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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세계의 성곽을 보다_1

<세계의 성곽 (城郭 ) 을 보다>는 남한산성 세계유산 등재 를 위한 비교 연구 대상지였던 세계유산 중 22개의 유산을 선정하여 전시 하였습니다. 그 성곽과 성곽도시는 세계적으로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위험에 처한 유적을 복원한 경우, 정비와 보존정책의 사례를 비교할 수 있는 곳으로 선정되어 남한산성의 세계유산적 가치를 정립하고, 나아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연구 토대를 확립할 수 있었던 중요한 조사 과정이었고 결과적으로 남한산성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4 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1. 대한민국 남한산성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산지에 축성된 남한산성 (南漢山城 )은 조선시대 (1392년~1910 년)에 유사시를 대비하여 임시 수도로서 역할을 담당하도록 건설된 산성이다 . 남한산성은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전해온 성제(城制 )의 영향과 서구의 화기(火器 ) 도입에 따라 변화된 축성 기술의 양상을 반영하면서 당시의 방어적 군사 공학 개념의 총체를 구현한 성채이다. 오랜 세월 동안 지방의 도성이었으며, 아직도 대를 이어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인 남한산성의 성곽 안쪽에는 당시에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군사 ·민간·종교 시설 건축물이 남아 있다.


남한산성의 산성 체계는 17 세기에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달한 방어적 군사 공학 기술의 총체를 구현하고 있다. 남한산성은 중국과 한국의 성제를 재검토한 결과이자 서구로부터 유입된 새로운 화기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산성이다. 남한산성은 한국의 산성 설계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을 이루었으며 축성된 이후 에는 한국의 산성 건설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남한산성은 요새화된 도시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이다. 17 세기 조선시 대에 비상시 임시 수도의 기능을 하도록 계획·건설된 남한산성은 이전부터 존경 받아온 전통인 승군에 의해 축성되었으며 산성의 방어 역시 승군이 담당하였다.


국가 : 대한민국 (Republ ic of Korea) / 위치 :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 / 등재년도 : 2014년




2. 중국 만리장성


중국 진시황대에 북방 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방어 산성 만들기 시작한 것이 남만리장성이다. 만리장성의 축조는 그 후 명나라 시대까지 계속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장대 한 규모의 군사 시설물이 되었다. 이는 역사적·전략적으로 중요한 성벽인 동시에 건 축학적으로도 탁월한 유적이다. 명나라 시기에 건축한 만리장성은 대담한 공사 규모 뿐 아니라 건축학적 완벽성을 갖춘 걸작이다. 지구상에서 사람의 손으로 건설된 것 중 달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건축물인 만리장성은 광대한 대륙의 경치와 어우러진 완벽한 건축물의 예이다.


춘추시대 중국인들은 북쪽 국경을 따라 방어벽을 구축하면서 독자적인 건설 공법과 공간 구조를 확립하였다. 중국의 확산은 만리장성 공사에 동원된 인구 이동으로 더욱 두드 러졌다. 만리장성은 고대 중국 문명의 탁월한 증거이다. 서한시대에 간쑤 지역에 남아있는 유적은 진지 안에 흙을 다져 채워 넣는 방식으로 성벽을 건축하였다. 이것은 명나라의 특별하 면서도 보편성을 지닌 축성술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만리장성은 복합적이고 전시대를 아우르는 문화재로서 2,000년 동안 오직 전략적 목적으로 유지된 군사 건축물의 특별한 사례이다. 하지만 성벽 건설의 역사는 방어 기술과 변 화하는 정치 상황 속에서 계속 발전했음을 보여 준다. 만리장성은 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적 건축물이다. 성벽의 목적은 외부 의 공격을 막아내는 동시에 침략자들의 관습으로부터 중국인의 문화를 보존하는 데 있었다. 중국 문학작품인 진림 (陳琳 , AD 200 년경 )의 『음마장성굴행 (飮馬長城窟行 )』이나 , 두보 (杜甫 , 712 ~770) 의 시 , 명나라의 소설등에 성벽을 축조하면서 겪은 중국 백성들의 고난이 작품 속에 잘 드러나 있다.


