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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상상캠퍼스

생활의 문화를 짓는 건축가들 2

안양 관양동 스펑키엘 디자인랩 윤경숙, 차주협

이 글은 《우리동네 펍》 본문 글입니다.


김진주 / 사진작가


  • 골목길에서 놀자, 놀이터에서 놀자, 도시에서 놀자


〈길에서 놀자!〉 프로젝트를 보면 주로 아이들이 참여자였고, 마을 풍경 관찰하기, 장소/지도 읽고 만들기, 생 태/자연환경에 관한 지식 구하기 등의 활동에 중점을 두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세 가지 조합으로 찾으려 한 목 표는 무엇이었나요?


   건물 밖, 도시를 돌아다녀 보니 굉장히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는데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본다든가 공 간 안에서 주로 활동을 해요. 건물 밖에 나와서 골목을 누비면서 뭔가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찾고 싶었어 요. 그리고 ‘예술가들이랑 하면 재미있는 것들이 나오지 않을까요?’ 차 키즈 카페도 그렇고. 노래방, 찜질 방. 우리나라가 사실 방 문화가 굉장히 발달되어 있는데. 윤 소장님이 체재하던 뉴욕에는 사람들이 도시 를 접할 수 있는 이벤트들이 굉장히 풍부하다더라고요. 집 밖에 문 열고 한 블록만 나가면 갤러리가 있고, 뮤지엄이 있고, 공원이 있고, 그 공원 안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근데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그런 것들을 찾을 수가 없잖아요. 서울에나 있을까요? 관양동에 놀이터가 열 몇 군데죠? 굉장히 많아요. 근데 활용이 안 돼요.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어요.


   동네 소규모 부지에 만들어진 이런 놀이터를 저희는 ‘포켓 놀이터’라고 해서 지도 위에 빨간색 점으로 표시했어요. 도시 계획에서는 놀이터로 지정돼 있었겠지만, 원래는 아무것도 없는 공터였어요. ‘다보람 놀이터’만 빼고는 다 기성품 가져다놓은 똑같은 놀이터예요.


   놀이터의 구조나 위치도 문제예요. 놀이 터가 불법 주차된 차들로 둘러 있어요. 테두리에 나무들을 너무 빽빽이 심어서 안이 보이지도 않아요. 놀 이터까지 시선이 확장돼서 들어갈 수 있는 이상적인 놀이터가 없었어요.


   아이들이 어떤 놀이터에서 놀 고 싶은지 부모들이 들었으면 좋겠고, 그런 상상하는 놀이터를 바탕으로 우리가 살고 싶은 마을에 대 해 같이 고민하고 토론하고 얘기를 많이 하고 싶었어요.


그 아이들 중에서 “20년 후에 내가 이 동네 놀이터를 바 꿔 보겠다.”는 아이가 나오면 좋겠습니다.




▲〈길에서 놀자!〉 프로젝트를 하며 찍은 사진들. 관양동 일대에서 진행됐던 〈길에서 놀자!〉 프로젝트는 아이들을 포함한 다양한 주 민들이 예술가와 생태 전문가와 도시를 답사하며 나무들에 관해 배우고 놀이터와 마을을 상상해 보는 작업이었다. 이들은 무심코 지나가는 동네 길가에 등나무를 시작으로 쉬나무, 가이즈카 향나무, 주홍날개꽃매미가 좋아하는 가죽나무, 하늘하늘 이태리 포플 러, 벽오동, 목련나무, 스트로브잣나무, 중국단풍, 홍단풍, 청단풍, 공룡시대부터 살았다는 메타세콰이어, 울릉도 출신 섬잣나무, 튤립나무 등 너무나 다양한 나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배우고, 그리고 마을 사람에 의해 죽거나 형태가 변형된 나무들도 많이 눈에 띄더라는 성찰을 하기도 했다.



  • 골목길에서 함께 충전하기


〈길에서 놀자!〉 프로젝트는 다른 기획자, 예술가들과의 연대를 통해 가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모여서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뭐 라고 생각하세요? 여러 사람이 모이다 보면 누구는 꼭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될 텐데, 서로 힘든 부분도 있지 않을까요?


   저희 단체 이름이 ‘골목길’이에요. 함께한 예술가 분들은 대부분 동네 친구들이에요. 종이모형작가 장형순, 사진작가 김준, 임진세, 그리고 김동민 작가는 지역 예술가 분들이에요. 나무 전문가 김학송 선생님은 〈충전 빳데리 골목 프로젝트〉의 인연으로 〈길에서 놀자!〉에도 참여해 주셨고요. 판을 짜는 일은 제가 하고 작가 분들은 살을 더해 주었어요. 이전에 함께 답사했던 경험이 있어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홍보 부분도 동네 친구가 맡아 참가자를 금방 모을 수 있었고요. 무슨 일이든 사람이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길에서 놀 자!〉 이전에 사적인 친밀도가 있어서 함께 신나게 길에서 놀 수 있었죠. 힘든 부분은 지원 사업이라 정산 작업이 어렵긴 했죠.


