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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연구원

경기지역 고려시대 발굴조사 성과 ②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이 글은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천백주년 기념 학술대회’ 자료집에 수록된 발표주제문입니다.


경기지역 고려시대 발굴조사 성과


김영화 | 경기문화재연구원




|목차|

  Ⅰ. 머리말

  Ⅱ. 주요유적

  Ⅲ. 맺음말


Ⅱ. 주요유적


1. 생활유적


생활유적은 주거지와 건물지, 수혈 등이 있으며 개발에 따른 구제발굴조사를 통해 경기지역 전역에서 유적의 규모와 상관없이 확인되고 있다. 수원 구운동 유적 조사를 통해 중세 주거유적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으며, 선사시대처럼 집단적인 사례는 드물고 이전 시기와 이후 시기 유구와 함께 소수가 확인되는데 유존상태가 양호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거지는 풍화암반토를 굴광하여 조성하며 평면 형태는 방형·방형·원형·부정형이 모두 확인되고 내부시설은 아궁이·구들·배수로·저장공·주공 등이 있으나 유구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다수의 주거지가 조사된 유적으로는 화성 화산동, 인천 중산동, 여주 양귀리, 성남 여수동 유적 등이 있다. 건물지 역시 구제발굴조사에서 기단․초석·적심·석렬·온돌시설 등의 다양한 구조가 나타나며,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시흥 거모동, 이천 증포동, 서울 세곡동, 평택 백봉리, 인화 ∼ 강화간 도로구간 유적에서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수원 구운동 유적


수원시의 서쪽 황구지천 인근 해발 42m 정도의 길고 평탄한 구릉상에 고려시대 수혈주거지 2기가 조사되었다. 경작과 과수원 조성 등으로 구릉 표면이 삭토되어 원지형이 많이 훼손되고 상부층이 교란된 상태였으나 유구의 잔존 현상이 명확하고 안정적으로 확인되었다. 주거지는 방향과 고래시설의 상태로 보아 2기의 주거지가 중복된 것으로, 각각 한 두 차례의 개축이 있었으며, 소규모 온돌시설과 저장수혈 등 내부 시설이 있다. 사각형의 기둥구멍에 원형기둥을 쓴 것, 모퉁이에 수혈을 파고 그 수혈의 바닥에 여러 개의 수혈을 다시 파서 토기를 넣어둔 특이한 형태로 확인되었다. 유물은 내부에서 주조괭이와 도기 등 확인되었다.


인천 중산동 유적


영종도 하늘도시 3구역에서 주거지 17기가 조사되었다. 경사면 아래쪽이 유실되어 원형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말각방형 또는 장방형, 부정형으로 내부에서 아궁이와 온돌시설이 확인되는 것도 있다. 유물은 청자·도기가 출토되었다. 청자는 완·발·접시·잔이 주를 이루고 매병·장고·항·베게 등 고급 기종도 확인되는데 운학문·초화문·연당초문·압출양각과 연화문·당초문·국화절지문 상감을 하였다. 도기는 매병·병·동이·옹·호가 출토되었다.


여주 양귀리 유적


주거지 16기, 수혈 21기, 건물지 12기, 고상식 건물지 1기가 조사되었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방형 12기, 원형과 타원형 1기이며, 장축방향이 등고선과 평행한 것이 12기, 직교 또는 비스듬한 것이 4기이고, 내부시설로 화덕이 설치된 것 7기, 고래 석렬이 확인되는 것이 3기이다. 수혈은 건물지와 주거지 주변에서 확인되는데 깊이가 20㎝ 내외이며 평면 형태는 타원형․방형․장방형이 있다. 건물지는 내부에 구들시설이나 초석이 둔 건물지와 구릉 경사면을 수직에 가깝게 굴착하여 ‘ㄷ’자형 배수로를 설치하고 내부에 구들시설과 굴립주를 조성한 것, 경사면의 하단의 적심과 상단의 초석의 높이차 135㎝나 되고, 석조배수로가 부가된 계단형 석렬이 있는 누각식 건물도 확인되었다. 유물은 고려 중기∼조선 전기로 편년되는 도기류·자기류·기와류·철기류가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시흥 거모동 유적