국가 : 중국 (China) / 위치 : 랴오닝, 지린, 허베이 등 / 등재년도 : 1987년




3. 중국 핑야오 고대 도시


핑야오 고대도시는 한나라시대의 유적으로 500 년동안의 중국 왕조의 건축양식과 도시계획의 변천과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예이다. 높이가 12m 둘레가 6.4km에 달하는 고성은 성곽시설물로 성문옹성이 6개, 각루 4개, 망루 72개를 갖추고 있으며,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있다. 고성을 중심으로 성벽이 도시를 둘러 싸고 있다. 명청나라 시대의 주거건물 이 4,000채 이상 보존되고 있고, 그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국가 : 중국 (China) / 위치 : 산시성, 핑야오 / 등재년도 : 1997년




4. 중국 마카오 역사지구 (기아 요새)


마카오는 16세기 중반부터 포르투갈의 통치를 받았으며, 1999년 중국에 다시 반환되었다. 포르투갈과 중국식 종교건물과 공공건물들이 있는 마카오 역사지구는 서양과의 교류를 처음 시작한 지역으로, 동 ·서양의 문화·건축·기술 등의 교류를 보여준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요새인 기아요새와 등대가 대표적 유산이다.


마카오는 중국과 포르투갈 사이에 성립된 특수 관계로 인해 수세기 동안 문화, 과학, 기술, 예술, 건축 등 여러 분야에서 중국과 포르투갈이 인문적 가치를 주고받은 지역이다. 마카오는 중국과 서양의 최초의 만남, 그리고 가장 오래 지속된 만남을 지켜보아온 지역으로,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무역상, 선교사, 그리고 다양한 학문 분야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교류의 영향은 마카오 역사 지구의 핵심 지역을 특징짓는 다양한 문화들의 융합에 나타나있다.


마카오는 450여 년에 걸친 서양과 중국문명의 만남과 발전을 보여주는 건축학적 총체의 훌륭한 사례로, 이는 고대 중국의 항구와 포르투갈의 도시를 이어주는 역사적 항로에 잘 나타나 있다. 마카오는 오랫동안 서양 중국문명의 다양한 문화적·종교적·과학적·기술적 영향력을 서로 교환해 왔다. 이 과정을 통해 형성된 사상들은 중국의 변화를 촉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결국 황제가 통치하는 봉건시대를 마감하고 근대적 공화국을 성립시켰다.



국가 : 중국 (China) / 위치 : 마카오 특별행정구 / 등재년도 : 2005년




5. 중국 베이징과 선양의 명과 청시대 황궁(자금성)


자금성은 5세기 이상(1416~1911) 중국 최고 권력의 중심지에 있던 황궁으로, 이곳에는 가구와 예술품이 있는 약 10,000개의 방과 잘 조성된 정원이 있다. 이 황궁과 이곳의 유물은 명과 청시대 중국 문명의 가장 귀중한 증거로 여겨진다. 선양(瀋陽 )의 황궁은 청왕조에 건설된 114개의 궁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쑤거 (文溯閣 )’이라는 도서관이 있는 선양의 황궁은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중국 왕조의 중요 기반이었다. 청왕조 시대와 중국 북방계 부족, 만주족의 문화적 전통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 증거를 보존한 주목할 만한 건축물이다. 자금성과 선양의 황궁은 중국에서의 황실궁전 건축의 발전을 보여주는 걸작이다.황궁의 건축물 중에서 특히 선양 지역의 궁은 17세기와 18세기 중국의 전통 건축과 궁전 건축의 중요한 분기점임을 보여 준다.

황궁에는 주변 경치, 건축물, 가구와 예술작품 등이 있는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수 세기 동안 만주족들의 샤머니즘 전통 관습을 보여 주는 중국 문명의 이례적이고 독특한 증거이다. 황궁은 중국에서 가장 웅장한 건축 유적의 뚜렷한 예이다. 원·명·청 왕조와 만주족의 전통까지 아우르는 웅장함과 17세기, 18 세기 중국의 건축 발전의 주요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국가 : 중국 (China) / 위치 : 베이징, 선양 / 등재년도 : 1987년



6. 중국 리장 옛 시가지

중국의 리장은 불리한 지형적 요건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들의 완벽한 적응으로 중국의 주요 상업 및 전략적 요충지로 만들어진 성곽도시이다 . 대표적인 사례로는 오 늘날에까지 사용하고 있는 리장의 급수체계이다. 리장 옛 시가지는 탁월한 보편적 가 치와 진정성이 잘 나타나 있는 성곽도시이며 , 이곳의 건축물은 수 세기동안에 걸쳐 진 문화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어 가치가 있다 .


