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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조(목적)
본 가이드는 재단법인 경기문화재단의 ‘온라인 아카이브 플랫폼 지지씨(www.ggc.ggcf.kr. 이하 ‘지지씨’)’의 기관회원(이하 ‘회원’)의 정의 및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회원의 생산자료에 관한 기록 저장과 활용에 관한 내용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합니다.
제2조(정의)
본 가이드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지지씨’는 경기도 소재 문화예술기관의 생산자료 등록과 확산을 위해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온라인 아카이브 플랫폼입니다.
② ‘회원’이란 소정의 가입 승인 절차를 거쳐 지지씨 글쓰기 계정(ID)을 부여받고, 지지씨에 자료 등록 권한을 부여받은 경기도 소재 문화예술기관 및 유관기관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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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경기문화재단은 본 가이드의 내용을 ‘회원’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지지씨 플랫폼의 기관회원 등록 안내 페이지에 게시하여, 자유롭게 내려받아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합니다.
② 본 가이드는 경기문화재단의 온라인 플랫폼 운영 정책 및 저작권 등 관련 법규에 따라 개정될 수 있으며, 가이드를 개정, 적용하고자 할 때는 30일 이전에 약관 개정 내용, 사유 등을 '회원'에 전자우편으로 발송, 공지합니다. 단, 법령의 개정 등으로 긴급하게 가이드를 변경할 경우, 효력 발생일 직전에 동일한 방법으로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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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기문화재단의 고지가 있고 난 뒤 효력 발생일까지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을 경우, 개정된 가이드를 승인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제4조(회원자격 및 가입)
① ‘지지씨’의 ‘회원’은 경기도 소재 문화예술기관과 유관기관으로 합니다. ‘회원’은 글쓰기 계정을 부여받은 후 지지씨에 생산자료를 등록하거나, 게시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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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분류 | 외부기관 | 경기문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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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분류 | 뮤지엄(박물관,미술관)/협회/문화예술공공기관/시군청 담당부서 등 | 본부/기관 |
아이디 | 사업부서명/사업명 | 사업부서명/사업명 |
글쓴이 노출 | 아이디와 동일(한글) | 아이디와 동일(한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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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미술관
경기도 현대공예의 콘텍스트 읽기
2017-07-21 ~ / 《크래프트 클라이맥스: 경기 현대공예 2017》전시연계 학술세미나
이 글은 《크래프트 클라이맥스: 경기 현대공예 2017》전시연계 학술세미나 발표문입니다. |
경기도 현대공예의 콘텍스트 읽기
글. 최공호(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 )
장인의 땅, 경기
경기는 본디 장인의 땅이다. <주례 고공기>에 ‘장인이 성읍을 건설한다.(匠人建國)’ 하였고, <경국대전>에도 경외공장의 소임을 일일이 열거하였으니, 특별한 소용이 있는 곳에 솜씨 있는 명장이 모여드는 것은 고금의 이치다. 한양 도성을 품은 모태의 형세로, 사람과 문물을 그러모으는 전진기지의 구실을 도맡은 곳이 경기였다. 천공의 솜씨를 지녔으되, 신분은 도성에 어울리지 않는 조선 장인의 처지가 도성 밖 변방으로 그들을 밀어낸 것이리라. 어딜 가나 기호와 삼남 일대를 남북으로 거미줄처럼 뻗은 육로와, 한강을 따라 오가는 수로의 기착지를 지척에 둔 길목이었다.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신경준(申景濬)이 쓴 <道路考>에 의하면, 전국의 큰 도로 여섯 개가 파주 포천 양근 용인 수원 강화 등 모두 경기도를 지난다. 이처럼 도성에 발을 들이려면 거치지 않을 수 없는 천혜의 지세가 한몫 거들었다. 양주장과 안성장의 명성은, 장터를 중심으로 난장을 트던 별산대놀이와 남사당패의 활발한 전승을 통해 그 자취가 오늘에 선연하다. 특히 안성장은, <만기요람>에서 전국 15개 장시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커 일확천금을 노리던 허생전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기전(畿甸)’이라는 별칭도 대궐에서 500리 반경을 임금이 직할한다는 의미이니, 조선에 들어서 위세가 한층 당당해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팔도의 문물이 모여들어 도성에 진입하기 전 한숨을 돌리며 재정비 하는 곳이 기전이요, 내로라하는 서울 사대부가의 명품 세간을 도맡아 공급하던 배후 구실도 기전이었다. 육의전 비단과 은장이, 한지, 다회 등속은 수구문과 세검정 궐 밖 지근거리에 모여 있었으나, 경공장이라 하여도 번잡한 시설이 필요한 공방은 경기 일대에 주로 분포했다. 사옹원의 분원이 개설된 광주가 그 첫 손가락에 꼽힌다. 순백의 갑번기로 명성 높은 금사리백자가 남한강 줄기를 오가는 조운선에 실려 마포나루에 부려지면, 짐꾼의 어깨를 빌려 윗전 큰곳간에 켜켜이 쌓였다가 가화가 가득 꽂힌 왕실 진연상 위에 버젓이 오르는 것이다.
