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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경기도를 빛낸 인물 외교 전략가 서희

경기천년을 빛낸 인물을 만나다


천천천 경기천년 기자단은 2018년은 경기천년의 해를 맞아 천년을 이어온 경기도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미래의 꿈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 경기도 내 거주자와 학생, 직장인들로 꾸려진 기자단입니다.



경기도가 1018년부터 천년을 달려 남긴 역사 속에는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 참 많은데요. 오늘날 외교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 역사상 가장 유능했던 외교관이자 경기도를 빛낸 인물 서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특히 서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경기천년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뛰어난 외교로 경기천년을 지켜낸 서희에 대해 지금 알아볼까요?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서희 동상>


942년 광종 대의 대쪽 재상 서필의 아들로 경기도 이천에서 서희(942~998)는 태어났습니다. 집안도 좋았지만 열아홉 살 되던 해 과거에 급제했고, 과거 급제 후 차례를 뛰어넘어 승진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학문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인재였음을 알 수가 있는데요. 그럼 칼보다 무서운 혀를 가졌던 서희의 업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BSi 5분 한국사 _ 중군사 서희의 직언>


거란족은 원래 중국의 동북쪽에 살던 유목 민족으로 발해와 동맹을 맺었다가 배신하고 멸망시키면서 태조 왕건은 거란족은 야만인이라며 국교를 맺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거란족은 점점 강성해졌고, 고려를 침입했습니다. 성종은 사신을 보내 화의를 청했지만 성과가 없었고, 고려 조정에서는 거란의 요구대로 항복하자는 투항론과 서경 이북의 땅을 거란에게 주고 화의를 하자는 할지론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이때 서희는 거란족의 장군 소손녕을 만나겠다고 자청을 했습니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 나서기도 쉽지 않은데, 거침없는 서희의 모습은 정말 대단하고 생각이 듭니다.



<소손녕과 서희의 3차 회담>


거란과의 3차 회담에서 서희가 나서 시작이 되었을 때 서희의 기를 꺾어 놓을 심산이었던 소손녕에게도 서희는 침착하게 대답을 하며 기싸움에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소손녕이 제기한 물음에도 조목조목 반박하며 한치의 틈도 없는 서희의 논리에 소손녕은 말문이 막히면서 논쟁은 일단락이 지어졌습니다. 이렇게 불리한 처지에서 벌인 담판이었지만 송나라와 거란이 전쟁 중인 관계를 잘 이용해서 오히려 영토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활용했습니다.



<서희의 외교술로 얻은 강동 6주>


고려는 여진을 몰아내고 강동 6주에 성을 쌓았습니다. 강동(江東)은 강의 동쪽 즉 압록강의 동쪽을, 6주(六州)는 흥화진, 용주, 철주, 통주, 곽주, 귀주로 여섯 개의 마을을 뜻합니다. 서희의 뛰어난 외교 능력으로 강동 6주의 땅까지 얻어낸 우리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국경을 압록강까지 넓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고구려 멸망 이후 처음으로 국경이 현재는 북한에 있는 압록강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죠.


<서희장군묘>


물론 고려는 그 이후 거란의 요구대로 국교를 맺어 이후 일시적으로 사대의 예를 갖추지만, 싸우지 않고 거란의 대군을 돌려보내고,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 삼아 영토까지 얻었으니 우리 역사상 가장 실리적으로 성공한 외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송나라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거란의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또한 안융진전투 이후 산악지대에서의 전투에 자신감을 잃은 거란군의 상황을 읽어낸 통찰력, 논리 정연한 언변, 예의 바르면서도 당당한 태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경기천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에서 외교적으로 큰 업적을 남긴 서희 장군을 떠올리며 서희장군묘가 있는 경기도 여주시에 가보시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경기도가 천년이 되는 해를 맞아 경기도와 대한민국을 빛낸 인물 서희 장군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어떠셨나요? 이상 천천천 경기천년 기자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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