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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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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기형도문학관’


시인 기형도를 처음 접한 건 수능 문제집을 통해서였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열무 삼십 단을 무겁게 이고 시장을 나선 엄마. 그런 엄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써 내려간 시, <엄마걱정>



▲ 기형도 엄마 걱정


기형도, 그의 ‘청춘’을 기록하다



▲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위치한 ‘기형도 문학관’


쓸쓸하고 애잔하며, 우울하며 외로운…. 기형도의 시를 읽고 떠올렸던 이미지들이다. 내면 깊이 침잠된 어두움과 쓸쓸함. 그의 시에서 묻어나오는 슬픔과 외로움은 ‘겨울’이라는 계절과 참 많이도 닮았다. 그래서일까. 겨울이 되면, 유독 시인 기형도가 떠오른다. 『입 속의 검은 잎』을 권했던 친구의 손길도, 밑줄을 그었던 <빈집>과 <질투는 나의 힘>의 한 구절도, 모두 이 쓸쓸한 계절로 수렴한다.



▲ 시인 기형도와 그의 작품 빈집


푸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시인은 우리 가슴 속 영원한 ‘별’이 되었다. 그는 떠났지만 여전히 사랑받는 시인으로 존재하며,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역시 뜨거웠던 청춘의 흔적으로 남아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기형도 문학관’은 영원한 청춘으로 남은, 시인 기형도를 기억하는 공간이다.



▲ 기획전시 ‘사진으로 보는 기형도’


시인의 고향인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위치한 ‘기형도 문학관’은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거쳐, 청년기를 보냈던 시인의 발길 위에 존재한다. 시인이 걷던 거리와 눈길이 닿았던 ‘샛강’은 그의 작품 속 소재로, 또 ‘기형도 문학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함께 호흡한다. <엄마 걱정> 속 ‘열무 삼십 단’을 이고 갔던 광명시의 한 시장과 <안개>의 배경이 된 안개 낀 ‘샛강’은 시인의 집 근처였던 ‘안양천’이라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 기형도 문학관의 ‘상설전시실’


흰색과 파란색으로 꾸며진 ‘상설전시실’에 발걸음이 멈춰진다. ‘청춘’을 상징하는 그를 형상화한 공간을 바라보며, 생동하는 청춘을 느껴본다. ‘상설전시실’은 시인의 생애와 문학적 배경(유년의 윗목, 은백양의 숲, 저녁 정거장), 테마 공간(안개의 강, 빈집, 우리 곁의 시)으로 구성 돼 있으며, 시인의 가족이 기증한 유품 100점이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끈다.



▲ 시인의 가족이 기증한 유품


‘기형도 문학관’은 시인 기형도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 이야기들이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다. 시인의 유년기를 이야기하는 공간인 ‘유년의 윗목’. ‘왜 따뜻한 아랫목이 아닌, 윗목이었을까’라는 질문은 이윽고 쉽게 답을 찾기에 이른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와 홀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시장으로 향했던 어머니. 공장에 다니며 고된 삶을 경험하고, 불의의 사고로 생을 달리한 누나까지. 어린 나이에 경험한 지독한 가난과 죽음, 상처와 아픔은 그의 작품 곳곳에 새겨있다. 열무 삼십 단을 머리에 인 엄마에게서도, 자욱이 안개가 낀 ‘샛강’에서도 비극적인 정서는 우리의 감정 위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