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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네 개의 문과 사찰

남한산성의 볼거리1


<길 위의 이야기>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 옛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스토리북입니다. 서울과 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도로 중 한 곳이었던 남한산성 옛길은 조선시대 왕의 행차길이자 떠돌이 보부상의 생계를 위한 길이었고,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올라오던 길이었습니다. <길 위의 이야기>는 남한산성 옛길에 새겨진 발자국을 따라 우리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위상이 다른 네 개의 문


남한산성 남문


남한산성에는 4개의 문이 있습니다. 한양의 4대문처럼 남한산성의 4개 문은 좌익문(左翼門 : 동문), 우익문(右翼門 : 서문), 지화문(至和門 : 남문), 전승문 (全勝門 : 북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한양 도성의 문 이름들과 비슷하지요? 가장 크고 넓은 문이 지화문입니다. 지화문은 좌익문과 함께 남한산성의 핵심 도로인 봉화로에 설치된 성문입니다. 왕의 행렬, 마차와 수레, 여러 장사치들과 주민들이 드나들었던 지화문은 남한산성 옛길을 따라 좌익문과 이어지게 됩니다. 이 길은 남한산성 옛길의 가장 핵심적인 루트입 니다. 남한산성 옛길은 산성 로터리를 중심으로 북문, 서문, 남문을 일주하는 노선을 따라 이루어져 있습니다.




남한산성 내의 기준점 로터리



남한산성 로터리



남한산성 안에는 핵심 간선도로망이었던 봉화로가 남문과 동문을 통해 이어져 있으며, 남한산성의 중심지에서 한양도성의 동쪽(현재 하남시)과 남쪽(송파, 마천)으로 바로 이어지는 중요 노선들이 한 점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남한산성 로터리입니다. 남한산성에서 동으로 몇 리, 남으로 몇 리 이렇게 거리를 측정하는 것도 바로 이 로터리를 기준으로 정하게 됩니다. 행궁의 바로 앞에 위치한 일종의 랜드마크와도 같아서 이곳을 왕래하는 주민들의 심리적 중심점 역할을 합니다. 남한산성 내에 위치한 마을이 산성리인데, 산성리 주민들은 로터리에서 위(북 또는 서)로 얼마를 가면 행궁이 있고 아래(동 또는 남)로 얼마를 가면 관아가 있고 방앗간이 있고 장터가 있다는 식으로 심리적 위치를 정하곤 합니다. 주민들 뿐만 아니라 남한산성을 찾는 많은 시민들은 지금도 남한산성 안에서 특정 지점을 말할 때 이 로터리를 기준 으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나라가 있고, 백성이 있어야 불교도 있다



남한산성 사찰의 실사와 위치도



남한산성에는 유독 사찰이 많습니다. 남한산성 내에 있는 사찰의 이름을 나열해 봅시다. ① 장경사 ② 망월사 ③ 동림사 ④ 옥정사 ⑤ 개원사 ⑥ 한흥사 ⑦ 남단사 ⑧ 천주사 ⑨ 국청사 ⑩ 영원사 등 무려 10개나 됩니다. 왜 이리 많은 사찰이 있는 것일까요? 호국불교의 성지라는 신앙적인 측면과 함께 절이 많았던 또 하나의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승군의 편성 때문이었습니다. 전 국토가 초토화되는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은 비로소 군사력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됩니다. 임진왜란 당시 스님들은 목탁 대신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을 들고 의병들과 함께 큰 활약을 했는데요, 임진왜란이 끝나고 인조는 1624년 남한산성을 축성하며 임진왜란 때 활약한 승병을 조직적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 결과 남한산성에 총 9개의 사찰(늦게 창건된 영원사 제외)이 들어서게 됩니다. 8도 승병들의 주둔지로 8개의 사찰이 배치되었고 총괄본부의 역할을 하는 사찰이 하나 추가되어 9개가 된 것입니다.


information

  • 길 위의 이야기

    발행처/ 경기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 /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발행일/ 2017년 11월

    총괄/ 이지훈(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센터장)

    기획 및 진행/ 채치용(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선임연구원) / 박다슬(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센터 연구원)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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