전국에 이름을 떨친 경기찬장의 품격은 조선 말기에 멀찍이 호남의 나주에서도 발견되었다. 가구를 직접 옮겨왔는지 형식을 본떴는지는 알길 없으나, 전국에 퍼진 경기 장인의 솜씨를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서울 장안의 사대부와 부민요호 계층의 취향을 정확히 간취하였다는 안성맞춤의 내력도 경기도의 공예 전통을 표상한다. 그 역사가 비록 1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수립되었다고는 하나, 안성유기의 명성은 연조를 훌쩍 앞지른다. 강화도의 육통 반닫이와 완초공예를 비롯하여 이름난 공예품이 이처럼 곳곳에 산재했다.
근대 초기에는 개항지 제물포 일대가 화물선이 앞 다투어 하역한 서양물건으로 산더미를 이루어 미명에 잠긴 조선 문물의 근대화를 앞장서 이끌었다. 방직공장과 성냥공장이 항구를 중심으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왕실의 안목을 흡족하게 하던 솜씨가 새로운 자극을 통해 근현대의 물질문화를 선도한 것이다. 지역의 맏이로서 경기도의 이런 면모가 현대공예의 영역에서도 여전히 내공을 발휘하고 있다고 믿는다.
현대공예의 산실
그 후광 탓일까? 지금도 공예가들의 공방이 가장 밀집한 곳이 바로 경기도 일대다. 어림잡아 수백 개를 헤아리는 공방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가장 많은 수가 역시 도자기 가마다. 광주 여주 이천을 거점으로, 재현청자에서 현대의 생활백자까지 시공간을 맘껏 유영하는 중이다. 유근형과 지순탁 등의 1세대 도예가를 이어 이수종과 이인진 등 중진 현대도예가들이 경기도 곳곳에 터를 잡고 있다.
오부자옹기의 김일만 일가는 백자의 본고장 광주 금사리에 오래전에 뿌리를 내려 국가무형문화재의 반열에 올랐고, 소금을 뿌려 번조하는 푸레도기의 배요섭 장인도 서울무형문화재 30호로 이름을 올렸으나 안면도에 내려와 작업 중이다. 근래에는 전통공예의 재조명에 힘입어 옹기공방도 느는 추세다. 이번 전시에는 전통과 현대 두 분야의 작가가 고루 참여하였다.
목공예 분야는 비교적 규모가 큰 가구와, 기물을 공예적 터치로 제작하는 두 영역에 걸쳐 균형을 갖췄다. 안목이 깊은 소목장으로 명망이 높은 국가무형문화재 박명배의 공방이 용인에 있으며,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젊은 장인들 또한 양평과 강화 등지에 넓게 포진하였다. 여기에 현대공예가의 옻칠까지 더해져 경기 소목의 옛 명성을 잇고 있다. 제한된 대학의 공예학과 분포를 감안하면 목공예 작가의 다양한 면모와 자생력이 자못 놀라운데, 그 수준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금속공예는 테이블웨어를 중심으로 하는 대공과 장신구의 세공분야, 철을 다루는 건축부재에 이르기까지 장르가 다양하다. 그만큼 동시대의 금속공예가 효용이 넓다는 의미겠다. 1990년대 이래로 괄목할 진보를 보인 분야가 바로 금속공예다. 다루는 재료와 기물의 품목도 확대하여 시대의 요청에 정합하나, 거기에 못지않게 수공예다운 상상력을 크게 확장하여 향후를 더욱 주목하게 만든다.
