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연구원

고려시대 강화의 유적과 공간 ③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이 글은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천백주년 기념 학술대회’ 자료집에 수록된 발표주제문입니다.


고려시대 강화의 유적과 공간


이희인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목차|

  Ⅰ. 머리말

  Ⅱ. 강화의 위상과 유적

  Ⅲ. 도읍의 공간

  Ⅳ. 군현의 공간

  Ⅴ. 맺음말


Ⅱ. 강화의 위상과 유적


2. 유적 현황


지금까지 강화도에서 강도시기를 포함해 고려시대에 조성 또는 운영된 것으로 파악되는 유적은 대략 80여 개소 정도다. 최근 강화읍 일대에서는 도로와 건축 공사, 산업단지 조성 과정에서 都城과 고려시대 건물지가 여러 곳 발굴되었고 강화 북부의 하점·양사·송해면 일대에서 강화∼인화 간 도로 개설에 따른 조사에서 건물지와 분묘 유적이 확인되었다. 이외 지역에는 왕릉, 산성, 분묘, 건물지, 사지, 요지 등이 분포하는데 왕릉 등 일부 유적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표 조사만 이루어진 상태다.


1) 도읍 일대


우선 강도를 에워쌌던 길이 11.39km의 都城이 남아있다. 동쪽 해안 방면 제외하고 도읍을 ‘ㄷ’ 형태로 둘러싼 형태다. 성벽은 흙으로 쌓아 올렸으며 기단석렬 위에 판축 토루를 쌓고 그 위에 내·외피를 덮은 구조다. 도성의 안팎에는 강도시기에 조성 또는 운영된 것으로 보이는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도성 안쪽에서 9개소의 유적이 조사되었는데 이 중 현재 강화군청이 자리한 관청리 일대에 5개소가 분포한다. 관청리 657번지 유적과 이에 인접한 687-1번지 유적에서는 회랑 건축물이 조사되었고, 향교골 유적, 관청리 163번지유적과 145번지 유적에서는 건물터와 축대, 步道 시설이 확인되었다. 각 유적에서는 양질의 청자와 기와가 출토되었다. 관청리 일대에서 조사된 유적은 건물의 형태와 출토 유물의 수준을 볼 때 강도의 궁궐 또는 관아, 사원의 흔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관청리 이외의 지역 가운데 갑곶 일대에서는 건물지 십 수기가 조사되었다.1* 이 중 인화∼강화 도로구간의 M지점은 산 경사면을 따라 석축으로 5단의 대지를 조성하고 건물을 배치하였는데 상당한 위계를 갖춘 건물로 파악된다.


도성 외곽에는 월곳리·옥림리 유적, 대산리 산105번지 유적, 인화∼강화간 도로 강화 산단지점과 옥림리 유적, 신정리 572-29번지 유적 등이 확인되었는데 건물지가 다수다. 각 유적은 대부분 도성에 인접하거나 멀어도 수 백m 이내의 거리에 분포한다. 건물지 이외에 분묘 유적도 확인되는데 강화 산단지점에서는 석곽묘와 토광묘 169기로 구성된 분묘군이 조사되었다.2*


한편 도성 안팎에는 출토유물로 볼 때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寺址 10여 개소가 분포한다. 지금까지 조사결과 강화에는 전등사 등 현존 사찰을 포함해 고려시대에 운영된 것으로 판단되는 사원 유적이 약 30여개소다.3* 이 가운데 도성 일대에 사지가 가장 밀집해 있다. 도성 안쪽에는 왕림사지, 병풍암사지, 천등사지, 묵왕사지, 범머리사지 등이, 바깥에는 선원사지, 송악사지, 용장사지, 선행리사지 등이 분포한다. 선원사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적은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로서 조성 및 운영시기를 특정하기 어렵지만 천도와 함께 많은 종교 시설이 이전 및 건립된 점을 감안할 때 적지 않은 수가 강도시기에 조성·운영된 사원의 흔적일 가능성이 있다.4*


