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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메이커 운동


『문화정책』은 경기문화재단이 국내외 문화정책의 동향을 파악하고,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추진하는 다양한 문화정책의 방향과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2017년 여름부터 발행하고 있는 계간지입니다. 본문은 『문화정책』6권 논단 내용입니다.




정희

블로터앤미디어 메이크코리아팀 팀장

메이크 편집자 및 메이커 페어 서울 기획자




‘메이커’란 단어는 무슨 뜻일까. 어떤 사람들을 이렇게 부르는 걸까. 이제 주변에서 종종 듣게 되는 말이지만, 아직까지 평범하게 쓰인다고 할 수는 없다. 같이 들리는 내용과 묶어 생각하면 만드는 문화를 새롭게 정의하는 개념일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정도다. 메이커와 이들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메이커 관련 용어를 몇 개 정리해본다.




DIY 1인 자동차로 경주하는 '카트 어드벤쳐', 쉬운 프로젝트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메이커 페어 서울 2017>



메이커: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다. 기존의 발명가, 공예가, 예술가, 기술자, 취미로 DIY를 하는 사람들과 다른 점은 이들은 서로에게서 배우는 지식을 토대로 개인이 쓸 수 있는 기술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것이다. 지식의 공유 그리고 기술의 발달로 자연스럽게 나타난 ‘새로운 제작 인구’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메이커 운동: 스스로 필요에 따라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노하우를 공유하고 작업을 발전시키는 것을 하나의 문화적인 흐름으로 보아 이를 통칭하는 말이다. 초기에 「메이크:(Make:)」매거진을 창간한 데일 도허티, 테크숍(Techoshop)의 CEO 마크 해치, 3D 로보틱스의 창업자 크리스 앤더슨 등 영향력 있는 리더 몇몇이 온오프라인 매체로 이 문화를 빠르게 확장시켰고, 이제는 수많은 개인과 기업이 이 흐름을 이끌고 있다.

「메이크:」 매거진: 2005년에 미국에서 창간된 메이커의 이야기와 프로젝트 노하우를 싣는 매거진이다. 대부분 개인적 공간에서 진행되었던 만들기를 밖으로 끌어내 대중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하였다. 한국에서는 2011년 한국판이 창간되었다.

<메이커 페어(Maker Faire)>: 메이크 매거진 창간 후 2006년에 시작되었다. 매거진에 소개된 인물, 프로젝트를 모은 축제로 시작하였고, 지금은 전 세계 메이커들의 축제로 1년에 약 40여 개 국에서 200회 이상 진행된다. 한국에서는 <메이커 페어 서울>이 국내 최대 메이커 행사로 2012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메이커스페이스: 만드는 작업이 용이하도록 여러 작업도구(3D 프린터, CNC 머신, 레이저 커터 등 위주)를 갖춘 공간이다. 도구 목록보다는 해당 공간을 잘 활용하는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 추가 정보, 관련된 이야기들은 웹사이트에서 더 찾아볼 수 있다. make.co.kr


여기에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로의 메이커라는 용어는 2005년 「메이크:」 창간과 함께 등장했다(국내 인쇄물에서는 2011년 「메이크:」 한국판에서 첫 등장했다). 이제 쓰이기 시작한 지 13년이 되었고, 하나의 개념으로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지만 아직까지는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당시 「메이크:」의 발행인이었던 도허티가 주변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을 부르기 위해 사용한 말인데,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들을 지칭하기 위한 새로운 단어를 사용했다.


메이커라는 단어가 쓰이기 전부터,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태초부터 만든다는 행위는 자연스러웠다. 인간을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의 인간)’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내 손으로 만든다는 행위는 사실 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본능적인 것이다. 굳이 타인의 행동과 말에서 가져오지 않더라도 스스로 두 팔을 걷고 진행한 일들은 머릿속에 각인되고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새로운 단어로 수식해서 만든다는 개념을 다시 살펴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확실히 몇 십 년간 일상에서 만들기라는 것은 친숙하면서도 멀리 있었다. 누구에게나 만들기에 대한 욕구는 있다. 하지만 삶이 고도화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남이 해줄 수 있는 것 사이에서 흔히 말하는 가성비 균형이 잘 맞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아침을 먹기 위해 요리를 하는 것과 음식을 사는 선택지가 있다고 해보자. 어떤 때는 내가 요리하는 것보다 사 먹는 것이 훨씬 싸고 쉽고 만족스러운 방법일 수도 있다. 그리고 조금 범위를 넓히면, 이동할 때 차로 이동을 하거나 연락에 핸드폰을 사용하는 등 적당한 비용으로 누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재화가 있어서 내가 직접 만들고 구축하는 것이 선택지에서 애초부터 배제될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런 저울질 따위는 아랑곳 않고 그냥 해보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듯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동안 집에서, 창고에서, 작업실에서 꾸준히 만들기를 했던 사람들의 작업들이 하나둘 대중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대단하다면 대단할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 아무것도 아닌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만드는 사람들. 참 ‘아마추어 같은’ 사람들이었다. 아이스크림 막대를 모아서 카메라 리그(지지대)를 만들어서 비행 사진을 찍어보자고 생각한 사람, 현실도피 방법을 진지하게 고찰한 보고서,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던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MIT의 팹랩(Fab Lab) 등……. 진지한 메이커들의 활동은 이미 우리 옆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 윌리엄 깁슨




