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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더럽지도, 가볍지도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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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더럽지도, 가볍지도 않은…….


수원 해우재 박물관


올해부터 공공화장실 휴지통 없애기가 전면 시행됐다. 이 새로운 정책에 ‘화장실’이란 익숙하지만 공공의 주제로는 어쩐지 어색한 화두가 연두부터 삶 속으로 찾아왔다.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지만 어딘가 자주 언급하고 싶지는 않은 ‘화장실’이란 공간. 그래서 새해부터 꼭 들러보고 싶었던 장소가 있다. ‘화장실’이란 일상적이며 그 쓰임새 외엔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던 공간 속으로, 조금은 가까이 천착해 들어가 보고자 수원의 이색 공간을 찾았다.


▲ 변기모양의 해우재 박물관


이색 박물관 ‘해우재’, 재밌지만 우습지 않은 그곳.


수원 장안구에 이색적인 우리나라 최초의 박물관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관광 으뜸명소”로 꼽히기도 했단다. 이곳은 2010년 개관한 화장실문화 전시관인 해우재 박물관이다. 근심을 푸는 집이란 이름의 ‘해우재(解憂齋)’는 사찰에서 화장실 명칭으로 쓰는 해우소에서 비롯한 이름이다. 일상적이지 않은 주제를 다룬 박물관이기도 하려니와 처음 박물관을 들어설 때면 변기 모양을 본 뜬 박물관 건물과 곳곳에 자리한 변기 장식에 이곳을 방문한 아이들처럼 키득키득 웃음이 배어나기도 한다.



▲ 해우재 문화공원


전시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화장실의 역사와 문화를 전달해 준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전시와 눈높이 교육에 유달리 이곳엔 어린이 방문객이 많다. 그러나 웃음을 자아내는 전시물만 보고 이곳을 어린이 박물관으로 생각해버리면 곤란하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가벼이 웃음 나는 전시로만 흘려버려서도 해우재에 온당치 못하다. 웃으며 들어서지만 전시가 전하는 주제의 바탕은 ‘화장실’이 우리 일상에서 차지하는 중요성만큼이나 꽤 무게감 있다.

화장실의 탄생은 인간의 정착생활과 함께 시작됐다. 이 일깨움을 시작으로 전시관에는 백제시대 남성용 요강 ‘호자’를 비롯해 세계의 요강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은 우리나라 화장실의 변천사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전달해주고 있다. 주거공간에 화장실이 처음 들어온 1940년대 문화주택부터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기술로 수세식 변기가 내부에 설치된 1950년대 아파트 등 몰랐던 이야기들이 박물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 세계의 요강전시


“인류문화의 가치?” 결코 거창하지 않은, 화장실 문화


이제는 우리나라 휴게소, 역사 등을 비롯해 어느 곳을 가도 깨끗한 화장실을 접하는 게 당연한 이야기가 됐다.(아쉽지만 늘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계추를 거꾸로 돌려보면 자연스레 우리가 일상으로 접하고 있는 화장실 문화의 역사가 아주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평창 패럴림픽이 30년 만에 다시 우리나라에서 개최되고 있다. ‘86 서울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하계올림픽’ 등 국제행사를 개최하며 ‘화장실 깨끗하게 하기’ 청결운동이 시작돼 화장실 관리의 체제정립과 화장실 개선 필요성이 공감대를 일으켰다. 2002 한·일 월드컵 개최가 확정되면서 정부와 민간이 합동하여 화장실 문화운동을 시작했음을 이곳 해우재에 와서 접하게 됐다.

요즘도 공공화장실 내부에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는 화장실문화시민연대의 익숙한 표어가 자리하고 있다. 공공화장실의 청결도나 우리가 공공화장실을 사용하는 화장실 예절이 결코 개개인의 도덕성에 의해 자리 잡아 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화장실문화운동’, ‘아름다운 화장실 만들기’는 어찌 보면 기본적이지만 인간존엄과 환경보호에 중요한 가치의 실천이다.


