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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시간을 소장하는 일에 대하여》 주요 작품 소개

2023-03-09 ~ 2023-06-25 / - 백남준아트센터 2023 신소장품전, 2022.03.09~06.25 -

백남준아트센터 2023 신소장품전

《시간을 소장하는 일에 대하여》On Collecting Time 주요 작품 소개 


1) 안규철, 〈야상곡 No. 20 / 대위법〉


안규철, 〈야상곡 No. 20 / 대위법〉, 2013/2020, 퍼포먼스/설치, 피아노 연주, 인쇄된 종이 위에 연필 드로잉, 29 × 21 cm (111점)

〈야상곡 No. 20 / 대위법〉은 일정한 시간에 동일한 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와 연주가 끝날 때마다 피아노의 해머 88개 중 하나를 무작위로 빼내는 조율사가 만들어내는 이중주다. 피아노 건반의 음이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연주는 조금씩 해체되고 최종적으로 침묵을 향해 다가간다. 작품의 시간은 ‘음(音)’을 소멸시키고 우연의 소음을 만든다. 벽면을 채우고 있는 악보 드로잉은 프레데리크 쇼팽의 「야상곡 20번」을 구성하는 가장 낮은 음부터 가장 높은 음까지 모두 50개의 음을 분해하여 111장으로 표기한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아바나의 뒷골목 공터에 놓인 낡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들과, 그 피아노 건반을 집요하게 갉아먹는 흰개미 떼의 이야기에서 착안하였다.

2) 진시우, 〈복원과 변형 사이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어떤 것 – K와의 대화〉
진시우, 〈복원과 변형 사이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어떤 것 – K와의 대화〉, 2016, 오브제/비디오 설치, 단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16분 12초, 벤치 96 × 34 × 51 cm, 쥐 모양 조각 11 × 4 × 3 cm
단채널 비디오와 오브제로 구성된 설치 작품이다. 영상은 관객 K와 작가의 대화를 텍스트로 구성한 것이다. K가 훼손된 작품을 복원하여 다시 전시가 가능한 상태로 만들기를 설득하자, 작가는 K에게 작품이 제작되고 훼손된 이후까지의 과정을 들려주며 복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함께 설치되는 오브제는 영상 속 대화 주제인 작가의 작품, 즉 부서진 나무 의자와 의자 다리에서 떨어져 나간 쥐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업은 물리적인 복원 또는 변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방식을 통해 작품의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이자 결과를 만들어낸다.

3) 진시우, 〈퍼포머를 위한 디렉션〉

진시우, 〈퍼포머를 위한 디렉션〉, 2014, 사진, 디지털 C-프린트, 37 × 50 cm
작가가 자신의 팔뚝에 퍼포머를 위한 지시문을 적은 것을 찍은 사진이다. 퍼포머는 검은 옷을 입고 관객들 사이에 섞여 정해진 스텝을 밟으며 움직이는데 퍼포머가 작품을 공연하는 중이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도록 은밀하게 이를 수행하도록 지시한다. 그러나 퍼포머에게 주어진 디렉션은 검은색의 무언가를 입고 관객 사이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이 평범한 움직임은 전시장에서 모두가 취하는 제스처에 불과하다. 이를 통해서 작가는 ‘작가라는 직업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한편 이 작업을 하면서 작가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요소 즉 “관객 자체가 퍼포머가 되고, 그 관객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객이 존재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4) 진시우, 〈스타카토 블랙〉

진시우, 〈스타카토 블랙〉, 2012, 단채널 비디오/드로잉, 흑백, 무성, 12분 20초, 종이에 연필, 29.7 × 20 cm (2점)
단채널 비디오와 드로잉 두 점으로 구성된 설치 작업이다. 비디오는 배우의 깜빡이는 눈을 클로즈업하여 롱테이크로 찍은 것이다. 드로잉 두 점은 각각 2012년 5월 16일과 17일에 그린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16일에 그린 드로잉에는 영상에 대한 설명과 “눈 깜박임, 한 점 바라보기, 매우 자연스럽게, 말 없이, 별 생각 없이, 특정한 감정 없이”라는 배우의 퍼포먼스를 지시하는 문장이 적혀 있다. 17일에 그린 드로잉에는 진한 검은 색에서 아래쪽으로 점점 옅어지는 스펙트럼이 그려져 있다. 작품 제목인 ‘스타카토 블랙’은 작가가 새로 만들어낸 검은색 이름이다. 작가는 “눈을 깜빡일 때 보이는 암전 아닌 암전. 그 속에도 까만색은 존재한다. 〔…〕 깜빡이는 순간은 찰나이지만,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관객들은 텍스트를 읽고 작품을 이해하는 동시에 영상을 보면서 눈을 깜빡이는 스스로의 행위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5) 김성환, 〈드로잉 비디오〉 

