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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박물관

실학박물관, 이 시대 지역 박물관의 역할과 의미를 되새기다 1

개관 15주년 기념 특별공연 《실학연희》






















 

“얼쑤~” “조~오~타” “어휴~ 놀랐네”…. 지난 10월 27일 일요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실학박물관 다산정원. 잔디밭에서 공연을 즐기던 수백 여 명의 관람객 사이에서 추임새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신명 나면서도 아슬아슬한 줄타기 공연에서는 아찔한 순간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입을 다물지 못하던 외국인 관객은 ‘줄타기’가 국가무형유산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이란 말에 남다른 흥미를 보이기도 했다.  


  이날 공연은 (재)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이 개관 15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특별공연 ‘실학연희(實學演戱)’다. 국악 기반의 연주그룹인 시락밴드의 창작 국악, 진주 오광대 예능보유자 강동욱의 한량무, 국가무형유산 태평무·살풀이 전수자인 이지은의 남도소고춤, 줄타기 예능보유자인 김대균 명인과 한산하 이수자의 줄타기 공연 등 전통연희로 구성됐다. 전날인 26일에는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1762~1836)과 동시대를 살았던 서양 음악의 성인 베토벤(1770~1827)의 만남을 주제로 한 클래식 연주회가 열려 호응을 얻었다.




 특별공연을 마련한 실학박물관은 실사구시(實事求是) 등 조선 후기 실학 정신의 시대적 가치와 의미, 실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다루는 역사박물관이자 복합문화공간이다. 2009년 남양주시 조안면 팔당호를 끼고 있는 다산 정약용 유적지에 문을 열었다. 실학 관련 소장품의 수집과 보존·연구, 상설전과 기획전 등의 전시,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날 줄타기 공연을 관람하던 조안면 주민 박모 씨는 “지역에 살다 보면 전통연희, 클래식 같은 공연을 가까이에서 접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며 “줄타기를 처음 눈앞에서 본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 저까지 흥이 난다”고 말했다. 현장을 찾은 경기문화재단 유인택 대표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등 생각보다 많은 관객들이 찾아주고 또 모두들 만족스러워하시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밝혔다. 실제 지역 주민들, 나들이객 모두 모처럼 흥겨운 시간을 보낸 표정들이었다.


 필자 역시 ‘취재 기자’가 아니라 ‘지역 주민’으로 공연을 즐겼다(필자는 13년 전 서울을 떠나 실학박물관 건너편인 양평군 양서면 용담리에 살고 있다). 이날의 공연,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의 모습은 필자로 하여금 갖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문화향유권(문화권)의 가치,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예술 향유 기회 확대의 중요성, 문화에술이 지닌 힘…. 특히 전국 각 지역에 있는 박물관, 미술관 같은 국공립 문화예술기관의 역할, 의미도 새삼 돌아보게 됐다.




 우리는 누구나 문화예술을 골고루 누리고 즐길 권리인 문화향유권, 문화권을 갖고 있다. “문화권이란 권리도 있느냐”고 의아해할 수 있지만 분명히 있다. 아주 중요한 기본권의 하나다. ‘문화기본법’은 ‘문화에 관한 국민의 권리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문화기본법 제4조는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정치적 견해,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권리(이하 문화권)를 가진다’고 명시한다.


 제5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국민의 문화권 보장을 위해 해야 할 ‘책무’도 명확히 했다. ‘문화 진흥 정책의 수립과 시행’, ‘지역 간 문화격차의 해소’, ‘경제적·사회적·지리적 제약 등으로 문화를 향유하지 못하는 문화소외 계층의 문화향유 기회 확대를 위해 필요한 시책 강구’ 등이다.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 인권선언(UDHR)’의 제27조는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향유하며(enjoy),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했다. 문화 향유가 인권이라는 것이다. 실제 세계 각국은 국민들의 문화권 보장, 확대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우리는 이 문화권을 얼마나 잘 누리고 있을까.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경제적으로 선진국에 접어든 한국이지만 문화 격차, 문화적 불평등은 부끄러울 만큼 심각하다. 문화시설과 문화예술 활동이 몰린 도시와 그렇지 못한 지방의 지역적 문화격차가 대표적이다. 소득 수준이나 세대, 교육, 정보 불평등, 장애의 유무 등에 따른 문화적 격차도 크다. 국민들의 문화권 보장, 문화격차 완화를 위한 정부와 지자체들의 보다 효율적·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한 것이다.


 문화격차가 심화되는 현실 속에서 실학박물관 같은 전국 지역 문화예술기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문화향유 기회의 제공 같은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어서다. 지역민들이 찾아가고 싶은 전시나 공연, 인문학적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민과 소통·교감하면서 문화예술 사랑방·허브가 될 수 있다. 실학박물관의 이번 특별공연도 그런 사례의 하나이다.



'실학박물관, 이 시대 지역 박물관의 역할과 의미를 되새기다 2'에서 계속됩니다.




세부정보

  • / 도재기 경향신문 문화부 선임기자(전 논설위원, 문화부장)

    사진/ 최원일, 김준태

    편집/ 박한별(실학박물관 학예연구팀)

    주소/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747번길 16

    관람시간/ 10:00~18:00(17:30 입장마감)

    문의/ 031-579-6000

글쓴이
실학박물관
자기소개
실학박물관은 실학 및 실학과 관련된 유·무형의 자료와 정보를 수집·보존·연구·교류·전시하며 지역 주민에게 교육과 정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한 즐거움을 제공하는 다목적 차원의 문화복합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건립한 국내 유일의 실학관련 박물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