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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쓰는사람

코끼리가 있는 사찰 한 바퀴, 출렁다리 있는 호수 한 바퀴

파주 보광사와 마장호수




보광사 대웅보전


보광사는 파주 광탄면 고령산 자락에 자리한 아늑한 도량이다.  많은 이들이 국내 유수의 사찰에 방문했을 때 단청이 빛바랜 목조 전각을 보고 반가워한다. 단청은 시간이 흐르면서 퇴색할 수밖에 없다. 해서 본래 나무의 결과 색이 드러난 전각 앞에서 건물의 유구함을 직감하는 것이다. 부석사 무량수전, 내소사 대웅보전, 봉정사 대웅전, 미황사 대웅전 등이 대표적이다.


미술사학자 최순우는 부석사 전각들을 두고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이라고 표현했다. 빛바랜 단청 건물에 대한 시적 감상이다. 습하고 뜨거운 여름이 있고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나라에서 단청이 희끄무레해지도록 살아남은 옛 목조 건물은 드물고 귀하다. 그래서 직접 마주했을 때의 감흥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보광사 대웅보전도 그렇다. 오래된 목조 건물에 색을 덧입히지 않는 이유는 당연히 처음 칠했던 단청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응진전과 대웅보전, 만세루 풍경


고박한 건물들도 한 때는 화려하고도 고운 색채의 단청을 뽐냈을 것이다. 단청은 단순히 멋을 내기 위함이라기보다 목재의 갈라짐과 썩음을 막는 실용적인 목적과 불교의 교리를 미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 따라서 단청 문양의 종류와 회화적 기법, 회화 소재들의 상징은 매우 다양하며 아는 만큼 보이는 전문가의 영역이기도 하다.

나들이 삼아 절에 들른 나 같은 이에게는 재해와 전쟁의 풍파를 견딘 목조 전각의 고색창연함에 감탄하는 것만으로도 감상은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장을 단청에 할애한 까닭은 보광사 대웅보전을 마주한 이방인의 시선이 단지 전각의 전체적인 풍치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대웅보전 북측 판벽화. 좌측은 백의관음 우측은 보현보살과 흰코끼리 


보광사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622년 중창한 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왔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화려한 공포(栱包)와 섬세한 조각, 봉안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2구의 협시보살상 등이 그 가치를 더하는데 전각의 하이라이트는 건물 동, 남, 북 삼면의 벽화다.


보편적인 흙벽이나 회벽이 아닌 나무 벽체로 이루어진 외벽에는 민화를 연상케 하는 19세기 후반의 불교 벽화가 그려져 있다. 경내로 들어서는 방향이기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벽화가 북쪽 우측에 그린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이다. 벽면의 상당부분을 차지한 코끼리는 매우 다부진 외형이다. 굳건하게 땅을 딛고 있는 네 발, 날렵하고 강인해 보이는 눈매는 등에 앉은 보현보살만큼 호방한 기세를 뿜어낸다. 보기에는 회색빛 코끼리지만 불교에서 상서롭게 여기는 ‘흰 코끼리’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는 주인공 리즈가 인도에서 운명처럼 코끼리를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리즈는 조심스레 코끼리에게 다가가 기대고 오랫동안 어수선했던 그녀의 마음에는 일순 평화가 찾아온다. 영화 속 코끼리가 주인공에게 그러했듯, 보광사 대웅보전의 흰 코끼리가 여느 이방인에게 안온함을 전한다고 하면 비약일까. 모르긴 몰라도 흰 코끼리와 보현보살 벽화를 한참동안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좌측 그림은 고해(苦海)를 건너는 중인 백의관음보살의 모습이다. 섰던 자리에서 그대로 건물 뒤로 가면 벽면 가득 그려진 연꽃대좌 위의 동자와 보살, 아미타부처님을 볼 수 있다.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얼굴을 보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외람되지만 오동통한 볼과 제각기 다른 표정의 얼굴들이 몹시 귀엽다. ‘귀여움’은 남쪽 벽면의 사자를 탄 문수보살 벽화에서도 느낄 수 있다. 문수보살을 태우고 느긋하게 뒤를 돌아보는 사자의 모습은 오늘날에 그린 현대적인 캐릭터라고 해도 믿길 만큼 세련되고 친근하다.



