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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칠장사, 아이들도 빠져드는 스토리텔링 사찰

궁예, 박문수, 임꺽정 인생의 터닝포인트




아이들도 빠져드는 스토리텔링 사찰

경기도에는 여러 천년고찰들이 있고 긴 역사만큼이나 숱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칠장사는 그중에서도 스토리텔링의 강호로 꼽히는 절이다. 절 모르는 어린이들이 와도 설명을 잘 해주는 어른만 있다면 결코 지루하지 않을 사찰이다. 칠장사는 고려 전기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도량 곳곳에 넘쳐흐른다. 판타지에 가까운 옛 전설이 아니라 대부분 실존인물과 관련한 이야기들이다.

각 인물들의 인지도로 보면 거의 ‘어벤져스팀’ 급이다. 뒤에 소개할 인물로 박문수, 임꺽정, 궁예, 나옹화상, 인목왕후 등이 기다리고 있다. 칠장사 어벤져스의 수장은 혜소국사다. 열거한 인물들에 비하면 이름이 덜 알려져 있긴 해도 이미 ‘국사(國師)’라는 칭호에서 고려 전기를 대표하는 승려로서 그의 입지를 가늠할 수 있다. 칠장사는 선덕여왕 5년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데 확인된 기록은 없고 혜소국사가 크게 중창하면서 국가의 주요 사찰로 거듭났다. 칠장사라는 이름도 혜소국사와 관련이 있다. 도둑질을 일삼던 7명의 도적이 혜소국사의 가르침에 탄복해 그의 제자가 되었고 도를 깨쳤다는 일화다. 본래 칠장사의 ‘칠’은 옻칠(漆)을 썼는데 혜소국사와 칠현에 의해 일곱 칠(七)을 써서 칠장사(七長寺)가 되었다고 한다. 경내 산신각 아래에 있는 보물 제488호 혜소국사비에 스님의 업적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넘치는 이야기만큼이나 꽃이 지천, 청정 자연 속 사찰

사찰은 산자락에 포근하게 안긴 모습으로 자리한다. 사찰 바로 앞까지 도로가 뚫려 있어 산속 암자 느낌은 아니지만 사찰 일대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 분위기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보이는 절의 텃밭에는 연잎마냥 잎이 넓은 토란과 곧게 뻗은 옥수수가 열을 맞춰 가지런히 자라있다. 칠장사 스님과 보살님들이 얼마나 바지런한지는 도량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여름과 가을의 가람은 꽃이 지천이다. 자투리땅을 황량하게 남겨둘 수 없어 일부러 심은 꽃들이다. 황화코스모스, 과꽃, 맨드라미, 족두리꽃, 금잔화 등 그 종류도 수십 가지다. 엄격하게 관리하는 화단이 아니라 산에 핀 야생화처럼 전각들 주변으로 자연스럽게 꽃밭이 만들어져 있다. 덕분에 방문객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돈다.

물 흐르는 소리도 유난히 청명한데 칠장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냇가가 도량을 지난다. 부도비 뒷편의 작은 골짜기 안쪽에는 샘 형태로 옛 모습을 유지한 약수터가 있다. 약수터 옆에 큰 수각을 두었지만 발걸음을 더해 샘에서 물을 떠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암벽을 타고 시원하게 흐르는 물길이 약수터를 지난다. 더운 날이면 약수터로 피서를 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궁예, 박문수, 임꺽정 인생의 터닝포인트 ‘칠장사’

약수터에서 올려다 보이는 경사진 길 위에는 ‘어사 박문수 합격다리’가 있다. 다리는 약수터로 흘러드는 냇가 위를 지나는데 이 다리를 통해 칠장산 등산로로 진입할 수 있다. 등산로 이름 또한 ‘어사 박문수길’이다. 다리 난간에는 색색의 리본이 빼곡하게 달려있어 그 자체로 볼거리다. 다리 앞에 리본과 펜이 준비되어 있어 누구나 리본에 소원을 적어 달아놓을 수 있다. 이곳에 ‘박문수’의 이름이 도배된 까닭은 다리 바로 앞에 보이는 전각 나한전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전에는 작은 가건물로 아담한 기도처였는데 최근 정식으로 건물을 지었다. 이 나한전에서 기도를 하기 위해 일부러 절을 찾는 이들이 많은데 그 이유가 어사 박문수 덕분이다. 1723년, 박문수가 충청도 천안에서 한양으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길에 칠장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때 그는 나한전에서 불공을 드리고 잠을 잤는데 나한이 꿈에 나타나 시제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시험에서 같은 시제가 나왔고 박문수는 삼수 끝에 장원에 급제할 수 있었다. 그날 밤, 박문수가 칠장사에 묵지 않았다면 조선 최고의 암행어사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가 바탕이 되어 어사 박문수 합격다리와 칠장산 어사 박문수길이 조성되었다. 수능시험을 앞둔 시기에는 나한전에 불공을 드리는 수험생 자녀의 부모들이 부쩍 늘어난다.

나한전 지붕을 드리운 오래된 소나무는 수령 650년의 ‘나옹송’이다. 경기도 지정 보호수로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고승, 나옹화상이 심은 소나무라고 전해진다. 고려 때 존재했던 다수의 사찰들에서 유독 나옹화상에 얽힌 설화와 그가 심은 나무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만큼 불교계에서 숭상했던 스님이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또한 나옹화상이 활동했던 고려 말에는 칠장사에서 13km 떨어진 죽산면 죽산리 일대에 고려 3대 사찰 중 하나로 꼽히던 봉업사가 있었다. 불교가 융성했던 지역이었기에 나옹화상은 물론 국가의 중요한 인물들은 이곳을 한번 씩 다 거쳐 갔을 것이다. 나한전 위의 전각은 산신각이고 나한전과 산신각 사이의 전각에는 혜소국사비가 보존되어 있다. 비신(碑身,비석의 몸체), 귀부(龜趺, 받침돌), 이수(螭首, 머리돌)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각 부분의 조각이 매우 화려하고 정교하다.




