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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천년의 도시를 만나다 - 베트남 하노이

천년도시를 찾아서


천천천 경기천년 기자단은 2018년은 경기천년의 해를 맞아 천년을 이어온 경기도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미래의 꿈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 경기도 내 거주자와 학생, 직장인들로 꾸려진 기자단입니다.



2018년은 경기도가 『고려사』에서 '경기'라는 명칭으로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에 처음 등장하여 천년이 되는 해입니다. 수도와 주변 지역을 뜻했던 '경기'는 왕실과 수도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태종에서 세종 대까지 거치면서 현재와 유사한 위치와 윤곽이 잡혔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새로운 학문과 사상이 발전하고 경기도 역시 점점 성장해가면서 일제강점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천년의 역사 속에서 한반도 중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2018년을 기점으로 경기도가 천년의 해를 맞은 만큼 천년의 역사를 가진 또 다른 도시를 찾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소개할 천년도시는 베트남 '하노이'입니다.


베트남의 수도이자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로도 우리에게 익숙한 하노이가 천년의 역사를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지금으로부터 1,017년 전인 1010년, 배트남 리(李) 왕조의 리 태조 리꽁우언(李公蘊)이 현재의 하노이에 해당하는 탕롱(昇龍)을 수도로 삼아 천도한 것이 하노이 천년 역사의 유래라고 합니다. 이렇게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하노이에서는 베트남만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천년이라는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채 옛날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된 것은 아닐까요?



<천년도시 하노이의 중심가>


호안끼엠 호수, 성 요셉 성당, 맥주거리는 하노이의 중심가로 불리는 곳입니다. 이곳은 수많은 오토바이, 차량이 지나가며 현지인과 여행객이 밀집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현대적인 상가가 자리해있는가 하면, 하노이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모습도 많이 남아있답니다. 천년의 역사가 깃든 곳이니 만큼 천년의 시간이 공존하는, 묘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번화가입니다.



<호안끼엠 호수>


하노이 시내 중심에는 호안끼엠 호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노이라는 이름의 사전적 의미가 '강 사이에 있는 도시'라고 합니다. 도시의 어원처럼 하노이 시내에는 강과 호수가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호안끼엠은 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는 호수인데요. 중국 명나라로부터 독립하게 한 레러이 장군이 호안끼엠 호수를 건널 때 거북이가 나타나 그에게 신성한 검을 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고 합니다. 우리가 독립을 간절히 염원했던 시절을 떠올린다면 독립을 이끈 레러이 장군의 전설이 깃든 호안끼엠이 하노이, 나아가 베트남 국민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호안끼엠은 가족, 친구, 연인들과 만남의 장소이자 국가 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기에 많은 관광객들 또한 이곳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역사적 가치를 알고 일상의 일부로 담아내는 하노이 시민들의 역사적 인식이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리 태조 동상>


레 왕조의 뒤를 이은 리 왕조의 초대 왕이자 현재 하노이의 지역인 탕롱으로 수도를 이전하며 천년 수도의 시작을 알렸던 리 태조는 베트남의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흔히 베트남의 역사적 인물을 떠올리면 호치민이 대표적일테지만, 호치민이 근현대사의 영웅이라면 이태조는 베트남의 10세기를 대표하는 영웅일 것입니다. 리 태조의 동상은 하노이의 번화가인 호안끼엠 호수 바로 옆에 세워져있을 만큼 베트남의 중심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정조임금과 정약용선생 등 역사적 인물을 기리기 위해 능을 관리하고, 동상을 짓고, 관련 인물의 축제를 개최하는 것과 비슷한 모습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호아르수용소>


경기천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꼭 좋은 일만 일어난 것은 아니겠죠? 우리민족의 수난기였던 일제강점기 또한 가슴 아픈 기억이지만 우리가 가져가야 할 역사적 사건인만큼 베트남 하노이 또한 역사 속에서 식민지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역사를 적나라게 보여주는 곳이 호아르수용소입니다. 우리나라의 서대문형무소와 유사한 이 수용소는 프랑스가 베트남을 지배할 당시 베트남 독립운동가를 수용하기 위해 1896년에 축조한 건물입니다. 인권은 담장밖에만 존재하고 비위생적이고 열약한 환경을 보여주는 수용소이자 프랑스대혁명 당시 루이 16세를 처형시켰던 단두대가 설치되어 있는 수호아르수용소는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건물로 인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노이의 밤거리>


하노이의 밤을 대표하는 곳은 '맥주거리'입니다. 사람들이 오가고 맥주를 마시기도 하는 자유로움이 느껴집니다. 다양한 외국인들이 찾는 곳인 만큼 다양한 국가의 맥주가 준비되어 있으며 글로벌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인연도 맺을 수 있는 곳입니다. 맥주거리 곳곳에서는 베트남의 전통 모자인 농라를 쓰고 물건을 파는 현지인들도 종종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긴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기에 가능한 모습이 아닐까요? 


경기천년을 맞아 다양한 사업을 하는 경기도와 마찬가지로 하노이에서도 2010년, 리 태조가 1,000년 전 지금의 하노이로 천도해 온 후 천년이 지난 것을 맞이하여 천년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노이가 프랑스의 식민 지배로부터 벗어난 기념일인 10월 10일에 맞추어 10일간에 걸쳐 성대한 개/폐막식과 문화예술, 스포츠, 역사관광 분야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편성하였습니다.


덧붙여 도시 공공 기반 시설과 역사 유적지, 기념물들 보존, 장식하는 등 기념건설 사업을 포함하여 기념식에 편성되지 않은 2010년을 전후한 수만은 문화교류, 예술/공연 등의 기념사업도 활발히 진행했다고 합니다.


하노이의 천년기념사업은 국가의 정치나 경제적 상황의 특성상 정부의 지휘 아래 지역 및 국가의 일체감을 고취시키고 전통 문화를 기반으로 한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반면 경기천년사업의 경우 문화 인프라 구축이라는 최종 목표는 같지만 문화 민주주의에 기반한 참여형 소통 창구인 경기천년플랫폼을 중심으로 경기도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기획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방향성은 정부 주도하에 국가 정체성의 보존 및 증진을 위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진행된 하노이의 천년사업과는 정반대 노선이라고 볼 수 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경기도와 베트남의 하노이는 같은 천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전 세계에서 얼마 되지 않는 도시이지만, 천년을 기념하는 문화 사업의 방향은 서로 다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와 많이 비슷하지만 또 다른 하노이를 여행하며, 얼마 남지 않은 2018년 천년을 맞게 될 경기도의 앞으로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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