어실각과 향나무


이쯤 되면 영조의 친필로 알려진 대웅보전 현판은 조연급 문화재가 되는 것 같지만 보광사는 영조의, 영조에 의한, 영조를 위한 사찰이다. 보광사의 역사는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1740년 영조가 어머니 숙빈 최씨의 명복을 비는 원찰로 삼으면서 그 위상이 높아졌다. 숙빈 최씨의 능인 소령원은 사찰에서 북쪽으로 약 4km 떨어져 있다. 현판 역시 건물의 역사만큼 낡았지만 점잖고 올곧은 서체에선 묵직한 힘이 느껴진다. 본당의 전면부에서 현판 못지않게 시각을 압도하는 것은 단연 웅장한 지붕과 지붕처마를 받친 공포다. 불교 건축에 문외한 사람이 보아도 매우 정교하고 화려함을 느낄 수 있는데 특히 공포 끝에 새긴 수(壽), 복(福) 등의 길상문자는 원찰에서 볼 수 있는 드문 장식이다.



만세루


대웅보전 맞은편 건물은 만세루인데 처마에 걸린 목어가 인상적이다. 절집 목어는 보통 범종누각에 걸려 있기에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영문은 알 수 없지만 곧 용이 되어 날아갈 모양새를 보아하니 범종각이 좁아 바깥으로 나왔나 싶다. 만세루 바로 옆에 범종각이 있다. 그 안에 걸린 ‘숭정칠년명동종’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8로 지정된 조선후기 범종으로 보호를 위해 진품은 대웅전 안에 보관하고 있다.


대웅전을 바로 보고 오른쪽에 있는 맞배지붕 전각 원통전 뒤로 가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어실각과 그 옆에 호위무사처럼 서 있는 향나무를 볼 수 있다. 어실각은 숙빈 최씨의 위패를 모신 전각이다.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사찰에서 가장 작은 건물이지만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건물이다. 향나무는 영조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어머니를 지켜달라는 영조의 바람대로 향나무는 뿌리 내린 지 300년이 훌쩍 지난 오늘까지도 성하고 푸르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호국내불상에서 바라본 경내


절을 한 바퀴 돌아 지장전과 원통전 사이에 나있는 남쪽 담장 문으로 나가본다. 개울의 낭랑한 물소리를 들으며 비탈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전나무 쉼터라 표목을 세운 숲 입구가 보인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은 울울창창한 전나무 군락은 보광사의 든든한 울타리이자 근사한 병풍 역할을 한다. 숲으로 들어서면 나무들 아래 여러 개의 벤치가 있어 잠시 앉아 피톤치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숲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절과 맞닿아 있기에 바람이 불적마다 풍경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진다. 보광사에는 처마 아래 풍경이 많아서 화음을 이룬 풍경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 산새들이 지저귐은 곧 노래가 된다. 이방인은 그저 장단만 맞추면 그만이다. 치유의 숲이 따로 없다.



보광사 전나무숲


보광사를 품은 고령산 등산로를 따라 정상 앵무봉을 오를 수 있다. 이곳에서 마장호수로 하산할 수 있다. 보광사부터 소요시간은 약 2시간. 자동차로는 10분이면 도착한다. 2018년 출렁다리 설치 후 마장호수를 찾는 관광객이 급격하게 늘었다. 언제부터인가 전국 곳곳의 호수며 산에 출렁다리들이 경쟁하듯 생기기 시작했는데 마장호수도 다리 덕을 톡톡히 보았다.



마장호수 풍경


호수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0년 농업용 저수지로 조성되었다가 이후 파주시가 호수와 그 일대를 호수공원으로 개발했다. 산책로, 전망대, 카약체험, 카페 등이 갖춰져 있으며 평일, 주말할 것 없이 사람들로 붐빈다. 숱한 농업용 저수지가 관광화 되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한 시류 속에 눈이 밝지 못한 나는 마장호수만의 대단한 개성을 발견하진 못했다. 그러나 몰려드는 인파를 보면 호수관광개발의 성공사례로 봐도 될 것 같다. 출렁다리를 뒤뚱뒤뚱 걷다가 재미도 감동도 느끼지 못한 채 이내 보광사 전나무 군락이 그리워졌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33권 『50만 살의 청춘- 경기 북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파주시 : 그리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에서 발췌했습니다.

세부정보

  • 보광사/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보광로474번길 87

    마장호수/ 경기 파주시 광탄면 기산리 451-2

글쓴이
걷고쓰는사람
자기소개
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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