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걷고쓰는사람

어떤 패전의 기록, 오산 유엔군 초전기념관을 둘러보며

죽미령 전투와 스미스 특수임무부대


긴 역사 속 승전의 기록을 숱하게 접해왔다. 가장 잘 알려진 승전보는 임진왜란 3대첩일 것이다. 한산도대첩, 행주대첩, 진주대첩은 대첩을 이끈 장군들의 리더십과 병사들, 백성들의 단합과 의기로 왜군을 격파해 후세를 거듭해 회자되어온 승전이다. 적이 퇴각하게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처참한 시간을 보냈을지 가늠할 수 없지만 다행히 승리했기에 더 많은 생명과 영토를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전쟁은 승패를 떠나 그저 일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미 일어났다면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소중한가? 사람이다. 내 목숨이, 내 가족이, 내 가까운 사람들이, 그리고 그들이 평생 살아온 이 땅이 소중하다. 북쪽에서 쏘아대는 미사일이 이제는 한낱 일상적인 뉴스에 그치지 않는 현실임에도 이따금 휴전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불현듯 두려울 때가 있다.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님 댁으로 무작정 가야 할까? 우리 동네 대피소가 어디지? 대피소로 갈 때 지참할 생존 필수품은 무엇일까? 이런 지극히 현실적인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내 나라를 여행하면서 6‧25전쟁과 관련한 수없이 많은 기념관과 각종 기념비, 기념탑 등의 설치물을 접했다. 대부분이 전쟁의 발발과 과정, 휴전 전후 상황을 안내하고 해당 지역에서 일어난 국지전과 국내외 참전용사들의 활약을 소개하며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죽미령에 있는 오산의 유엔군 초전기념관도 비슷한 곳이리라 지레짐작했다. 죽미령 전투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이제껏 많이 보아왔던 6‧25전쟁기념관이겠거니 했다. 그러다 문득 ‘초전’이라는 단어에 눈길이 갔다. 승전도 패전도 아닌 초전初戰. 이름 그대로 첫 전투를 뜻한다. 한편 초전기념관 바로 옆에는 좀 더 큰 규모로 마치 현대미술관처럼 세련된 외관의 큰 건물이 자리한다. ‘스미스평화관’이다. 나는 두 기념관을 모두 둘러본 후 이 건물들이 위치한 죽미령 평화공원을 거닐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죽미령 전투는 6‧25전쟁이 발발하고 열흘 뒤 일어난 유엔군 지상군과 북한군 간의 첫 전투였다. 일본에 주둔 중이던 스미스 중령과 그의 대대는 상부의 지시로 1950년 7월 1일, 수송기를 타고 부산으로 이동한다. 그들은 일본과 이웃한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른 채 한국 땅에 발을 디뎠다. 다시 민간 차를 타고 비가 내리는 악천후 속에 오산 죽미령에 도착한 그들은 새벽 3시부터 죽미령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그리고 오전 8시 16분, 첫 사격으로 시작된 전투는 6시간 15분 동안 치열하게 이어졌지만 결국 오후 2시 30분, 스미스 부대는 퇴각했다.

미군은 105mm 곡사포를 포진해 맹렬한 공격을 했지만 북한군이 앞세운 소련제 T-34전차 행렬에 타격을 주지 못했고 적에 퇴로를 차단당하면서 방어선이 붕괴하고 말았다. 540명의 특수임무부대원이 참전했지만 이중 보병 150여 명, 포병 31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으며 북한군은 기세를 몰아 남진했다. 그러나 북은 미군이 참전하지 않거나 적어도 개입하기 전에 전쟁을 끝낸다는 계획하에 남침을 감행했기에 예상보다 빠른 미 지상군의 참전에 충분히 위축될만한 상황이었다. 또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북한군과 유엔군의 ‘첫 전투’라는 의의, 그리고 이 전투가 이후 전쟁에 미친 효력들은 충분히 알겠다. 그런데 20대가 대부분이었던 이 타국의 젊은 청년들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의 전쟁에 뛰어들어 목숨을 내놓았을까.  스미스평화관의 전시관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이름도 위치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나라, 당신은 그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울 수 있습니까?’ 




타국도 아닌 내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가정한대도 나는 오직 내 목숨을 부지할 생각뿐이다. 가능하다면 사랑하는 가족과 가장 가까운 대피소로 피신한 후 털끝도 다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전시관 초입에는 ‘지금부터 관람객은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일원이 되어 죽미령 전투 현장으로 이동할 것이고 전시시설은 부대원 일인칭의 시점’이라는 안내 문구가 쓰여 있다. 전시관 안은 어두운 조명 아래 포탄이 터지는 소리와 지휘관의 다급한 명령이 찌렁찌렁 울리며 전투 순간을 재현하지만 나는 부대원들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어떻게 해도 헤아릴 길이 없다. 아니, 헤아릴 자신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부대원들을 통솔한 스미스 중령에게 여쭙고 싶다. “도대체 무엇을 지키기 위해 낯선 타국의 사지에 뛰어들었습니까?”    