2) 도읍 외곽


도성을 벗어난 외곽 지역에는 강도시기 왕릉과 이궁터가 남아있다. 홍릉, 석릉, 곤릉, 가릉 등 4기의 왕릉과 陵主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왕릉과 동일한 구조와 규모의 석실분 3기가 분포한다. 강화 고려 왕릉은 도성 서쪽의 고려산에 자리한 고종 홍릉을 제외하고 나머지 왕릉 3기와 석실분 중 1기가 진강산 일대에 자리한다. 진강산은 왕실뿐만 아니라 최항, 유경현 등 강도시기 지배층의 주요한 매장지로 활용되었던 지역으로 파악된다. 한편 마니산 남쪽 자락 이궁터가 자리한다.5* 이곳은 1259년(고종 46) 연기설에 따라 基業을 연장하기 위해 조성한 이궁·가궐 가운데 하나로 강도시기에 건립된 별궁과 가궐, 이궁 가운데 현재 유일하게 흔적이 확인되는 사례다.


아직 구체적인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강화도 전역에서 지표조사 결과 고려시대에 운영되었을 것으로 파악되는 성곽과 분묘, 사지, 요지 등이 분포한다. 강화도의 성곽은 대부분 해발 250m~460m에 자리한 산성이다. 강화 본도에 하음산성(봉천산), 고려산성(고려산), 정족산성(삼랑성)이, 교동에는 화개산성(화개산)이 있다. 분묘군은 지금까지 13개소가 확인되었다.6* 창후리 고분군 등 일부 유적만 발굴된 상태라 대부분의 분묘군은 조성 시기가 불확실하지만 강화 토착 주민 또는 강도시기 개경과 내륙에서 이주한 사람들의 매장지일 것으로 추정된다. 지표조사 결과로 보면 석곽묘와 토광묘가 주된 묘제로 추정된다. 다만 고려시대 상위 계층의 분묘 유형인 판석재 석곽묘가 많이 확인되는 점이 주목되는데 이는 천도 당시 개경에서 이주한 지배층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7* 한편 사지가 약 20여개 소가 분포한다. 이 가운데 마니산 일대에 5개소가 확인되어 가장 밀집도가 높다.8* 제의 유적으로 참성단과 봉천대가 있다.


이 밖에 도성 외곽 지역에서 확인된 건물지 유적으로는 ‘신봉리·장정리 유적’이 있다. 봉천산 남사면 중턱의 경사면에 단을 조성한 뒤 그 위에 건물을 조성하였는데, 중심 건축물은 中庭을 중심으로 ‘回’자형으로 배치하였다. 지금까지 도성 바깥 지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조사된 권위 건축물이다.9* 이 밖에 강화 동남쪽 선두리에는 도기 요지가 분포한다.10* 발굴에서 가마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넓은 폐기물 퇴적층이 조사되어 이 일대에 대규모 도기 가마가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 기호문화재연구원, 2017, 『인화∼강화 도로건설공사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약보고서』

2. 기호문화재연구원, 2017, 앞의 자료.

3. 인천시립박물관, 2009, 『강화의 절터 지표조사 보고서』문화재청·불교문화재연구소, 2010, 『한국의 사지-사지 현황조사보고서

   (上)』

4. 이희인, 앞의 책, 187∼188쪽.

5. 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 2001, 『강화도 마니산 고려 이궁지 지표조사 보고서』

6. 인천시립박물관, 2003, 『강화의 고려 고분』

7. 이희인, 앞의 책, 205∼207쪽.

8. 이희인, 앞의 책, 189쪽.

9. 중앙문화재연구원, 2013, 『강화 신봉리·장정리 유적』

10.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2004, 『강화 선두리 도기요지』인천시립박물관, 2006, 『강화 군내도로 확·포장 구간내 문화유적 발굴조

     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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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경기 천년 및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주제/ 중세고고학과 고려시대 경기의 위상 변화

    일시/ 2018.06.15.(금) 13:00 ~ 18:30

    장소/ 경기문화재단 3층 다산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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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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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문화유산의 가치 발견, 경기문화재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