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인공지능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까?

과학 분야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김재인 지음, 동아시아, 2017






인공지능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까?


감동근 -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






2016년 3월 13일, 나는 서울시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 마련된 TV 실황 중계석에 앉아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바로 위층에서는 이세돌 9단이 알파고를 힘겹게 상대하고 있었다. 전날까지 3연패를 당한 상황이었다. 1국에서는 이세돌 9단이 알파고의 수준을 테스트해보기 위해서 극초반에 괴초식을 펼쳤는데 알파고가 정확한 파훼법으로 응수하자 일찌감치 불리한 국면에 빠졌다. 이후 알파고가 뻔한 자리에서도 승부가 뒤집힐 정도는 아니지만 계속 조금씩 손해를 본 것이 독으로 작용했다. 2국에서 이세돌 9단은 무난하게 두면서 알파고의 실수만 받아먹어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과연 이세돌 9단은 딱히 눈에 띄는 실수를 하지 않았지만, 알파고는 종종 이상한 수를 뒀다. 방송 해설을 하던 프로 기사들은 종반까지도 이세돌 9단이 유리하다고 봤다. 그런데 막상 집을 세어보니 어느덧 알파고가 큰 차이로 이겨 있었다. 1국을 패했을 때보다 충격이 훨씬 컸다. 현대 바둑 이론으로도 계산이 어려운 직관에 의존하던 영역이 사실은 정밀한 계산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3국에서는 집 계산 대결로 가면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세돌 9단은 초반부터 서둘렀다. 무리한 싸움을 걸었으나 정확히 반격당하고 나니 그것으로 승부가 결정됐다.


드디어 4국, ‘집 바둑’으로는 안 되고 대마 싸움도 안 되니 이제 남은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먼저 실리를 잔뜩 챙겨 둔 다음에 상대의 진영에 깊숙이 침투해서 타개하는 것으로 승부하는 이른바 ‘조치훈 류’. 이세돌 9단은 단 세 판 만에 알파고의 약점을 간파해내고 정확히 찔러 들어갔다. 알파고의 학습 데이터에 들어 있지 않을, 즉 실전에 결코 등장한 적이 없었을 것 같은 낯선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78수가 떨어졌다. 이 수가 놓인 다음이라도 알파고가 제대로 응수했다면 여전히 어려운 바둑이었지만, 알파고는 ‘떡수’를 연발했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려냈다는 점에서 과연 '신의 한 수'라 불릴 만했다.


마지막 5국에서 이세돌 9단은 한 번 찾아낸 파훼법을 굳이 다시 사용하지 않고, 그저 최선의 바둑을 뒀을 때에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중반까지 유리한 국면을 만들었지만 인간이기에 한 순간 마음이 약해지면서 역전당했다. 그럼에도 일체의 변명을 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돌리는 챔피언의 품격을 보여줬다.


이 ‘세기의 대결’을 통해 전 국민이 인공지능의 위력에 대해 각성하게 됐다. 이세돌 9단의 패배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저 강력한 계산 능력에 의존해 무차별 탐색 기법으로 체스를 정복한 딥블루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인간의 직관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인공지능이 바로 그 직관을 흉내냄으로써 바둑을 정복한 것이다. 어쩌면 직관이라는 것은 인간지능의 강점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계산해 정확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원해야 했던 인간지능의 약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에는 가정용 컴퓨터에 설치된 프로그램도 프로 기사를 쉽게 이긴다. 이쯤 되니 바둑은 원래 계산 문제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계산 문제를 컴퓨터가 더 잘 푸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인간이 그동안 컴퓨터와 대등한 승부를 벌여왔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사실 바둑을 이기고 지는 것은 우리가 먹고사는 데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은 바둑하고는 상당히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를 둘러싼 자연환경과 사회의 모든 현상은 근본적으로 계산의 영역에 속하는 사안일까? 이들이 계산 가능한 문제라면 언젠가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또는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인공지능과 경쟁하고 협력하며 살아가야 할 시대에 매우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알파고 사건 이후에 대중 강연을 참 많이 했다. 인공지능에 대한 기술적인 질문에는 쉽게 답했지만, 대답하기가 참으로 난감한 질문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수첩에 따로 기록해뒀다. “바둑 인공지능이 더욱 발전한다면, 정말 바둑을 이해하면서 둘까?”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인과와 영속성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변화할까?” “뇌를 통해 마음에 접근할 수 있을까?” “초인공지능이 가능할까?” “인간의 고유성과 창조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한테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대부분의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당장 눈앞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이런 형이상학적인 질문에는 무관심하다. 이와 같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지레짐작과 임기응변으로만 때우기가 무안해서, 인공지능을 인문학적으로 다룬 책들을 샅샅이 뒤져본 적이 있다. 그러나 실망의 연속이었다. 인공지능에 대해 추상적이고 막연하게 다루기 일쑤였고, 실제 현장에서 연구 개발되는 인공지능과는 괴리가 컸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손꼽히는 책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망연자실하던 차에 김재인 박사의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를 발견했다.


수첩에 기록해둔 질문들에 대한 답이 전부 이 책에 있었다. “현실 속 인공지능을 모른 채 철학적으로 논한다는 건 기만이나 다름없다”는 저자의 당찬 포부가 과연 허세가 아니었다. 철학은 당대의 자연과학과 나란히 가야 한다는 소신으로, 저자는 컴퓨터 과학뿐만 아니라 물리학, 뇌과학, 진화생물학, 심리학 분야의 최신 연구를 섭렵했다. 이렇게 과학적으로 단단하게 다져진 토대 위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적 담론들을 풀어나가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철학이 삶의 문젯거리들을 대상으로 삼지만, 철학 용어들은 지나치게 현실 언어와 동떨어져 있다”며 철학과 일상적 삶의 괴리를 타파하고자 한 점도 마음에 쏙 들었다. 현학적인 표현 대신에 일상의 언어를 쓰려고 노력했고, 또 서울대의 인기 강의 ‘컴퓨터와 마음’을 풀어놓은 책답게 구어체로 쓰여 있어 깊이 있는 내용도 술술 읽혔다. 이 책이 영문판으로 번역 출간되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리라고 확신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전에 없던 명쾌한 해답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책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마스터 알고리즘』

페드로 도밍고스 지음, 강형진 옮김, 비즈니스북스, 2016


『지능의 탄생』

이대열 지음, 바다출판사, 2017


『로봇 시대, 인간의 일』

구본권 지음, 어크로스, 2015





감동근 - 아주대 전자공학과 교수


97년 KAIST 물리학과 재학 중 카스파로프와 딥블루의 대결을 보고 전자공학에 투신했다. KAIST 전자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07년부터 미국 IBM 연구소에서 퀴즈 인공지능 왓슨 개발에 참여했다. 2011년부터는 아주대에 근무하고 있다. 바둑 기력은 아마 5단으로서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을 해설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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