스미스 특수 임무부대가 받은 임무는 다음과 같다. ‘한시라도 빨리 한국 전선에 기동성 있게 투입해 가능한 북쪽에서 적의 침공을 최대한 저지하라.’ 스미스 중령과 이하 부대원들 모두 군인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조국의 명령을 이행했다. 후대의 사람들은 죽미령 전투의 의의를 이렇게 적는다.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유엔의 결의에 따른 첫 지상군 파병’. 




나는 어떻게든 이들의 죽음을 이해하고 싶었다. 지키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것이 자유, 평화, 조국과 같은 대의적인 단어는 아닐 것이라고. 그것은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나라와는 인연이 없는 이들이 지키고자 한 사람이 누군지, 혹은 구체적인 그 무엇이 있는지 추측할 길이 요원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실로, 명분뿐이었을 수도 있는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포화 속에 산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패전의 기록은 그 어떤 승전보다 숭고하며 경이롭다. 초전기념관 내에는 부대원 540명의 명판이 새겨져 있다. 나는 전시관의 그 어떤 시각 자료보다 이 명판이 귀하다.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이름들을 눈으로 훑는 그 순간만큼은 그들의 희생이 교과서의 건조한 문장이 아니라 뭉클한 실존으로 와닿는 것이다. 6‧25전쟁의 참전용사가 아니라 수많은 바비, 찰스, 도널드, 에드워드, 제임스에게 인생의 아주 커다란 사건으로써 6‧25전쟁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유엔군 초전기념관과 스미스평화관 주변은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여러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는 평화공원이다. 공원은 지대가 높아서 외삼미동 일대가 너르게 내려다보인다. ‘죽미령’이란 이름처럼 고개가 맞구나 실감할만한 전경이다. 현재는 주변에 건물이 많아서 시야가 멀리까지 트이진 않지만 전쟁 당시의 죽미령은 인근 경부국도와 철도, 북쪽으로 10km 떨어진 수원까지 관측할 수 있어 적의 이동을 알아차리기 좋은 위치였다. 공원에는 540명의 스미스 부대원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문이 ‘워터커튼’이라는 이름으로 설치되어 있다. 직각의 철제 시설물의 3개 문으로는 물이 떨어진다. 가까이 다가가면 표면의 탄환 자국처럼 보이는 음각이 부대원들의 이름임을 확인할 수 있다. 밤이 되면 조명이 켜져 이들의 이름이 어둠을 밝힌다.




워터커튼을 지나면 커다란 인공못이다. 못의 수면 위로 전진하는 참전용사의 모습이 반영된다. 수조 가장자리에 군인의 모습을 음각한 시설물을 설치해 그 모습이 그대로 물에 비치도록 한 ‘거울연못’이다. 내가 방문한 날은 일요일 오후라 공원에 어린이들이 많았는데 그중 몇이 물에 손을 담그고 물장구를 쳤다. 물에 파동이 일어나자 반영된 참전용사들의 모습이 흐트러지고 부서졌다. 무구한 얼굴로 신이 난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물장난을 즐거워했고 그들의 부모들 또한 함박 따라 웃으며 자식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 역시 미소 지었다.

죽미령 평화공원은 추모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엄숙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곳은 아니다. 가족 공원으로서 휴식처 역할도 하고 또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그 자체로 ‘평화’를 상징한다. 70여 년 전 그날, 이곳에서 총을 들고 싸웠던 스미스 부대원들이 오늘날 이곳 공원의 모습을 본다면 흐뭇해하지 않을까 싶다. 기꺼이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그들에게, 그리고 그중 전장의 이슬이 된 그들이 혹여나 분노하고 슬퍼했다면 진심으로 말씀드리고 싶다. 덕분에 우리 국민이 ‘평화’를 느끼며 살아가노라고. 당신들이 사력을 다해 싸웠던 죽미령 위에서 이제는 아이들이 해맑게 뛰어놀고 있다고. 당신들이 오늘의 평화를 지켜냈노라고. 모두 당신들 덕분이라고.




거울연못을 지나면 ‘감사’라는 꽃말을 가진 다알리아꽃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참전용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설치되어 있다. 이 조형물을 지나면 죽미령 전투 참전자 숫자에 맞춰 540여 개 돌로 쌓아 올린 초전기념비가 보이고 이 기념비를 지나 언덕을 따라 오르면 죽미령 반월봉이다. 정상에는 죽미령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고 그 중앙에는 대형 태극기가 펄럭인다. 그리고 전망대 위의 스미스 중령 동상은 여전히 망원경을 들고 오산 북녘을 바라보고 있다.


어떤 패전은 승전보다 명예롭고 어떤 군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지킨다. 죽미령 전투의 스미스 부대원들을 포함해 유엔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22개국 195만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에 감사드린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 본 글은 '경기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 제41권 『우리들의 캠퍼스 - 경기 남부로 떠나는 시간여행』, <오산시 : 오색빛깔 까마귀>에서 발췌했습니다.


세부정보

  • 유엔군 초전기념관

    주소/ 경기 오산시 경기대로 742

    관람시간/ 9:00~18:00, 월요일 휴관

    누리집/ www.osan.go.kr/osanu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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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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