▲ 세계화장실협회의 공중화장실 건립 지원사업


해우재에는 화장실 문제를 국제무대에서 다루는 민간 국제기구인 세계화장실협회(WTA) 사무실이 있다.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로 취급되지 못한 화장실 문제를 공론화하고 그 문제해결을 위해 전 세계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의지로 설립된 이 민간기구가 열악한 환경의 국가에 진행해온 '사랑의 화장실' 보급 및 기금조성 등의 활동 내역이 박물관 한편에 전시돼 있다. 너무나 당연스런 권리로 이용해온 화장실이란 일상의 영역이 인간의 생활에 얼마나 중요한 공간이고,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는지 해우재 박물관에 오면 새삼 실감할 수 있다.


화장실, 예술, 교육과도 만나다.


이번 겨울 해우재에서는 특별전시 『TOILET 화장실 × ART 아트』를 선보였다. ‘화장실’을 주제로 한국, 일본, 이탈리아, 필리핀 출신의 팝 아티스트 12인이 참여한 재기 넘치는 팝아트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차민정 큐레이터는 “가볍지만 가볍지 않고 더럽지만 더럽지 않은 16점의 작품을 통해 일상적 공간인 ‘화장실’이 예술이라는 거울에 어떻게 비추어지는지 보여주고자 한다.”고 전시회 의도를 밝히고 있다.


흔치 않은 주제들의 작품들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그러나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코끼리 똥이 종이로 만들어져 사람에게는 일자리를 재공하고 코끼리는 서식지와 먹이를 얻게 되는 선순환을 담아낸 박경미 작가의 ‘코끼리가 만드는 빛’이나 경복궁 후원에 똥지게를 지고 농사를 지었다던 세종을 시각화한 조성훈 작가의 ‘똥지게를 짊어진 세종’ 등 작품들은 하나같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거리들을 던져준다.


▲ 코끼리가 만드는 빛 / 똥지게를 짊어진 세종


다양한 화장실의 역사와 그 문화를 담아낸 조형물 전시가 해우재 문화공원에 자리해있다. 어린이 체험관에는 아이들이 자연스레 배설과 건강, 화장실 예절을 배울 수 있도록 꾸며져 있으며 화장실 문화와 관련된 동화책이 구비된 이름도 재미있는 ‘똥도서관’이 있다. 해우재 문화센터에서는 아이들 대상의 문화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볼거리가 꽤 다채로워서 둘러보는 즐거움이 크다. 문화공원에서 화장실 조형물을 배경으로 재미있는 사진 찍기는 해우재 관람의 덤인 셈이다.


▲ 어린이체험관


결코 가볍지도, 더럽지도 않은 화장실을 향한 단상이 피어나다.


‘화장실’, 당연한 일상 영역으로 치부해왔거나, 혹은 입에 자주 올리기 껄끄러운 주제인 채로 그렇게 살아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화장실은 인류역사에 중요한 발전상이자, 여전히 인류에 중요한 현재진행형의 해결과제이다. 세계인구의 40%인 20억 명은 적절한 화장실이 없이 생활하고 있으며 그로인해 연간 200만 명 이상이 수인성질명으로 사망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도 해우재에서 습득한 새로운 지식의 일부이다. 흥미와 호기심으로 들어선 해우재를 나설 때면 화장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단상 몇 개쯤은 얻고 돌아간다. ‘가벼운 듯 하나 결코 가볍지 않은, 더러울지 모르나 더럽지 않은’ 화장실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이곳에 있다.


▲ 해우재 특별전시 ‘세기의 변기전’


사진= 진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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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간소개

관람시간: 10:00-17:00 (월요일 휴관)

☎ 031) 271-9777


* 관련링크

홈페이지: https://www.haewoojae.com


2018.05.16



경기 진윤지

[인문쟁이 3기]


진윤지는 경기도 수원에 살고 있고, 커다란 통창 너머 햇살이 품어주는 동네 도서관을 사랑한다.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세상이 정의로워지는 것에 깊은 열의을 갖고 있다. 세상의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아는 열정 가득한 휴머니스트를 꿈꾼다. 인문학을 벗삼아 인생에서 성찰의 거울을 게으름부리지 않고 말갛게 닦고 싶어서 인문쟁이에 지원하게 됐다. 누군가에게 세상에 대한 생각 한 조각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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