현대 섬유공예의 1세대의 선두를 자임하는 송번수의 작업실을 겸한 미술관도 일찍이 경기땅에 터를 잡았다. 섬유공예는 태피스트리나 설치에 가까운 작품 등 당초 쓰임이 탈각된 표현형식의 독특성이 출발부터 다른 공예와 구분되는 장르다. 그래선지 1990년대의 정점을 지난 뒤 변화는 다소 더딘듯하여 아쉬움을 남긴다. 본디 삶의 공간에 가장 친숙한 소재인 만큼 일부에서는 품목이나 표현기법에서 일상과의 접점을 넓히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유리공예의 진보가 특히 흥미롭다. 남서울대를 비롯한 국내외에서 배출된 유리작가는 제한된 근대적 공예 장르를 확장하는데 일조하였다. 역사는 오래이나 맥락이 낯설게 느껴지는 유리의 공예적 수용은 동시대적 감성과 쓰임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다. 근래에 도자공예와 연계하여 학과나 전공이 개설되는 추이도 눈길을 끈다. 이 밖에도 조선가구의 형식을 다른 소재로 재해석하거나, 30년 넘게 종이의 물성을 다채로운 실험정신으로 풀어내는 양상훈과 같은 작가들이 경기 현대공예의 깊이와 폭의 확장에 기대를 걸게 한다.
이번 전시는 공공 미술관이 주관하는 오랜만의 대규모 공예전이다. 경기도 공예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면서 성찰과 의제를 각기의 방식으로 찾아내 보자는 의도에서다. 기획 초기에는 경기도의 지역성을 고려하자는 의견도 개진되었으나 실상이 의제와 부합되기 어렵다 하여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였다. 경기도의 현대공예를 따로 분류할 만한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기실 경기도의 현대공예가가 현재 한국의 공예를 대표하는 작가와 대부분 겹치기 때문이다. 뿐 아니라 지역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상투적 인식의 관성도 성찰이 필요하다. 경계를 해체하는 유연한 다문화적 사유가 필요한 시의성에 비추어 지역성에 매몰되는 것은 시대정신과도 정합하기 어렵다. 지역은 있으나 지역성은 없는 현재의 지역 정체성 논의는 알맹이 없는 레토릭에 불과할 따름이다. 더구나 지역의 전통적 특색이라는 것이 정체성이나 한국 미론과 같이 단선적인 배타적 민족주의의 틀거지를 벗어나지 못하여 경기도의 공예가 열린 세계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염려도 되었다.
현대 공예의 지향
'공예는 집을 떠나서는 안 되겠더라.’ 이 전시를 기획한 박본수 책임의 말이다. 어렵게 선정된 서른 두 명의 작가 공방을 일일이 방문한 끝에 선승의 화두처럼 번뜩하게 다가온 평어였단다. 공예의 해묵은 과제를 기획자답게 이처럼 여실하게 짚어내었다. 여행 가이드북은 평생을 살아온 현지인보다 처음 간 사람의 것이 더 요긴하다고 했던가? 공예가 있을 곳은 결국 집이라는 평범하고 당연한 깨우침이 우리 내부에서는 왜 이리 더뎠을까 싶다.
공예를 둘러싼 현 단계의 키워드는 소임과 사유의 틀거지에 관한 문제다. 이 두 가지는 목적이 전혀 다르지만 미묘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동안 조형예술과 일상의 기물이라는 두 영역을 오가며 혼란을 거듭해온 공예의 소임에 대해서 이번 전시를 계기로 일단 정리해둘 필요를 느낀다. 지나친 관념론의 틀을 벗어나 공예 본디의 소임을 회복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인 탓이다. 또한 공예를 보는 이론가나 작가의 관점 문제도 연관하여 짚어볼 만하다. 공예는 어떤 문화 영역보다 내셔널리즘의 폐해가 심각했던 분야이다. 미술과 일상의 삶을 한 몸에 보듬은 공예의 특성이 민족의식이나 정체성을 정치적 필요에 따라 구성하는 대로 휘둘려온 면이 없지 않은 탓이다. 야나기를 비롯한 일제강점기의 한국미론이 그러하고, 한국미술의 전통성 논의도 주로 공예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미술의 정체성 논의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라서 더욱 긴요하다.
