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칠장사 당간 七長寺 幢竿

경기도유형문화재 제39호




안성 칠장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고려시대에 들어와 혜소국사 정현慧炤國師鼎賢(972~1054)이 머물며 가람의 면모를 일신하면서 번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현은 1014년(고려 현종5) 칠장사를 중창하기도 했으며, 1054년(고려 문종8)에는 봉은사奉恩寺에서 국사國師로 책봉된 다음 칠장사로 하산하였다.

칠장사는 1383년(고려 우왕9) 왜구의 침입으로 개천사開天寺에 있던 『고려역조실록高麗歷朝實錄』을 옮겨 보관하는 등 불교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던 이 지역의 중심적인 사찰이었다. 지금도 당간이 서 있는 주변에서 초석과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어 고려시대 칠장사의 사역이 상당히 넓었음을 알 수 있다.

<칠장사 당간>은 당간지주와 철로 제작된 당간이 남아 있는데, 현재 경내로 들어가는 진입공간에 위치하고 있다. 즉, 칠장사 입구에 위치하여 가람의 위상을 드러내고, 멀리서도 잘 보이는 곳에 배치했음을 알 수 있다. 당간지주의 기단부는 매몰되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으나 판석형 석재를 결구하여 마련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대석은 3매의 판석형 석재를 바닥에 깔아 마련했는데, 가운데 지대석은 간대竿臺 역할을 겸하고 있다.


칠장사 당간 전경,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두 지주는 지대석 상면 가운데에 사각형 홈을 마련하여 끼우도록 하였다. 간대석은 당간이 놓여있어 확인할 수는 없지만 철통을 견고하게 고정하기 위하여 원좌와 원공을 시공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두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 있는데, 전체적으로 소박한 치석 수법을 보이고 있다. 지주부는 평면 사각 석주형으로 각 면을 고르게 치석하였으며, 외곽 모서리를 깎지 않고 직각으로 처리하였다. 지주 정상부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가면서 평평하다가 외면과 이어지는 모서리 부분에서 짧게 호선을 그리고 있다. 지주 안쪽 면에 간공은 시공하지 않았으며, 꼭대기에 간구를 시공하여 당간을 고정하는 간을 끼우도록 하였다.

당간은 현재 철통鐵筒 15단이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원래는 30단이었다고 하여 지금보다 2배 정도의 높이였음을 알 수 있다. 철통은 상부로 올라가면서 지름이 좁아지도록 주조하였으며, 하부에 철 띠를 마련하고 아래 철통을 위에서 아래로 끼워 연결하였다. 즉, 각 철통의 상부에 끼움 촉을 마련하여 서로 연결되도록 하였으며, 연결 부위에는 철 띠를 돌려 견고하게 고정되도록 하였다. 이러한 철통의 연결 방법은 갑사 철당간과 상통하고 있다. 칠장사 당간은 지주부의 규모가 작고, 지주부의 너비와 폭도 다른 지주에 비하여 좁은 편이다. 그리고 각 면이 고르게 치석되었지만 장식적인 의장은 보이지 않고 있다.

지주부의 치석과 기단부 결구 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칠장사가 정현이 주석한 1014년경을 전후하여 크게 중창되었던 것으로 보아 칠장사 당간도 이 시기를 전후하여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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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고려시대

    규모/ 1기 / 당간 1,150×40cm, 지주 300cm

    재질/ 금속(철) 및 석재

    주소/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801-1

    지정일/ 1973.07.10

    소유자/ 국유

    관리자/ 안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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