국가 : 중국 (China) / 위치 : 리장 옛 마을 (麗江古城) / 등재년도 : 1997년



7. 일본 히메지성

히메지성 (姬路城)은 17세기 초 일본 성곽 건축을 대표하는, 현존하는 가장 훌륭한 성이다. 막부시대(幕府時代) 초기에 만들어진 고도의 방어 체계와 정교한 보호 장치를 갖춘 총 83개의 건물을 포함하고 있다. 히메지 성은 기능적인 면과 심미적인 매력을 잘 조화시킨, 목조 건축물의 걸작이다.

회벽칠된 백색 토벽과 같이 우아한 외관을 갖추고 있으며, 건물과 여러겹의 지붕사이의 섬세한 관계가 돋보인다. 히메지성은 목조건축물의 걸작이다. 히메지성은 새하얀 회벽칠을 이용한 점이나, 건물과 여러겹의 지붕사이의 관계의 섬세함이라는 측면에서 기능적인 효율성과 심미적인 매력을 훌륭하게 결합시켰다.

히메지성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전 일본의 군사정권이었던 막부 제도를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상징이다. 히메지성은 일본의 목조 성곽의 집대성으로, 그 중요한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8. 캄보디아 앙코르

앙코르(Angkor) 유적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산림지역을 포함해 400㎢ 이상 퍼져 있는 이곳은 9세기부터 15세기까지 크메르 제국의 수도로서, 유적에는 유명한 앙코르와트(Angkor Wat)의 사원들과 바욘사원(Bayon Temple)이 있는 앙코르툼(Angkor Thom)이 있다.


국가 : 캄보디아 (Cambodia) / 위치 : 시엠리아프주 / 등재년도 : 1992


9. 인도 라자스탄 구릉 요새(치토가르 포트)

‘라자스탄 구릉 요새’는 라자스탄 주에 있는 총 여섯 개의 장엄한 요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유산은 절충주의 건축 양식의 요새로 둘레가 최대 20㎞에 이르며, 8세기부터 18세기까지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라지푸트 번 왕국을 보여주는 유산이다. 방어용 성벽은 도시 중심지, 왕궁, 시장 그리고 역사 깊은 사원과 같은 건물들을 에워싸고 있다. 라지푸트의 사원은 특히 교육·음악·미술 등을 후원하는 섬세한 궁정 문화의 요람이었다.

요새 안에 둘러싸인 도시는 현재까지 잘 보존되었다. 라자스탄 요새는 구릉, 사막, 강, 울창한 산림을 이용하여, 주위 자연 환경 자체를 방어 체제로 이용하고 있다. 아울러 또 하나의 특징인 광범한 집수시설은 오늘날까지도 이용되고 있다. 라자스탄의 구릉 요새는 초기 중세부터 후기 중세 시대에 이르기까지 라지푸트번 왕국의 중요한 이념적 교류를 보여 준다.

라지푸트 건축이 술탄 건축이나 무굴 건축과 같은 다른 지역의 건축 양식과 공통점을 공유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조상과 이웃들로부터 영감을 이끌어낸 라지푸트 건축은 절충주의였으며, 훗날 마라타 건축과 같은 이 지역의 건축 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6개의 웅장한 구릉 요새로 구성된 이 연속 유산은 인도의 중세 역사 서적과 그림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라지푸트의 용맹함, 용기, 봉건주의와 같은 문화적 전통이 건축학적으로 현시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 인도(India) / 위치 : 라자스탄 / 등재년도 : 2013년



