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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권율장군 묘 權慄將軍 墓

경기도기념물 제2호





임진왜란의 명장인 충장공 권율忠莊公權慄(1537~1599)의 묘이다. 권율은 1582년(선조15)에 과거에 급제하고 예조좌랑·호조정랑 등의 벼슬을 거쳐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에 제수되어 바로 임지로 떠났다. 용인 싸움에서 관군이 패하자 광주에 가서 천여 명의 군병을 모집하여 이치梨峙 싸움에서 적을 대파시켜 호남을 지켰고, 그 공으로 전라감사로 승진하였다. 이어 함락된 도성의 수복을 위하여 북상하던 중 수원 독성산성禿城山城에 진지를 구축하고 왜병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면서 적의 서진西進을 막았다. 이후 서울과 보다 가까운 행주산성으로 진지를 옮겼다. 적장들은 이치싸움과 독성산성에서 치욕을 경험한 탓으로 전군을 총출동시켜 행주산성을 공격하였으나, 장군의 일사분란한 통솔력과 관군, 의·승병이 사력을 다해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것이 1593년(선조26) 2월에 있었던 행주대첩幸州大捷이다.


권율장군 묘 전경,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권율장군 묘,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대첩 후 장군은 전군을 지휘하는 도원수都元帥가 되었고, 임진왜란이 끝나자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그해 세상을 떠났다. 이에 조정朝廷에서는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영의정으로 관직을 추증追贈했고, 1604년(선조37)에는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으로 봉하였으며, 충장忠莊의 시호를 내렸다.


권율장군 묘 문인석(좌) 전면, 문인석(우) 후면,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묘역은 봉분이 3기로 장군의 묘 중심으로 좌우에 전前부인 정경부인貞敬夫人 창령조씨昌寧曹氏와 후後부인 정경부인 죽산박씨竹山朴氏와의 삼위합장묘三位合葬墓이다. 묘소에는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 묘비, 상석, 향로석이 각 1기, 동자석, 망주석, 양관조복형梁冠朝服形 문인석이 각 1쌍씩 설치되어 있다.

묘역 입구에 있는 신도비는 원래 신도비의 비문이 심하게 마모되어 후손들이 1861년(철종12)에 새로 건립한 것으로, 신흠申欽이 찬하고 이유원李裕元이 글씨와 전액篆額을 쓴 것이다. 1971년, 1999년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곡장曲墻과 호석護石 등이 새로 단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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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조선시대

    규모/ 1기

    / 묘비 1기, 상석 1기, 향로석 1기, 동자석 1쌍,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주소/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 산168-1

    지정일/ 1972.05.04

    소유자/ 안동권씨 종중

    관리자/ 이윤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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