   제가 볼 때는 불을 지피는 사람이 한 명 있어야 해요. 그 사람이 “뭔가 재미있을 거 같아.”라고 하면 또 덤벼드는 사람이 있어요.


   사실 고통스러워요. 결과물에 대해 저희는 비전문가가 하는 걸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어떤 작업을 하든 개인적 성장이 된다고 생각해요. ‘누구랑 이걸 해서 좋아.’ 이런 것보다는 ‘이걸 하면 조금은 힘들 거야. 그래도 우리가 어느 정도 성장하겠지.’라는, ‘시작점이면 끝점은 다르다.’는 믿음, 그런 건 있을 거 같아요.



          ▲〈길에서 놀자!〉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만든 관양동 놀이터 지도. 넓지 않은 동네에 모양새가 비슷비슷한 놀이터 수십 개가 있다고 한다.


  • 골목에서 만난 사람들


〈충전빳데리골목〉은 어떤 동네에서 펼쳐졌나요? 카센터가 즐비하고, 사이사이 노래방이 있는 곳이죠? 주민들 반응도 궁금하고요.


   굉장히 재미있는 동네에 있는 작은 도서관 ‘이야기너머’가 주관을 했어요. ‘밧데리 골목’으로 불 리다가 이제는 카센터가 사라지고 ‘바-골목’이라고 하는 곳인데, 거기 도서관이 있다는 자체가 얼마 나 흥미로워요. 동네 사람들 인터뷰해 보면서 마을에 대해 많이 알게 되잖아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다는 면에서 구술 채록을 중시하는 이야기너머를 굉장히 존경해요. 간소하지만 전시 오픈 때에는 이야기너머에서 바이올린을 배우는 지체장애아들, 학부모들이 공연을 해 주셨어요 . 주민 분들이 “우리 동네에 이런 이야기가 있구나.” “이 사람 알아, 여기는 우리 옆집이네.” 이런 이야 기들을 하시니 좋았어요.



▲〈충전빳데리골목〉 전시 소책자에 실린 전지 작가가 그린 명학시장


최근 스펑키엘 디자인랩 활동 중 에는 사람들이 사는 ‘집’에 관한 작 업이 두드러진다. 사십 대 중반의 맞벌이 부부와 유치원생 아이, 그리고 육아와 살림을 돌보시는 시어머니가 모인 가족을 위한 아파 트 내부 공간을 재구성하는 작업 에 ‘순환하는 집’이라는 제목을 붙 이고, 젊은 부부와 자녀와 할머니가 함께 살 단독 주택을 짓는 작업 에는 ‘온기 있는 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온기 있는 집’의 단면 모 형 뒤로 공간과 사람의 관계에 관 한 고민을 담은 다른 작업들의 스케치도 보인다.


  • 다시 찾을 공유 마당


〈충전빳데리골목〉 프로젝트는 경제적으로도, 공동체적으로도 침체되어 보이는 한 동네에 환경과 생태, 생활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공동의 움직임을 모색한 활동이었지 요. 프로젝트의 주된 배경인 명학시장은 어떻게 찾게 되었나요?


   명학시장은 저희가 안양에서 찾은 보물 중 하나예요. 주민들과 독서 모임을 하고 마을 답사도 하면서 그곳에서 명학시장이라는 굉장히 재미있는 건물을 발 견한 거죠. 명학시장이야말로 주상복합이에요. 아파트 3층 대문 앞에 마당이 있 어요. 앞마당에서 장도 담그고 김장도 하고 식물도 키우고. 9180년에 지어진 건 물인데, 우리가 앞으로 아파트나 공동 주거를 짓게 되면 명학시장처럼 디자인해 야겠구나 싶었어요. 당시만 해도 집에 당연히 마당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 그게 아파트에 투영된 거죠. 지금 일반적인 아파트는 옆집과 굉장히 단절된 상 태에 있는데, 문을 열면 마당이 보이고 앞집에 누가 사는지 볼 기회가 없잖아요. 만약 그런 일들이, 그런 이벤트들이, 공유 마당이 우리 삶 속에 항상 있다면 지금 과는 굉장히 다른 공동체를 갖게 되지 않을까요?


