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여행] 박지원 종손의 연행 답사기

압록강에서 심양까지

지원 종손의 연행 답사기

압록강에서 심양까지



이글은 2018년 6월5일부터 6월10일 5박6일 동안 실학 훼밀리 회원들과 열하일기 노정에 참여했던 경험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압록강에서 심양까지의 여정을 직접 체험하며 연암 박지원과 조우하는 경험을 해본다.


길을 떠나기 전에


1780년(정조4년, 건륭45년) 청나라 건륭제(고종)의 칠순연 만수절에 참석하는 사행단은 진하사 겸 사은사로 영조의 딸 화평옹주의 남편이자 정조의 고모부인 정사 박명원, 부사 정원시, 서장관 조정진으로 삼사를 구성했다. 사신들이 친인척에게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자비로 사행단에 동행시키는 비공식 수행원을 자제군관이라고 하는데, 북학파 실학자들 상당수가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연행길을 다녀왔다. 박명원의 8촌 동생이었던 연암 박지원도 자제군관으로 중국 여행길에 올랐고, 마부 창대와 하인 장복을 대동했는데 나도 그 무리에 끼기로 한 것이다.

출국 전야인 6월23일 밤, 연암은 통군정이 있는 의주에서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으리라. 동경하던 청나라에 내일이면 들어간다는 설렘과 의주에서 열흘이나 장마와 홍수에 갇혀 있었던 지루함이 이제 끝난다는 흥분 때문이다. 창대와 장복을 곁에 두고 행장을 챙기며 말 안장주머니에 벼루와 석경, 붓 두 자루에 먹, 그리고 공책 네 권과 연행노정 이정표 두루마리 등 단촐하게 여행물품을 챙겼다. 슬픈 압록강! 오리 대가리처럼 퍼런 물이라서 압록이라는 이름의 강. 그곳에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운 자리에서 강 건너 내 조국 땅의 닭 우는 소릴 듣고 싶어 했을 것이다. 연암이 떠난 지 213년 지난 지금 나는 압록강에서부터 열하 여정의 첫 페이지를 시작한다.





압록강철교, 오른편 철교 앞부분은 한국전쟁 당시 끊겨서 상징적으로 남아있다. 






1일차 6월5일 / 압록강 철교에 가다


한국에서 한 시간쯤 걸려 14시15분에 중국 심양에 도착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단동이다. 실제 열하일기 내용 그대로 가려면 북한의 신의주에서 출발해서 압록강을 건너 단동을 가야 하지만 우린 심양에서 3시간여 걸리는 단동에서부터 연행길의 첫걸음을 디뎠다.

단동에 도착해서 압록강 연행사신 도강처의 재현을 위해 유람선을 타고 압록강을 한 바퀴 돌았다. 바로 강 건너가 북한이다. 중국 변방에 와서야 볼 수밖에 없는 같은 민족이 사는 북한. 압록강 다리를 걸어오면서 다리의 중간에 서서 단동과 신의주의 확연히 비교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압록강의 신의주와 단동으로 연결된 다리에서는 북한에서 화물을 싣고 다니는 차량들도 보였다. 단동으로 오는 끊어진 철교는 6.25전쟁당시 UN군이 중공군의 남침을 막기 위해 폭파시킨 다리이다.

 옛날의 탕참인 지금의 탕산성은 읍 소재지이긴 하지만 그 중심부는 공공기관에다 가게와 살림집들을 다 합쳐서 백여 호 내외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다.

 금석산으로 가는 도중에는 길마다 분뇨가 흐트러져 한국의 1960년대가 보인다. 탄산성읍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으며 연암이 즐겨 드셨던 감자채 복음과 계란복음을 먹으니 감회가 새롭다. 점심식사 후 지금은 철길로 변한 총수의 옛길을 걸어 본다.

냇가의 가파른 암벽과 사행이 노숙을 하던 곳은 물가 오른 쪽 조금 높은 곳일 텐데 모두 옥수수 밭이었다. 앞쪽에 보이는 뾰족한 산은 가파른 절벽을 이루고 있고, 그 절벽 밑으로는 냇물이 흐르고, 철길 오른쪽으로는 옥수수 밭이 있는데 옛날의 노숙현장이다. 




