행되는 역사 학습이나 다름없었다. 줄을 서서 선생님을 따라다니기만 하니 장소의 진가를 발견하긴 더 어려웠겠지만 과거의 한국민속촌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 방문자에게 ‘큰 인상은 남기지 못했다’는 평이 중론이다. 그러던 한국민속촌이 변신을 꾀한 때는 2012년 즈음이었다.



배우들이 실감나는 연기를 하는 모습 ⓒ한국민속촌


뒤늦은 감이 있었지만 진짜 테마파크가 되기 위한 대대적인 정비가 단행했다. 혹 신식 놀이기구를 설치하고 대형공연장을 짓는 등의 ‘때깔 변신’이었다면 화제가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비난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한국민속촌은 원래 모습은 유지하고 내실을 다졌다. 곳곳에서 관객 참여형 이벤트를 열었고 이를 진행하는 요원들을 캐릭터화했다. 이전에는 방송국에 장소를 대여해주며 배경 역할만 했던 민속촌이 직접 배우들을 뽑아 민속촌 전역을 무대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주막에 가면 주모 분장을 한 배우가 ‘여 앉으시오, 뭐 드릴까?’하고 길을 걷다 마주친 보부상이 기념품을 팔며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대감집 아씨가 ‘사진 한 장 찍어주옵소서’ 하며 다가와 함께 사진을 찍는 식이다. 해외 여러 곳에 체인을 둔 대형 테마파크 디즈니랜드에 가면 미키마우스부터 엘사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온 디즈니 캐릭터들이 테마파크 곳곳을 돌아다니며 방문자들을 즐겁게 한다. 동화책, 인형, 화면으로만 접했던 디즈니 캐릭터가 손도 흔들어주고 안아도 주니 아이들은 물론 동심으로 돌아간 어른들까지 크게 감동하고 즐거워한다. 실체는 인형탈을 쓴 사람이지만 디즈니랜드 안에서 그들은 영원한 미키마우스이고 도널드덕이다.



배우들이 실감나는 연기를 하는 모습 ⓒ한국민속촌


그런데 한국민속촌의 캐릭터와 방문자 간 거리는 디즈니랜드보다 훨씬 가깝다.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와 관객 간에 무수한 대화가 오가고 그 자체로 하나의 ‘게릴라극’이 완성되며 오가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구경꾼이 된다. 거지가 갑자기 다가와선 “먹을 것 좀 주시오” 하면 주섬주섬 가방을 뒤지는 방문객 뒤로 사또가 다가와 “이놈, 귀한 분께 동냥질이냐?” 하며 “내 융숭한 대접을 해드리겠소, 관아로 따라오시오”하는 식이다. 상인, 양반, 아씨, 수령, 기생, 사냥꾼, 유생, 화공, 광대, 거지 등으로 분장한 배우들은 관람용 민속마을을 조선시대라는 세계관으로 재창조한다. 선녀, 옥황상제, 저승사자, 요괴 등 전설 속에서 튀어나온 조선시대식 판타지 캐릭터들도 감초 역할을 한다. 그들은 방문객들과 함께 재기차기, 투호 던지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 전통놀이를 비롯해 얼음땡, 물총싸움, 즉석 사극오디션까지 진행한다. 방문객은 관람객, 배우, 놀이 참여자 등 다양한 역할을 자연스럽게 수행하며 민속촌이 창조한 세계에 스며든다.




콘셉트 변화에 성공한 민속촌의 이러한 면면은 SNS를 통해 영상과 사진으로 퍼져나가며 코미디 콘텐츠로 더 큰 인기를 구가했다. 흔한 광고 하나 없이 과거와 달라진 한국민속촌이 널리 홍보되었고 방문객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국민속촌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주기적으로 민속촌에서 벌어진 방문객과의 에피소드 영상이 업로드되었고 뜨거운 인기는 2016년경까지 지속되었다. 무엇이 되었든 유행의 주기가 빨라진 오늘날, 대중의 관심이 한결같이 지속되기는 어려워서 그 인기는 철 지난 유행어처럼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한국민속촌은 이 시기를 전환점으로 과거의 낡은 이미지를 지우고 한국식 테마파크의 원형이자 모범으로 거듭났으며 젊은 세대의 놀이공간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현재도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에 들어왔다는 설정’을 충실히 지키며 방문자에게 몰입감을 선사하며, 계절별로 세분화한 프로그램들을 꾸준히 개발해 단골 방문객을 유치하고 있다.

한편에선 참여형, 즉흥형 이벤트가 워낙 많아 내향적인 사람들은 제대로 즐기고 오기 어렵다는 푸념도 있지만 이보다는 한국민속촌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민속촌 자체의 발전뿐만 아니라 이른바 K-테마파크, 즉 디즈니랜드 풍의 테마파크와 차별화될 수 있는 한국 고유의 테마파크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에버랜드보다 한국민속촌을 조금 더 좋아한다. 용인을 ‘테마파크의 도시’라고 할 때 그 선두는 한국민속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랄까.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1권 『우리들의 캠퍼스- 경기 남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용인시 : 놀이동산과 부동산 사이에서>에서 발췌했습니다.

세부정보

  • 한국민속촌

    주소/ 경기 용인시 기흥구 민속촌로 90 한국민속촌

    운영시간/ 10:00~19:00

    입장권/ 성인, 청소년 35,000원 / 어린이 29,000원

    누리집/ www.koreanfol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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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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