「메이크:」 매거진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메이커들과 그들의 작업을 지면을 활용해서 소개했다. 그리고 웹사이트를 통해서 실시간 프로젝트 업데이트를 하는 한편, 2006년에는 직접 만나서 만들기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는 <메이커 페어>라는 축제를 개최했다.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온오프라인에서 만들기 노하우를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전 세계적으로 확장시켰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민과 실행이 경계 없이 널리 퍼졌다. 이를테면 풀뿌리 기술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곧 백악관에서도, 그리고 미국을 벗어나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지에서도 메이커들의 크고 작은 모임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어딜 가든 만드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인 메이커스페이스, 해커스페이스, 도크봇 등을 방문하거나 메이커 페어에 참가하면 바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이면에는 기술의 발달로 개인 제작이 가능해진 환경, 오픈소스 지식의 확대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전자공학자가 아니라도 회로를 만들 수 있고, 시제품을 책상 위 기계에서 뽑을 수 있으며, 여러 포럼을 통해서 상당한 수준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이의 중심에는 개인적인 즐거움이 있다. 굳이 말로 꺼내지 않더라도 열심히 만들고 공유하는 메이커들의 표정에서는 ‘내가 만들었어’라는 순수한 자랑스러움이 은근히 배어 나온다.

이 사람들이 메이커 운동의 중심에 있다. 아마추어의 역할이 크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 즉 아마추어는 당장 필요한 만큼만 배워서 눈앞의 문제를 해결한다. 기술의 깊이는 이 시점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필요하면 나중에 다듬으면 되니까. 브라운관 TV의 다리가 부러졌다고 전근대식 공장을 다시 가동시킬 사람은 없을 것이다. 3D 인쇄로 다리를 새로 만들든 비슷한 높이로 책을 끼우든 문제를 해결하기만 하면 된다. 아마추어들은 인터넷 혹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서로 이야기하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갔고, 결과적으로 넓은 스펙트럼의 창의적이고 풍부한 프로젝트들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나온 다양한 프로젝트 중에 인기 있는 프로젝트는 대부분 간단하고 재미있는 프로젝트였다. LED 쓰로위(LED Throwie)라는 프로젝트는 LED 다리 사이에 배터리를 끼우고 양면테이프로 감아서 반짝이 모듈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이 모듈을 잔뜩 만들면 건물 벽에 빛으로 글씨를 쓴다거나 버스에 빛 폭탄을 던질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재미있는 표현 도구로서 여러 사람의 이목을 끌었는데, 만드는 방법을 만들기 노하우 공유 웹사이트인 인스트럭터블스(instructables.com)에 공유해서 여러 도시를 빛으로 채웠다.




<메이커 페어 서울 2017>



메이커 프로젝트는 다양한 수준으로, 풍부한 재미로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그런데 제작을 기본으로 한 이 흐름은 단순히 재미있는 데에서 그치지는 않았다. 2014년 <메이커 페어>가 백악관에서 열렸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오늘의 DIY가 내일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고 말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제조업이 약한 나라로 인지되어 왔는데 메이커 운동을 통해서 이를 부흥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는 미국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많은 나라에서는 국내에 제조 산업을 갖추기를 바란다. 그런데 아이디어가 제품화될 때까지를 개인 혹은 몇몇 사람이 관리할 수 있다면 국가 차원의 경제 시프트까지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메이커가 아이디어를 제품화하는 경우 해당 제품들은 메이커가 있는 나라에서 계속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으로 오픈소스 하드웨어인 아두이노(Arduino.cc) 보드도 개발자 마시모 밴지가 사는 이탈리아에서 제작된다. (메이커의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메이커스』(크리스 앤더슨 저)를 참고하자.)

여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메이커 운동은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초기의 모습에서 벗어나 너무 현학적이거나 상업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메이커라는 이름은 여전히 뜨거운 열정으로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부를 수 있는 이름이다. 물론 뭔가를 만든다는 행동 외에 별다른 자격이 없기 때문에 메이커 인구의 규모를 숫자로 추산하기는 어려운데, 메이커들의 축제인 메이커 페어의 참가자들을 통계적으로 살펴보면 메이커 운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작년 기준으로 <메이커 페어 서울>을 포함하여 전 세계에서 221개의 메이커 페어가 열렸고 총 관람자는 158만 명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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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정책』은 경기문화재단이 국내외 문화정책의 동향을 파악하고,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추진하는 다양한 문화정책의 방향과 내용을 소개하기 위해 2017년 여름부터 발행하고 있는 계간지입니다. 본문은 『문화정책』6권 논단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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