김성환, 〈드로잉 비디오〉 설치, 2008/2021
〈드로잉 비디오〉 설치는 드로잉 세 점과 〈드로잉 비디오〉, 〈커버〉 비디오 두 점으로 구성된 영상 설치 작품이다. 주요 작품인 〈드로잉 비디오〉는 2007년 김성환과 권병준, 데이비드 마이클 디그레고리오가 함께 공연했던 〈푸싱 어게인스트 디 에어(pushing against the air)〉라는 퍼포먼스에서 김성환이 행했던 라이브 드로잉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 공연은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세 예술가가 자신들이 경험한 음악과 문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연주하고, 여기에 김성환 작가의 드로잉 퍼포먼스가 더해졌던 ‘인터뷰 콘서트’였다. 〈드로잉 비디오〉 설치의 또다른 영상 〈커버〉는 김성환과 긴 시간 공동으로 작업해온 디그레고리오의 작품이다. 개와 함께 바닷가에서 산책하는 남성의 모습을 찍은 16mm 필름인 〈커버〉가 〈드로잉 비디오〉 설치의 구성을 이루는 것은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작가들의 협업의 의미, 김성환의 작업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디그레고리오의 음악에 바치는 헌사이다.

6) 박승원, 〈지극히 평범한 하루〉

박승원, 〈지극히 평범한 하루〉, 2020, 2채널 비디오 설치, 17인치 모니터 6분 34초, 43인치 모니터 17분 55초
〈지극히 평범한 하루〉는 2채널 비디오 설치 작품이다. 작가는 좌우로 흔드는 머리와 누워서 들어 올린 다리를 촬영한 영상 두 개를 모니터로 보여준다. 눈을 질끈 감고 좌우로 흔드는 머리는 촬영한 방향과 반대로 거꾸로 매달려 있다. 반면, 하늘을 향해 들어 올린 다리는 일반적으로 직립하는 방향으로 디스플레이된다. 작가는 이 작업의 모티프를 백남준의 퍼포먼스 비디오 〈머리와 발〉에서 얻었다. 모티프가 된 영상에서 백남준은 불편한 몸과 머리를 계속 저으며 신체를 깨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반복한다. 박승원 역시 모니터에 갇혀있는 신체와 그 프레임을 벗어나려는 탈주의 노력을 통해 감각하는 몸을 보여준다. 작가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라는 제목 아래 삶과 죽음에 대한 충동의 경계에 놓인 신체를 인지하는 것이 삶의 평범한 수행임을 말한다.

7) 언메이크랩, 〈유토피아적 추출〉

언메이크랩, 〈유토피아적 추출〉, 2020, 미디어 설치, 3채널 비디오, 돌, 웹캠, 컴퓨터, 실시간 객체인식 A.I. 시스템, 가변설치
〈유토피아적 추출〉은 동명의 영상과 더불어 〈생태계〉, 〈시시포스 데이터셋〉, 그리고 1개의 설치 〈신선한 돌〉로 구성되어 있다. 〈유토피아적 추출〉은 사대강 사업으로 생성된 거대한 모래산, 간척 사업에 사용할 토석을 조달하기 위해 파헤쳐진 새만금 해창석산 등의 현장이 담긴 32분 길이의 영상 기록이다. 언메이크랩은 현장에서 외곽이 깨어진 돌들을 가져왔고 돌들은 인공지능 학습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적은 데이터 양을 부풀리는 전처리 과정, 데이터 증강을 거쳐 25장이 1만장의 데이터로 증폭되었다. 이 데이터로 이루어진 영상 〈시시포스 데이터셋〉, 인공지능의 시각이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영상 〈신선한 돌〉에 등장하는 돌은 인간 중심적 서사와 인간의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기술을 탈인간적으로 바라보는 은유다. 또 다른 영상 〈생태계〉는 하나의 물체를 각기 다른 객체로 읽어내는 인공지능의 시각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언메이크랩은 인간의 인식체계 바깥에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의 “참신한“ 가능성에 주목한다.


