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능행과 보부상

남한산성 옛길


<길 위의 이야기>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 옛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스토리북입니다. 서울과 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도로 중 한 곳이었던 남한산성 옛길은 조선시대 왕의 행차길이자 떠돌이 보부상의 생계를 위한 길이었고,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올라오던 길이었습니다. <길 위의 이야기>는 남한산성 옛길에 새겨진 발자국을 따라 우리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왕들의 능행길, 민간의 상업루트



남한산성 옛길(봉화로)이 표기된 구한말 지도|자전곶교광주지략도|1885년



남한산성이 위치한 지금의 성남시, 광주시, 하남시는 옛날 조선시대 행정구 역으로 보면 모두 광주유수부의 관할지역이었습니다. 광주유수부는 남한산 성의 군사요충지적 특성 때문에 매우 중요한 행정중심지였습니다. 또 남한산성은 왕의 이동과 관련이 깊은 곳입니다. 조선시대의 왕들은 반드시 선대왕 들의 능에 성묘를 가야 했으며 왕들의 이런 성묘행사를 능행이라고 불렀습니다. 후대의 왕들이 영녕릉(英寧陵)에 참배를 하러 가려면 일 년에도 몇 차례씩 남한산성 옛길을 이용해 여주까지 가야했습니다. 남한산성 옛길의 또 다른 특징은 조선후기 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필요해진 내륙의 유통망으로 민간에서 이용했던 상업루트였다는 점입니다. 많은 보부상들이 바로 남한산성 옛 길을 통해 상업유통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이용된 남한산성 옛 길은 목적지인 경상북도 봉화의 이름을 따 통칭 봉화로라고 불렸습니다.



보부상과 장돌림 문화



보부상은 ‘봇짐과 등짐을 지고 이동하며 물건을 파는 장사치’라는 뜻입니다. 보상은 보자기에 물건을 싸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판매하는 장사치를 말하며 주로 여성들이 맡았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부상은 부피가 큰 옹기, 그릇, 죽제 품, 소금 등을 판매하였습니다. 보부상은 바로 주요 육상 간선도로망인 삼남로, 영남로, 의주로, 봉화로(남한산성 옛길) 등을 통해 상업유통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됩니다. 장시가 전국적으로 들어서게 되자 일정한 날짜에 열리는 장시를 돌며 상품판매를 하게 되고 이러한 방식은 이들에게 장시를 돌며 물건을 판매하는 장사치라는 의미로 ‘장돌뱅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계기가 됩니다. 상업이 점차 중요해지며 보부상들의 활동영역이 넓어지자 이들이 이동하는 길에는 수많은 주막들이 들어서기까지 합니다. 지금 보부상이라는 이름은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지명들과 5일 장의 ‘장돌림’ 문화는 여전히 새로운 이동 상인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문화입니다.



옛 삶의 흔적이 녹아든 옛길, 사라지는 삶의 흔적들



남한산성 옛길은 많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오가던 길, 물건을 이고 지고 장 터와 장터를 오가던 보부상, 장돌뱅이들의 애환이 서린 길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녹아 있는 옛길이지만 지금은 이 옛길들을 자동차에 내어주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수많은 사람이 직접 이동하며 쌓아온 삶의 흔적, 몇 천 년을 유지해왔을 서낭당과 장승에 대한 신앙이 사라져가고, 암행어사가 마패로 여행을 하고, 파발꾼이 말을 빌리며 외적의 침입에 긴급통신을 전하던 역참과 마방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의병들이 모여 외적을 물리치고 서울로 진공하던 기억이 잊혀지고, 이 길을 따라 피난을 가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던 그 기억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효율과 편의를 추구하는 사회변화를 역행할 수는 없겠지만 자동차에 내어주기 전에 수 천 년 동안 옛길 위에 쌓인 우리의 삶의 흔적을 남겨 놓을 필요는 있지 않을까요?

세부정보

  • 길 위의 이야기

    발행처/ 경기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발행일/ 2017년 11월

    총괄/ 이지훈(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센터장)

    기획 및 진행/ 채치용(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선임연구원) / 박다슬(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연구원)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누리집
http://www.ggcf.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