다시 경사를 내려와 중정으로 들어설 때 주목할 만한 전각이 바로 명부전이다. 명부전 처마 아래 외벽 상단에는 혜소국사와 일곱 명의 도적, 궁예, 그리고 임꺽정에 얽힌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사찰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현대에 그린 벽화인데 마치 영웅호걸이 등장하는 전래동화 속 그림 같다. 궁예는 왕권다툼을 피해 이곳 칠장사에서 5살부터 13살까지 동자승으로 지냈다고 한다. 특히 무예 연습을 열심히 했다고 전해지는데, 벽에는 어린 궁예가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조선 중기의 의적 임꺽정은 스승인 병해대사를 만나러 칠장사에 자주 들렀다고 한다. 병해대사는 가죽신을 짓던 갖바치였는데 민초들에게 가죽신 짓는 법을 가르쳐 생계에 도움을 주었다. 천민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던 병해대사의 이상은 임꺽정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고 임꺽정은 이후 스승을 위해 ‘꺽정불’이라 불리는 목조불상을 만들었다. 실제 꺽정불로 알려진 목조불상은 칠장사 극락전의 본존불로 모셔져 있다. 임꺽정은 벽초 홍명희의 소설로 유명해졌지만 조선 명종 때 실존했던 인물이다.





고색창연한 대웅전과 도량 곳곳의 보물들

중정으로 들어서면 대웅전을 중심으로 원통전, 명부전, 열반당, 응향각, 종무소, 극락전 등의 전각이 빙 둘러 자리한다. 대웅전은 오랜 풍상을 겪은 듯 단청은 바랬지만 웅장한 자태에선 단단하고 견고한 힘이 느껴진다. 오랜 세월, 사찰의 든든한 중심축 역할을 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칠장사 대웅전은 1790년에 중창하고 1828년에 이건했는데 조선 후기의 불전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받아 지난해 보물 제2036호로 승격되었다.



본당 내부를 들여다보면 삼존불보다도 천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불화와 연꽃무늬로 채색된 우물천장과 정교한 닫집(불전 위의 작은 집 모형), 자연 그대로 휘어진 대들보와 기둥은 보는 이의 감탄을 이끌어낸다. 대웅전 본존불인 목조석가삼존불좌상과 삼존불 뒤에 걸린 영산회상도 역시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중정의 중앙에 자리한 삼층석탑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탑이 아니고 죽산리에 흩어져 있던 탑 부재를 근처 대형 목장에서 관리하다가 2005년 절에 기증한 것이다. 고려 전기 양식의 삼층석탑으로 이 또한 경기도 유형문화재다. 탑에서 대웅전을 바라볼 때 오른쪽에 있는 석불상은 보물 제983호인 봉업사지석조여래입상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석불 역시 죽산리 봉업사지에 있던 것으로 죽산중학교 교정에 자리하다가 1980년경 칠장사로 옮겨졌다. 불꽃무늬가 새겨진 광배가 돋보이는 고려 초기 불상이다. 비록 봉업사는 석불, 석탑 몇 기만을 남겨놓은 채 폐사되었지만 다행히 칠장사가 명맥을 이어 과거 융성했던 고려 불교의 흔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워낙 유명한 인물들의 야사에 가려진 감이 있지만 칠장사도 이전에 소개한 신륵사와 마찬가지로 보물밭이나 다름없는 절이다. 국보 1점, 보물 5점, 경기도 유형문화재 7점, 향토 유적 2점 등 문화재가 수두룩하다. 일주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눈길을 끄는 높이 3m의 가는 철기둥은 청주 용두사지와 공주 갑사와 더불어 전국에 단 3점 있는 철당간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도에선 유일한 철당간이며 조선중기에 제작되었다. 물론 자연이 품은 절 자체의 아늑한 분위기가 워낙 좋은 곳이니 보물찾기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래도 1점의 국보가 무엇인지는 알고 가는 편이 좋다. 앞서 소개한 혜소국사비와 대웅전은 쉽게 눈에 띄는 보물들이지만 국보 제296호 오불회괘불탱은 야외 의식용 대형 불화로 큰 행사 때만 볼 수 있는 유물이다. 단아하고 세련된 인물의 형태와 짜임새 있는 구도로 17세기를 대표하는 불화로 평가받는다. 오불회괘불탱과 마찬가지로 따로 보관하고 있어 보기 어려운 보물 중에는 보물 제1627호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 친필족자도 있다. 칠언시는 광해군 정권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친정아버지와 아들 영창대군을 생각하며 인목왕후가 직접 쓴 작품이다. 인목왕후가 칠장사로 잠시 피해있을 때 쓴 것으로 추정한다. 인목왕후는 칠장사를 친정아버지와 영창대군의 원찰로 삼았다.




이외에도 한정된 지면 상 소개하지 못한 이야기와 보물이 많다. 물론 속속들이 알고 방문하는 이들이 많진 않을 것이다. 다만 칠장사는 이야기와 보물 못지않게 꽃과 나비가 많고 맑은 물이 흐르는 청정 자연 구역이다. 언택트 여행지 삼아 잠시 쉬었다 가는 장소로 방문하면 좋겠다.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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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칠장사

    위치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로 399-18

    입장료/ 없음

    누리집/ www.chiljangs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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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석구석을 걷고 기록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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