8) 박선민, 〈버섯의 건축〉


박선민, 〈버섯의 건축〉, 2019, 4K 단채널 비디오, 컬러, 유성, 15분 18초

박선민은 현미경의 미시와 망원경의 거시를 아우르는 양안으로 통상적으로 감각되지 않는 장면들을 포착하고, 일상적 삶에 내재된 균열 속 파편들을 표현한다. 〈버섯의 건축〉은 2017년부터 일 년간 제주 곶자왈 숲속 버섯을 낮은 시선과 느린 움직임으로 관찰한 영상에 국내외 건축가 13명의 건축에 대한 내레이션을 결합한 작업이다. 버섯은 유기물을 분해하며 양분을 섭취해 살아가는 균류로 숲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생태적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으로 버섯은 기둥과 지붕이라는 건축적 구조를 압축적으로 가진 생명체이다. 대량 생산의 결과로 사라지지 않은 물질이 인류와 자연에게 위협으로 다가오는 시대에 이 작품은 버섯의 소멸과 생성을 건축의 다양한 화두에 대조하거나 겹쳐 놓으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상상하게 한다. 작가는 “부분을 살피면서 전체를 가늠”하고자 한다. 숲속에서 버섯보다 “낮고 느린 움직임으로 큰 숲을 가늠하고 큰 세계를 상상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숲속 바닥의 버섯을 관찰하면서 우리는 자연이 구축한 구조와 인류가 구축한 건축을 떠올리고 그 붕괴와 소멸에 대해 사유할 수 있다. 이렇게 〈버섯의 건축〉은 인류세를 관통하는 찰나에 필요한 시적 통찰과 감각을 보여준다.

9) 업체eobchae × 류성실, 〈체리-고-라운드〉

업체eobchae × 류성실, 〈체리-고-라운드〉, 2019, 단채널 비디오, 컬러, 유성, 27분 9초
허구 속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점의 서사로 구성된 〈체리-고-라운드〉에서 ‘체리 장’과 ‘발해인1’이라는 인물의 브이로그 및 2인칭 시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첫 파트는 2019년 가상의 도시 ‘선전시(市)’에서 체리 장이 스스로 고안한 ‘브라이트닝 이론’에 따라 지구를 하얗게 만드는 비법을 담은 인터넷 방송을 송출한다. 두 번째 파트는 이 방송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게 된 체리가 브랜드 이미지로 생성되고 소비되며 강력한 권력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세 번째 파트는 서기 2049년 전자정부의 감시체계가 강화된 선전1시에서 벌어지는 발해인1의 모험을 담는다. 작품은 기후와 환경의 문제, 디지털 통제와 감시, 권위주의 정치와 양극화된 경제와 노동 등 사회적 이슈들이 얽혀 있는 가상 사회를 다루면서 그 속에 소비되는 동시대 미디어의 얄팍하고 자기 과시적인 측면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10) 김희천, 〈탱크〉

김희천, 〈탱크〉, 2019, 단채널 비디오, 컬러, 유성, 42분
〈탱크〉는 잠수부들이 훈련을 위해 사용하는 ‘감각 차단 탱크(sensory deprivation tank)’ 시뮬레이션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작품은 “감각이 박탈된 상황에서 몸을 극단적으로 확장시키는” 탱크의 사용자 매뉴얼을 낭독하는 서두를 거쳐 세 파트로 구성된다. 사망한 여성 잠수부 송여름의 훈련일지와 시뮬레이션 영상을 그대로 다시 따라가는 작품 속 화자는 “몸이 물이 되고, 물이 내가 되는” 감각적 마비 상황을 경험한다. 이후 그는 시뮬레이션 과정 도중 기억 상실을 겪는다. 과거와 미래, 현재의 시점이 압축되고 기억나지 않는 과거가 영상으로 기록되어 눈앞에 나타나자 그는 감각과 시간이 모조리 혼돈된 상태에 빠진다. 세 번째 파트에서 케이팝(K-pop) 안무를 몸에 장착하여(embed) 자동으로 춤을 춤으로써 신체를 ‘자동화’ 시키려는 멕시코의 한 컬트 집단 이야기는 탱크 속에서 경험하는 신체 감각과 유사한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11) 노진아, 〈진화하는 신, 가이아〉

노진아, 〈진화하는 신, 가이아〉, 2017/2023, 인공지능 로보틱스 조각, 레진, 나무, 인터렉티브 시스템, 350 × 300 × 200 cm
'가이아'란 대지의 어머니이자, 스스로 조절하며 상호작용하는 지구를 칭한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를 자기조절 능력을 가진, 즉 모든 생명체와 무생물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에너지를 보충하는 유기체로 본다. 자기조절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지구의 생명체를 동경하여 ‘가이아’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기계인형은 반은 사람, 반은 나무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단순한 질문에도 꽤 복잡하고 철학적인 대답을 한다. 관객과 가이아의 대화만을 놓고 보면 빈곤한 상상력은 오히려 인간의 영역인 것처럼 느껴진다. 완성되지 않은 인공생명체는 여전히 아기같은 단계지만 관객과의 대화를 학습하여 놀라운 속도로 자라나며, 어느 순간 자기조절 능력과 자기복제 능력을 갖추고 우리를 지배하는 여왕, 가이아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작가는 원본과 복제물인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가 경쟁과 대결보다는 오히려 공진화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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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백남준아트센터는 작가가 바랐던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을 구현하기 위해 백남준의 사상과 예술활동에 대한 창조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연구를 발전시키는 한편, 이를 실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