   아이러니한 거 같아요. 공동체가 강했던 주거 환경에서 공동체가 거의 만들 어질 수 없는 주거 환경으로 바꿔 놓은 다음에 또다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엄 청난 노력과 자본을 퍼붓고 있잖아요. 신도시 계획에서 굉장히 안 좋은 케이스 가 집과 다른 공간을 단절하는 거예요. 어딘 학원만 있고, 식당만 있고, 펜스도 쳐 있고요. 그런 걸 보면 상상을 하죠. 저기를 허물어서, 길을 내서, 저기 저층부는 다 상가를 만들고, 그리고 위에 털고, 날리고!



▲ 건축가들은 새로운 공간을 앞서 상상하고 계획한다. 도시라는 큰 범위나 공공적 공간을 염두에 둔 건축 계획은 일부러 긴 시간을 두고 디자인과 실행을 숙고해 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스펑키엘 디자인랩은 안양교 인근에 공공 화장실과 쉼터를 제안했다. 이러한 건축가의 제안은 계획만으로도 공동체에 어떤 화두를 던져 준다.



▲ 마을에서, 나와 이웃의 집에서 삶의 이벤트를 짓는 스펑키 엘 디자인랩의 건축 프로젝트 이미지. 사진은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집'(왼쪽), '순환하는 집'(오른쪽)



  • 건축가로서 짓고싶은 미래


이전의 프로젝트에서 문화 기획자에 더 가깝게 활동했다면, 스펑키엘 디자인랩 이름을 걸고 ‘건축가로서’ 공동체의 문화, 사회적 문제에 개입하고 실행하려는 것 같아요.


   우리 건축가들이 상위 1퍼센트를 위한 건축이 아니라 좀 더 우리 가까이에 있는, 내 친구들, 서민들, 중산층, 그런 사람들의 생활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건축을 하고 싶어요. 개인 주거든 공공 건물이든 생활이 단순히 그냥 편해지는 게 아니라 생활이, 일상이 조금씩 새롭게 변화되고, 그 차이를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건축이 중요해요. 차 우리 주변에 있는 건축적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해 요. 예전에 들었으면 굉장히 싫어했을 텐데, 이젠 동네 건축가라고 해도 그렇 게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사람들하고 같이 건축적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환 경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활동 중 굉장히 중요한데 저희가 시작도 못 한 프로젝트 중 하나 는 ‘집을 통한 자서전’이에요. 사람들이 자서전을 쓰면 업적 위주로 쓰잖아요 . 저는 사람의 인생을 집이라는 특정 공간을 중심으로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요. 집과 얽힌 자기들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그 공간에서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만드는 거죠. 예전에는 다 집으로 갔잖아요. 친구 집으로. 누구 집으로. 집이라는 공간은 손님이 오면 저절로 가꾸게 돼요 . 집의 크기와 상관없이 본인들의 개성을 잘 표현하는 분들이 있어요. 집이 마치 그 사람 같죠. 그렇게 집에 관한 우리들의 이야기와 추억을 담고 싶어요.


건축가로서 미래의 결속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오프라인 관계라 할 수 있는 결속은 점점 사라지고 있죠. 다들 스마트폰을 보고 있잖아요. 오히려 스마트폰이 눈 속으로 들어오면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거 같아요. 앞으로 결속이라는 정의가 우리가 모르는 정말 뭐 상상도 못 할 방법이나 차원으로 올 수 있어요. 좀 만화적인가요?


   너무 멀리 갔어.(웃음)


건축가적 상상이네요. 공학적이에요.(웃음)


윤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 나는 상호작용이 결속을 만들고, 그것들이 교차하면서 또 다른 결속이 생기죠. 이런 결속이 일어날 수 있는 판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세부정보

  • 우리동네 펍

    / 펍에 실린 12팀의 인터뷰이는 2016년 9월부터 조사한 문화재생 활동단체 중에 선별 추천되었다. 문화재생 활동단체 조사는 문화재생팀 신설 이후, 도내 문화재생 활동에 대한 모집단 규모와 수요 파악을 위해 실시되었다. 조사원은 각 지역에 활동 기반을 둔 청년 중심으로 구성하여 같은 지역 내에서 활동 하고 있는 단체를 심층 조사하였다. 조사 대상은 공동체 철학이 반영된 문화재생 기획과 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단체와 활동 내용을 중심으로, 지역을 거점 삼아 활동하게 된 계기와 계획, 지역 관계 정도, 재원 확보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수집하였다. 조사 결과는 재단문화재생 사업에 반영하여 활용하게 된다.

글쓴이
경기상상캠퍼스
자기소개
옛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부지에 위치한 경기상상캠퍼스는 2016년 6월 생활문화와 청년문화가 함께 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울창한 숲과 산책로, 다양한 문화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경기상상캠퍼스는 미래를 실험하고 상상하는 모두의 캠퍼스라는 미션과 함께 새로운 문화휴식 공간으로 거듭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