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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정조의 효심이 담긴 경기도 화성 ‘융릉과 건릉’

경기도를 빛낸 세계문화유산


천천천 경기천년 기자단은 2018년은 경기천년의 해를 맞아 천년을 이어온 경기도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미래의 꿈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 경기도 내 거주자와 학생, 직장인들로 꾸려진 기자단입니다.



천년의 시간을 이어오면서 경기도의 풍경과 생활상도 많이 달라졌겠죠? 사람이 가마를 끌던 거리에는 자동차와 고속철도가 달리고 한옥 건물 자리에는 아파트가 올라가고 갓을 쓰고 다니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챙깁니다. 이렇듯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오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지지만 우리의 삶에서 효(孝)의 가치는 변치 않는 불변의 진리일 것입니다. 비록 효를 대하는 현대인의 마음가짐과 예전과는 변하였더라도 효에 대한 가치와 무게는 변함없을 것이라 믿습니다.




이번 경기천년 기자단에서는 효의 의미와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문화재를 다녀왔습니다.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하고 있는  '융릉'과  '건릉'입니다. 조선시대 정조 임금과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 그리고 사도세자의 아버지 영조와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전해져 내려오는 가슴아픈 비극의 역사입니다. 책, 영화, 연극 등 문화예술분야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소비되는데 특히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게 되는 부분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 임금의 효심일 것입니다. 융릉과 건릉은 그런 정조 임금의 효성을 느낄 수 있는 문화재입니다.




조선왕릉 (융릉, 건릉)은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합니다. 새삼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이 드네요.




융릉과 건릉은 만 25세부터 64세까지는 1,000원의 관람료를 받으며 24세 이하 및 65세 이상은 신분증 지참시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니 학생들에게는 가격 부담 없이 역사적인 공간을 방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답니다. 




융릉과 건릉을 방문하기 전 두릉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다면 더욱 의미 있는 관람이 될 수 있겠죠? 사전에 정보를 알지 못했더라도 괜찮습니다. 융릉과 건릉에 대한 역사를 탐색해볼 수 있는 융릉 ·건릉 역사문화관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융릉과 건릉뿐 아니라 그 당시의 역사와 정조, 사도세자, 영조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 역사문화관으로 가족단위 관람객들에게도 아이들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정조가 당시 양주에 있던 아버지 묘를 이곳으로 옮기고 현륭원이라 하였으나 고종 때 황제로 추존하면서 융릉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정조가 아버지 곁에 묻히기를 원하여 부자를 한 구역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고자 했던 정조의 효성으로 빚어진 화려하고 아름다운 왕릉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융릉은 왕으로 추존된 장조(사도세자, 장헌세자)와 그의 비 헌경왕후(혜경궁 홍씨)의 능이며, 건릉은 장조와 헌경왕후의 아들이자 조선 제 22 대 왕인 정조와 효의왕후의 능입니다. 사도세자로도 잘 알려진 장조는 정조가 즉위한 후 장헌세자가 되었고 고종에 의해 장조라 추존하면서 무덤의 이름도 변모하였다고 합니다. 융릉은 조선왕릉 가운데 능 陵, 원 園, 묘 墓라는 명칭을 모두 거친 유일한 능이라고 합니다. 



정조 임금의 효심을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문화재가 있습니다. 바로 수원화성인데요. 역사문화관에서는 수원화성과 용주사도 함께 안내되어 있습니다. 간략한 설명을 하자면 수원 화성은 1796년에 정조가 당시 과학적 기술로 만든 신도시로, 수원 화성 내부에는 왕이 행차할 때 머물 수 있는 행궁이 있고, 바깥으로 방어 시설을 갖추었다고 하네요. 풍부한 기록 유산과 과학적 조성 방법을 인정받아 수원 화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정조는 아버지의 무덤 융릉 (당시 현륭원)을 조성하면서 1790년에 근교에 있는 용주사를 중건하여 무덤을 지키는 사찰로 정하였습니다. 용주사에는 부모님의 은혜를 기린다는 내용의《불설부모은중경판 佛設父母恩重經板 》등 정조 시대의 유물이 다수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제 융릉을 관람하러 가볼까요? 융릉을 관람하려면 이처럼 산책로를 따라 걸어간답니다. 오솔길도 예쁘게 조성되어 있는데 울창한 나무숲과 절경이 정조의 효심과도 같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엔 나들이하러 오셔도 좋을 듯합니다.



이곳이 바로 조선 제22 대 임금 정조의 아버지(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신 융릉입니다 . 먼저 앞에 있는 홍살문이 눈에 띄는데요. 왼쪽에는 수라간, 오른쪽에는 비각이 있으며, 중앙에는 정자각이 보입니다. 정자각 뒤에는 융릉 능침이 있습니다.



융릉 정자각까지 걸어가는 긴 돌길 (참도)에는 어로와 향로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융릉의 참도는 매우 넓으며, 조선 후기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앞에 있는 정각은 제사를 지내는 건물인 정자각입니다.



융릉 옆에는 원형 연못 ‘곤신지’가 있었는데, 다른 왕릉에는 네모의 형태로 연못이 있는 반면, 이곳은 생소한 원형의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원형 연못은 용의 여의주를 상징하며,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마음이 드러나 있다고 합니다. 융릉이 천장된 이듬해  1790 년에 조성되었으며, 곤신방(坤申方, 남서방향)은 융릉의 생방 (生方  : 풍수지리 용어로 묘지에서 처음 보이는 물을 지칭)으로 이곳이 좋은 곳이기 때문에 판 연못이라고 합니다. 



왕릉을 둘러보다 보면 , 금천교를 만날 수 있는데요. 생전의 궁궐과 구조를 재현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건릉으로 가볼까요?




이곳이 바로 정조와 효의왕후의 건릉입니다. 융릉과 마찬가지로 먼저 홍살문이 눈에 띄는데요. 왼쪽에는 수라간, 오른쪽에는 비각이 있으며, 중앙에는 정자각이 보입니다. 정자각 뒤에는 건릉 능침이 있습니다. 이곳은 제사를 지내는 건물인 정자각입니다.




정자각 내부에는 제수진설도, 건릉 제향일정, 제기류, 기신제와 같은 조선시대 제사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원화성행궁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융·건릉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곳이었는데요. 화성 8 경중에 1경으로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관광명소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고즈넉함과 자연이 어우러져 산책하기에도 좋고, 정조의 효심이 깃든 조선 왕릉을 관람하며 사도세자를 향한 절절한 마음에 귀 기울여 보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뒤주에 갇혀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심사숙고하여 묘를 꾸미고, 현륭원으로 승격시켜 최대한 화려하게 꾸민 모습이 한 편으로는 마음 아팠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죽어서 나마 효도하겠다며 아버지 발채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 정조. 실제로 정조의 건릉은 융릉 바로 아래에 21년간 자리하다가 부인 효의왕후가 사망 후 지금의 건릉 자리로 합장하여 옮겨졌다고 합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고자 했던 정조의 효심으로 만들어진 융릉. 그래서인지 조선왕릉 중에 가장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소중한 우리의 역사. 경기 천년이 되기까지 어떠한 역사들을 거쳐 왔는지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세계에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우리의 문화유산이 훼손되지 않고, 길이 보존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힘써주셔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한번 즈음 정조의 따뜻한 효심 느끼러 융·건릉에 들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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