그동안 공예를 둘러싼 담론과 텍스트의 오독은 다름 아닌 관념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현대미술의 영역에 포함되면서 생긴 비극이다. 공예담론은 다수의 상식에 부응할수록 건강해지는 것이 역사를 통해 검증된 경험칙이니, 추상적 개념이나 플라톤 철학까지 갈 것도 없다. 나와 우리 이웃의 식탁 위가 그릇이 놓여야할 마땅한 정위치다. 관념의 숲에 발을 들일수록 본디 공예의 책무로부터 멀어질 뿐이다. 공예가의 소임은 더도 덜도 아닌 공예다움이다. 지극히 소소한 일상의 리얼리티를 관념의 틀거지에 담으려다보니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 시종 부자연스럽고 삐걱거릴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허위의 예술가의식 역시 여기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어떤 실험과 일탈도 가능하지만, 그 출발점은 사람에게로 귀결되어야 정합성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관념의 긴 터널을 빠져 나와 보편적 쓰임을 지향할 때 비로소 질적 전환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다문화적 인식의 확장
국내 지자체가 앞 다퉈 여는 공모전의 슬로건은 대부분 한국적 색채나 지역의 정체성이다. 문화상품을 말할 때는 한국의 고유성에 대한 요구 수준이 한층 높아진다. 이 요구가 부당하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오로지 한국적 특수성만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한국적 정체성이나 특수성의 과제는 항용 단일민족의 혈통을 자부심으로 삼아온 오랜 배타적 민족주의의 혐의가 배어나기 때문이다. 어떤 현상이든 분석의 기본 전제는 특수성과 보편성의 균형이다. 학계는 이미 한국이 단일민족이 아니라고 선언하였다. 작년에 외국인 거주자 수가 2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인구의 4%에 해당하는 수치다. 취업과 혼인 등으로 빈번해진 이주민의 실상은 근대적 국경의 개념을 넘어선 지 오래 되었다. 일부 학계에서 다루고 있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의 사유체계가 바로 여기서 비롯한 대안 담론이다.
한국산 상품이라고 할 만한 것이 무엇일까? 또 그것이 과연 의미는 있을까? 조금만 들여다보면 물건 하나도 순수한 국내의 재료를 내국인의 솜씨로만 만든 것은 많지 않다. 외국산 재료에 또 다른 나라의 부품을 장착하고, 조립은 또 동남아시아의 어느 나라 손을 빌려야 완성된다. 제작지 표시가 한국이라 하여 우리 것이 아닌 것이다. 어느 편에 서든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던 과거와 사뭇 달라진 현실을 바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학과 정부의 대외정책은 여전히 세계를 향해 우리를 알리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몸은 세계화 하였으나 마음은 여전히 과거의 빗장을 풀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밖을 향한 세계화와 더불어,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세계를 눈여겨 살피는 일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된 것이다. 미술문화 분야에서 내셔널리즘의 폐해에 노출 빈도가 가장 높은 것이 바로 공예 분야이다. 공예는 일상과 연동된 미술인 탓에 전통적 인식과 삶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민족학이나 인류학자가 물질문화를 해석의 증거물로 주목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공예의 범주가 특별한 명품에 머물지 않는 탓이다.
한 때 한국인의 자긍심으로 곡해된 백의민족설 신화나, 텍스트를 심각하게 오독한 이도다완(井戶茶碗)의 넌센스가 여기에 해당하는 좋은 예다. 백의민족설은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을 계기로 짓밟힌 민족 자존감의 회복에 일정한 도움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흰옷을 상복으로 입었다는 일본 학자의 해석을 뒤집기 위한 소극적 저항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소복을 좋아서 입었다고 보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른다. 만일 그렇다면 노동복이 아니라 명절에 색동옷 대신 흰옷을 갖춰 입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바로잡으려는 의욕이 강한 나머지 균형감을 잃고 새로운 왜곡을 시도한 셈이 되었다. 역사를 유불리를 따져서 서술할 수 없다면, 실상과 다른 것은 어느 쪽이든 결과가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명품 다기로 각광 받는 이도다완이 과거 어느 한 때에 한국인이 만들어 썼던 그릇임에 분명하다. 용도는 확연히 달랐고, 도자사에서 언급할 만큼 품질이 우수하지도 못하였다. 지방의 민요에서 켜켜이 쌓아 구운 것을 장터에 벌여 놓으면, 국이나 밥그릇의 구분 없는 백성들의 요긴한 세간으로 부담 없이 향유되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었다. 이후의 도공도, 도자사를 전공한 학자도. 버려진 이 물건을 쓰다듬고 고쳐서 찻그릇으로 재활용한 것이 정작 일본인이었다. 다른 눈으로 재해석된 과거 유물을, 피의 끌림에 따라 뒤늦게 소유권 주장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개운치가 않다. 나은 정 기른 정을 다투던 철지난 드라마와 겹쳐지는 불편함도 결국 우리 몫으로 남는다.