10.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지구와 관련 기념물군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북쪽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수많은 운하와 400여 개를 넘는 다리가 있다. 표트르 대제 시절 1703년에 시작된 대규모 도시건설 계획을 통해 완성되었으며 구소련 시대에는 레닌그라드라고도 불렸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건축 유산은 전혀 성격이 다른 바로크 양식과 순수 신고전주의 양식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도시설계 분야를 살펴볼때 구(舊)레닌그라드는 계획의 목적과 일관성, 그리고 실행 속도 라는 면에서 독특한 예술적 업적을 보여 주었다. 1703년~1725년까지 표트르 대제는 수도 습지와 늪, 바위투성이 풍경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석조와 대리석으로 된 건축을 세우는 스타일을 창조하였다. 라스트렐리, 몽페랑등이 설계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주변의 건축물은 18세기~19세기 러시아와 핀란드의 건축과 기념비적 예술품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처음으로 과학아카데미를 창립하고 곧이어 미술아카데미를 설립함으로써 수도의 규범적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제 2차 세계대전때 파괴되었다가 복원된 페트로드보레츠와 차르스코예셀로(푸시킨 시)의 궁전은 가장 중요한 건축물의 사례이다. 레닌그라드는 세계적인 중요성을 지닌 두 차례 큰 사건과 직접적이고 분명한 연관이 있다. 첫 번째 사건은 1703년부터 1725년까지 진행된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이 러시아가 서구 세계를 향해 개막되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차르(tsar) 제국이 세계무대에 출현하였다는 것을 상징한다. 두 번째 사건은 페트로그라드(Petrograd, 1914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바뀐 이름)는 1917년 볼셰 비키 혁명이 성공한 기념비적인 곳이라는 점이다.


국가 : 러시아 (Russian Federation) / 위치 : 상트페테르부르크 / 등재년도 : 1990년



11.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역사지구

실크로드에 자리하고 있는 부하라(Bukhara)는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중앙아시아 중세 도시 가운데 도시 구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예이다. 특히 흥미로운 기념물들에는 10세기 이슬람 건축의 걸작으로 이스마일 사마니(Ismail Samani)의 묘(墓 )와 17세기의 이슬람 마드라사(madrasa, 이슬람 고등 교육 기관)가 있다.

부하라의 도시 배치와 건물들은 중앙아시아 넓은 지역의 도시계획과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부하라는 중앙아시아 중세 도시 가운데 도시 구조의 많은 부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가장 완벽한 예이다. 9~16세기 사이에, 부하라는 무슬림 신학 중 특히 수피교의 가장 큰 중심지였다. 동쪽 인근에는 200개가 넘는 모스크와 100여개의 마드라사(교육기관)가 있다 .


국가 : 우즈베키스탄 (Uzbekistan) / 위치 : 부하라 / 등재년도 : 1993년



12. 우즈베키스탄 이찬 칼라

이찬 칼라 (Itchan Kala)는 대상(隊商)들이 사막을 건너 이란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하던 곳으로, 약 10m 높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옛 히바 오아시스(Khiva oasis)의 도심지이다. 비록 아주 오래된 기념물들은 일부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중앙아시아의 뛰어난 이슬람 건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곳에는 주마(Djuma)모스크, 무덤들, 마드라사(madrasa, 이슬람교 고등 교육 시설)들, 그리고 19세기 초에 알라쿨리칸(Alla-Kulli-Khan)에 의해 건설된 2개의 웅장한 궁전 등의 뛰어난 건축물들이 있다. 세계적으로 잘 보존된 도시의 유적으로, 히바(Khiva)의 도심에 해당하는 이찬 칼라는 호라즘의 잃어버린 문명을 훌륭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찬 칼라의 몇몇 기념물들은 주목할 만한 하다.

중앙아시아의 기복 심한 기후 때문에 지붕 덮인 뜰을 지니도록 설계된 주마 모스크는 그 내부의 비례와 구조가 독특하며, 2개의 팔각형 등불로 희미하게 불이 밝혀지고 212개의 원기둥 들로 장식돼 있다. 마드라사는 크기는 웅장하지만 장식은 단순하며, 이는 중앙아시아에 특유한 이슬람 건축의 또 다른 형태이다. 현재 시대의 변화에 취약해져 있으며, 역사가와 도시 계획 전문가들에 의해 목록이 작성된 히바의 주거 건축은 이찬 칼라의 흥미로운 요소들 중 하나이다.

이곳의 주거 건축물들은 안뜰, 섬세하게 조각된 목제 기둥의 지지를 받는 현관 을 곁들인 응접실, 개별적인 방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18 세기와 20세기의 형태적 변형으로 연구될지도 모르는 이 전통적인 건축 양식은 그동안 유기되었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유산을 이루고 있다.


국가 : 우즈베키스탄 (Uzbekistan) / 위치 : 히바 지방, 호라즘 / 등재년도 :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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