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숭렬전과 행궁 그리고 동종

남한산성의 볼거리2


<길 위의 이야기>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 옛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스토리북입니다. 서울과 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도로 중 한 곳이었던 남한산성 옛길은 조선시대 왕의 행차길이자 떠돌이 보부상의 생계를 위한 길이었고,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올라오던 길이었습니다. <길 위의 이야기>는 남한산성 옛길에 새겨진 발자국을 따라 우리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과 숭렬전


숭렬전



초기 남한산성 발굴에서 나온 유물의 고고학적인 분석을 통해 남한산성의 최초 축성연대가 삼국시대임이 밝혀졌습니다. 삼국시대 백제가 쌓았다는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남한산성 안에 백제 시조 온조왕의 사당 숭렬전이 있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남한산성 행궁에서 수어장대로 오르는 옛길을 따라가다 보면 초입을 조금 지나 수어장대와 숭렬전으로 가는 길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숭렬전은 1638년(인조 16년)에 지은 사당으로 온조왕 뿐만 아니라 남한산성 축성에 공이 큰 이서 장군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인조의 꿈에 온조왕이 나타나 인조의 인품과 성업을 칭찬하면서 혼자 있기가 쓸쓸하니 죽은 사람 중에서 명망 있는 신하를 같이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인조는 남한산성을 쌓은 공로자인 이서를 같이 모시게 했다고 합니다. 이서는 남한산성을 쌓을 당시 총책임자였고 병자호란 때 순직한 장군입니다.




임금님의 임시거처, 행궁



남한산성 행궁



행궁은 왕이 항상 기거하는 궁궐을 떠나 임시로 머무는 별궁입니다. 행궁제도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시행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여러가지 목적에 따라 많은 행궁이 건립되었습니다. 몇몇 행궁은 전쟁과 같은 위급한 상황을 대비하여 지어졌습니다. 강화행궁, 광주행궁, 양주행궁, 전주행궁이 그 예로, 이들은 왕이 전란을 피해 국정을 돌볼 수 있게 하고 선대 임금들의 영정과 왕실 일가를 보호하며, 왕실의 귀중한 물건과 문서들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남한산성의 광주행궁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여러 신하들과 함께 머물며 항전한 곳입니다. 임금의 이동은 질병 치료와 휴양을 위해서도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위해 온천이 있는 온양, 이천, 고성과 초수(椒水 : 냄새가 후추와 같고 씻으면 안질이 낫는다고 알려진 물)가 난다는 청주, 목천, 전의에 왕의 휴양을 위한 행궁이 건립되었습니다.




114년만에 제리를 찾은 장경사의 상징 동종



장경사 동종



장경사 대웅전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등록된 장경사 동종이 있습니다. 장경사 동종은 의병활동 및 남한산성 승영사찰과 관계있는 유서 깊은 문화재입니다. 의병들이 남한산성의 승영사찰들을 거점으로 이용한 이후 일제는 이 사찰들을 모두 불태우고 폭파해 버립니다. 10개의 사찰이 모두 파괴되던 와중에 다행히 장경사 만은 살아남게 되는데요. 장경사 동종은 바로 이 비극의 시기와 맞닿아 있는 문화재입니다. 1899년 장경사 동종은 일제에 의해 봉은사로 강제 이전되었고, 2013년이 되어서야 장경사로 돌아오게 됩니다. 장경사로 돌아온 동종은 2014년에 들어서야 겨우 문화재로 지정받게 됩니다. 무려 114년 만에 겨우 제자리를 찾은 동종은 이제 장경사에서 매일 아침저녁 예불시간이면 은은한 울림으로 중생을 깨우고 있습니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는 300여 년 전 그 종소리를 들으면서 나라를 지켜낸 스님들의 예불 소리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세부정보

  • 길 위의 이야기

    발행처/ 경기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발행일/ 2017년 11월

    총괄/ 이지훈(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센터장)

    기획 및 진행/ 채치용(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선임연구원) / 박다슬(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연구원)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자기소개
경기 문화예술의 모든 것, 경기문화재단
누리집
http://www.ggcf.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