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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칠장사 소조사천왕상 七長寺 塑造四天王像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15호




안성 칠장사는 636년(고구려 영류왕19)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고 1014년(고려 현종5)에 혜소국사慧炤國師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여러 번의 중창이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세도가들에게 삶의 터전을 뺏겨 빈 절로 있었지만 거사 초견楚堅이 1674년(숙종1)에 다시 중수하여 현재까지 사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 절의 오랜 역사는 경내에 수많은 부도탑과 현존하는 유물이 이를 증명해 주며, 천왕문 안에 장대한 크기의 소조사천왕상은 조선후기 칠장사의 경제력과 위세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칠장사 소조사천왕상> 북방다문천왕,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칠장사 소조사천왕상> 동방지국천왕,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칠장사 소조사천왕상>은 4구이며 나무로 뼈대를 하고 흙을 붙여 만든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천왕문 안에 4구의 사천왕이 배치되어 있으며, 모두 의자椅子에 앉아 있는 상으로 양 발 아래에는 악귀를 제압하는 조선후기 사천왕상의 특징을 따르고 있다. 천왕문 정면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편 앞쪽에 칼을 든 천왕상이 있고, 그 옆으로 비파를 든 상이 있다. 왼편에는 앞쪽 오른손에 용, 왼손에는 여의주如意珠를 쥔 천왕이 있으며, 그 옆으로는 오른손에 당幢을 세워 든 천왕이 왼손을 허리에 댄 자세로 앉아 있다. 조선후기 사천왕상의 보편적인 배열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각각의 존명을 보면 오른쪽에 비파를 든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 검을 든 동방지국천왕東方持國天王, 왼쪽에 당을 든 서방광목천왕西方廣目天王, 용과 여의주를 든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이 있으며, 오른쪽 안쪽으로부터 북→동→남→서의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신체는 전체적으로 가늘고 길며, 특히 상반신이 차지하는 비율이 크다. 머리에는 높고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관 양측으로 관대장식이 날리는데 모두 같은 모습이다. 구불구불한 두꺼운 눈썹, 크게 뜬 눈, 살포시 다문 큰 입술에 표정 없이 앞을 바라보는 시선처리 등 각 상의 표현이 거의 동일하며, 부드럽고 온순함이 느껴진다. 갑옷을 입고 그 위에 천의를 둘렀으며, 바람에 날리는 옷자락도 마치 정지된 듯한 모습으로 생동감이나 역동적인 분위기는 거의 사라졌다. 


북방다문천왕·동방지국천왕, 남방증장천왕·서방광목천왕,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남방증장천왕, 서방광목천왕,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현존하는 소조사천왕상은 보은 법주사(1624)·순천 송광사(1628)·구례 화엄사(1632)·완주 송광사(1649)·김천 직지사(1665)·홍천 수타사(1679)·고창 선운사(1680)·공주 마곡사(1683) 등 17세기 전반부터 대략 10건 정도가 알려져 있으며, 대체로 17세기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 상의 양식적 흐름을 보면 17세기 전반 사천왕은 자연스러운 자세, 위엄과 사실적인 조각 양식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17세기 후반에 접어들면 자세가 경직되고 길쭉한 신체비례를 보인다. 이러한 특징은 1718년(숙종44)에 제작된 양산 통도사 목조사천왕상도 비슷해 재료에 관계없이 17세기 후반의 표현기법이 18세기로 이어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칠장사 소조사천왕상은 1726년(영조2)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소조상이 17세기 전반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18세기 소조사천왕상은 매우 이례적인 작품이다. 근엄한 모습을 갖춘 사천왕상이라기 보다 해학과 친근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조선후기 사천왕상의 양식적 흐름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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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조선시대

    규모/ 4구 / 높이 342cm

    재질/ 진흙, 목재

    주소/ 안성시 죽산면 칠장로 399-18

    지정일/ 1983.09.19

    소유자/ 칠장사

    관리자/ 칠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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