건물지 2동과 석축 2기, 담장지, 배수로 등이 확인되었다. 건물지는 후대의 교란과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초석이나 적심은 유실되었고 기단석만 남아 있었다. 고지도를 통해 보면 이 지역은 조선시대 중반까지 거모포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현재의 해안선은 간척 사업으로 인하여 변화된 것이고 원래의 해안선은 유적이 위치하는 거모동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아 포구와 관련된 시설일 가능성이 있다. 1호 건물지 주변 퇴적층에서 완형으로 출토된 철화청자모란당초문매병과 압출양각 기법의 청자 완으로 보아 건물의 조성 시기는 11세기대로 추정하였다.


화성 화산동 유적


5개의 지점으로 나누어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주거지 5기, 수혈 45기, 구상유구 1기, 고상건물지 2기, 건물지 6기, 야외노지 5기, 주혈 6기, 축대, 담장지, 적석유구 등 모두 70여기의 다양한 유구가 조사되었다. 2지점에서는 상층 조선시대 유구 아래에서 고려시대 야외노지, 고상식 건물지, 수혈이, 3지점 가구역에서는 건물지는 1차 건물지 석렬 위에서 2차 건물지 석렬이 확인되었다.


이천 증포동 유적


주거지 1기, 수혈 77기, 건물지 11동, 석렬이 조사되었다. 주거지는 아궁이·고래·굴뚝이 갖추어져 있으며, 전면에 구들이 시설되었다. 아궁이와 고래 부분과 연도부 부분은 단차를 이루고 있으며 구들은 건물지 기와를 재사용하여 축조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건물지는 후대 경작과 중복 등으로 상태가 불량하나 동서 300m, 남북 430㎝ 되는 장방형 평탄지에 문지를 조성하고 건물지와 부속시설을 축조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중정을 중심으로 사방에 건물을 배치하였으며 중정의 4곳 대칭되는 지점에 진단구를 매납하였다. 유물은 양질의 강진상 청자와 중국자기, 도기를 비롯하여 잠글 쇠·주조괭이·철제 솥 등의 금속류 등 다양하게 출토되었는데 특히 벼루가 7점이나 출토되었고 그 중 1점에는 ‘서윤’으로 추정되는 인명이 새겨져 있다.


평택 백봉리·칠원동 유적


백봉리 유적에서는 일정 거리를 두고 위치하는 건물지 2기가 조사되었다. 건물지는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왼쪽에는 부엌 공간을 두고 있으며 내부에 전면 구들과 아궁이가 설치되었다. 구들시설과 기와, 자기 등 출토유물로 12세기 후반 ∼ 13세기 전반의 단독으로 조영된 일반가옥의 하부 구조로 보았다. 칠원동유적에서는 건물지 11기, 주거지 2기가 조사되었으며 주변에 수혈과 구상유구가 분포한다. 건물지는 원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구축 형태, 원지형을 이용하면서 건물을 구축하고 배후에 구를 설치한 형태, 사면을 L자형을 굴토하여 평탄대지를 조성하고 건물을 구축한 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조사지역의 지명 유래와 이 일대가 고대이후 남북으로 연결되는 교통로상에 있는 지리적 특성으로 고려시대 원의 배후에 형성된 취락으로 추정하였다.


인화 ∼ 강화간 도로구간 유적


고려시대 건물지가 30여기 조사되었다. 온돌시설과 배수시설이 있는 건물지, 능선 사면에 석축을 쌓아 평탄대지를 조성한 후 축조한 건물지, 기단시설이나 초석, 적심만 남아 있는 건물지 등이 다양하며 규모는 길이 10m이나 17m가 넘는 대형도 확인되었다. 유물은 청자완, 병·매병 등 자기류와 도기류, 기와류, 금제·은제 장식품, 동전 등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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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주제/ 중세고고학과 고려시대 경기의 위상 변화

    일자/ 2018.06.15.(금) 13:00 ~ 18:30

    장소/ 경기문화재단 3층 다산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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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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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문화유산의 가치 발견, 경기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