탕산성촌_연행단이 노숙을 했을것이라 추정되는 자리




2일차 6월6일


문가보 후손 방문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이 새로 사귄 중국 친구들과 술에 뻗어 하루를 보낸 그곳이다. 문가보 후손인 문 씨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 말로는 문 씨 가문은 대대로 조선사신단들의 통역관을 맡았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할아버지와 그 아들은 한국어를 못하신다. 우리 일행과 인사하자마자 어디론가 갔다 오시더니 손에 낡은 책 한권을 가지고 나오셨다. 과도한 흡연으로 후두암치료를 받으신 할아버지는 목소리가 잘 안 나오신다. 희미한 목소리로 우리 집 가보라면서 낡은 책을 보여주었다 통역관의 일기 같은 것이었다. 보존 상태나 내용을 봐서는 가보 수준이 아닌 박물관에 기증해야할 문화유산 수준급이다.



문가보후손_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준 종손 부부



문가보후손이 보여준 족보책





3일차 6월7일


통원보 마을에서 6일간 머문 연암을 찾아 나는 통원보 서북쪽을 흐르는 하천을 둘러봤다. 장마로 물이 불어나 사행이 통원보에서 엿새 동안이나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 하천이다. 현지인들에게 하천의 이름을 물어보니 어떤 사람은 ‘시따허’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냥 아무런 이름도 없는 냇물일 뿐이라는 반응이었다. 읍내 중심부와 가까운 서쪽은 하폭이 비교적 넓었고, 심양으로 가는 도로와 철로가 지나가는 북쪽은 하폭이 아주 좁은 대신에 장마가 지면 물이 대단히 깊어지고 세차게 흐를 것 같았다. 하천의 물이 어느 정도 줄어들어 사행이 물을 건너던 날은 물살이 다른 곳보다 심하지 않고 수심도 비교적 얕은 곳을 택했을 터이지만 <열하일기>에는 그날 물을 건너는 풍경이 기록되어있다. 박지원은 하인 30여 명이 알몸으로 메고 건너는 정사의 가마를 함께 타고 건넜는데, 그는 먼저 언덕에 오른 뒤 다른 일행들의 물 건너는 모습을 재미있게 글로 쓰셨다. 기록들을 보면 초하구는 땅이 질척거려 사행단이 답동(畓洞)이라고 불렀던 곳인데, 지형 상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옛날에는 인가도 적고 배수설비도 없어서 땅이 질척거렸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한 읍(草河口鎭)의 중심부로서 제법 규모를 갖춘 중소도시가 되어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시장과 유사한 시장 안에는 가게마다 온갖 식재료들이 풍부하게 쌓여있다. 초하구 시장입구가 버스 차창으로 스쳐 지나갔다.

초하구를 지나 연산관으로 향하는 길은 조금씩 오르막길이 되다가 분수령(分水嶺)이라는 고개 하나를 넘게 된다. 18세기 연행 노정에는 큰 고개 두 개가 있었는데 그 첫 번째 고개가 연산관에서 첨수참으로 넘어가는 회령령이었다. 지금은 마운령이라고 부르는 고개인데, 18세기 우리의 연행록들은 다 회령령 이라고 했었다. 김창업, 홍대용, 이덕무, 이갑, 서유문 등이 다 회령령이라고 했고, 그중에서 이덕무만 “회령령은 마천령이라고도 한다.”는 한 줄의 기록을 더 남겼다. 연행 노정에서 가장 험난한 회령령을 버스로 달리니, 고개가 너무 가파러 사신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본다. 고개를 넘어 거의 다 내려가면서 왼쪽으로 큰 절 하나가 보였다. 반룡사라는 절인데, 절은 대단히 크게 지어 놓았다. 절 안으로 들어가니 관제묘가 있었던 자리만 남아 있다.