문화재는 모든 인류의 것이며, 소유자는 잠시 관리의 소임을 위임 받은 것 뿐이라 말하면서도, 국내에서는 여전히 국보나 보물을 한국산만 인정하는 폐쇄적 태도를 고치지 않고 있다. 반면에 일본의 국보 1호가 우리 유물이라고 자긍심을 부추길지언정, 세계를 향해 포용력을 자랑하는 일본의 오지랖을 바르게 읽을 여유는 없어 보인다. 그들이 이도다완이나 코류지 반가사유상의 국적을 몰라서 지정했겠는가?
민족주의의 낡은 옷을 벗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갈아입어야 한다. 견고한 백인남성의 유럽중심 사유(eurocentric ideology)에 정면으로 저항한 푸코(Michel Foucault)와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이 한국의 현대 공예에 좋은 지표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푸코와 데리다는 철학과 문예이론은 물론 공예담론으로서도 손색없는 확장성을 가졌다.
한국 공예의 전통을 말할 때 우리는 늘 화려한 과거를 회상하는데 집중한다. 단문화주의의 정체성 논의가 여전히 우리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야나기의 비애미론에 대한 한국학계의 대응에서 본 것처럼, 한국적 정체성에 도전하는 작은 상처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옹색함은 식민주의의 연장선과 근대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실한 증거이다. 적어도 과거의 문화를 해석하는 입장에서는 늘 세계의 중심이 한국이요, 그 중심에 우리의 전통이 우뚝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생각은 푸코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역사를 단선적 맥락으로 간주하는 환상에 불과하다. 상호작용의 과정에서 파생된 다면적인 역사의 스펙트럼을 여러 각도로 서술할 수 있음에도, 하나의 시선으로 취사선택하여 단선적인 사건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민족 정체성이나 미의식에 대한 논의도 역시 여타의 개연성을 배제하고 남은 ‘유리한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고 간주한다. 결국 유일하고 보편적인 이론이나 해석은 당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역설한 데리다의 견해도, 한국 공예의 전통성 논의와 연관하여 주목해볼 만하다.
이 관점은 특정 직업군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이론가뿐 아니라 작가들 역시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편향된 열망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틀에 찍은 도자기의 값이 손으로 직접 빚은 작품보다 싼 것처럼, 생각이 경직된 이가 시대정신을 꿰뚫는 가치 있는 명품을 만들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본다. 우리가 항용 공예의 가치를 기계제품과의 비교하여 설명할 때, 감성이 담긴 솜씨를 거론하지 않은가? 거듭 강조하건대, 공예는 오랜 방황을 끝내고 이제 자신의 소임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고대 서양철학에 뿌리를 댄 관념의 긴 터널을 벗어나 일상의 가치를 일깨우고 선도하는 소임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 언급된 ‘금이 쇠보다 소중하다’는 시각이나, 아름다움을 절대의 기준으로 놓고 불변하는 가치로 본 플라톤의 틀거지를 벗어나야 공예다운 본디의 설 자리가 비로소 눈에 들어올 것이다. 유목민에게 도전정신으로 추앙되는 이동성이 정주민에게는 역마살로 불리는 이치다. 불변하는 하나의 이론이 갖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뿐 아니라 유럽의 백인남성을 중심에 둔 견고한 서구 형이상학적 이데올로기의 편향성을 닮은 협소한 내셔널리즘의 틀을 과감히 벗어나 다문화주의의 유연한 시선을 가질 때 한국 현대공예의 스펙트럼이 한층 확장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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