청석령을 바라보며 고유제를 지내는 모습 



연암 할아버지가 연행을 하셨던 청석령이 보이는 곳에서 잠시나마 실학자 후손과 고유제를 지내며 앞으로 연행 하는 길을 보살펴 달라고 기도 해 본다. 고유제를 드리니 영전(초상화)의 모습은 뵐 수는 있었지만 생전 목소리는 모르나 어렴풋이 할아버지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청석령은 사행의 연행 노정 중 가장 험한 고개였다. 그리고 청석령 고개 위에는 절 하나가 있었다. 연암은 관왕묘라고 했고 담헌은 그냥 묘당이라고 했는데, 18세기 후반 조선의 사신들이 넘어 다니면서 사연들을 남긴 절이다. 우리 내외는 그 절을 찾아 나섰지만 절은 이미 없어지고 폐허가 되어버린 옛날의 절터만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조선의 사신들이 넘어 다니던 옛날의 그 길은 지금으로 치면 당연히 국가급 공로에 해당되는 큰길이었는데 공사로 인해 길이 넓다. 공사차가 가끔 다니고 농약을 치는 작은 차도 보인다.. 어느 정도 가다보니 중간에서 좁은 길로 들어서서 천천히 걸으며 쉬면서 경치를 보며 가다보니 일행은 보이지 않는다. 바위에 앉아 있다 보니 조용하기만 한데 풀벌레소리 산새 소리 바람소리가 모여서 합창을 하듯 화음이 맞는다.



4일차 6월8일


요동벌판의 백탑을 만나다

길가에 서서 옛날 우리 사신들이 넘어오곤 하던 웅장 했을 것 같은 광경을 동쪽의 낮은 고개를 바라본다. 구요동 서쪽 성벽과 해자가 있던 자리는 지금 남북으로 기다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연암이 “구요동 성문을 나오니 돌다리가 있는데, 다리의 돌난간이 매우 정밀하고 교묘하다.”고 했던 그 다리도 지금은 사라지고 그냥 현대식 보통의 다리가 놓여있을 뿐이다. 공원을 오른쪽으로 끼고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큰길 서북쪽으로 요동백탑이 보인다.




요동벌판


천년이 넘도록 한 자리에 서있는 거대한 탑이다 보니 사람들은 그것이 역사의 흔적이기 보다는 마치 자연의 일부인양 인식을 해온 것은 아닌지 우리나라 선비들이 그 탑을 보면서 느꼈던 소감들 또한 역사에 대한 상념들이기 보다는 요동벌판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있는 기이한 풍경 정도가 아니었을까? 연암은 요동을 정벌하는 자는 중원을 일듯이 요동벌의 중요성을 말하곤 하였다. 차를 타고 요동벌을 지날 때 저녁노을이지는 낙조가 아름다웠다.



5일차 6월9일

심양 그리고 열하


십리하를 떠난 사행은 사하보 백탑보 혼하 등을 지나 그날로 심양에 입성하곤 했다. 오늘은 백탑보와 혼하보를 들려보기로 한다. 백탑보라는 지명은 마을 안에 백탑이 있어서 생긴 이름으로 우리 사행이 점심을 먹고 가던 곳이고, 혼하보는 옛날 심양성 남쪽 강물인 혼하 남안의 오래된 마을로 사행이 지나던 곳이다 차에서 내려 길에 서서 연암이 지나갔던 사행 길을 바라본다. 우리의 여정은 여기까지 이지만 연암할아버지는 쉬지 않고 연경, 열하까지 갔을테다.






 6일차 6월10일

 여정의 끝에서



5박6일의 연행여정 으로 저녁 20시4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 이렇게 연행 노정은 끝이 났다. 우선 연행노정을 위해 도움을 주신 실학 박물관 장덕호관장님을 비롯해서 학예사님, 그리고 실학훼미리 회장님 이하 회원 여러분 김시업 관장님께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5박6일 동안 무탈하게 지내온 것이 서로의 염려 덕분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연암 할아버지 고유제를 힘써주신 회장님, 관장님, 양쪽 집사님과 축문을 독축해 주심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도 더욱 발전한 모습으로 연행노정이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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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구 @안진희 @김수미 @조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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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2018 실학훼밀리 중국 연행 노정 답사

      여행/ 박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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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실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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