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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팔색조의 의미를 가진 사랑 소설

문학-고전-산문 분야 『구운몽』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운몽』

김만중 지음, 송성욱 옮김, 민음사, 2003






팔색조의 의미를 가진 사랑 소설


송성욱 - 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선시대 소설 가운데 작가가 밝혀진 작품은 별로 없다. 그것도 한문이 아니라 한글로 창작된 작품이라면 작가를 찾기 더 어렵다. 작가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정체를 밝히지 않고 창작된 작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글 소설이 창작의 가치가 없다고 인식되었거나 소설의 내용이 대놓고 읽을 수 없어서 밝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허균 역시 『홍길동전』을 창작할 때 버젓이 이름을 밝히고 창작하지 않았다. 실상은 택당 이식의 문집에『홍길동전』을 창작한 사람이 허균이라는 기록이 나와서 그가 작가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구운몽』은 『사씨남정기』와 더불어 서포 김만중이 이름을 숨기지 않고 창작한 소설이다. 한글로 소설을 쓰는 것이 사대부들이 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시대에 그것도 당대 최고의 사대부가 한글로 소설을 썼으니 사건이라면 사건이다.


김만중은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둘러싼 일련의 정치적 사건 한가운데 있었던 인물이었다. 장희빈 일파의 눈 밖에 나 유배를 가게 되자 홀로 남겨진 노모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유배지에서 이 소설을 창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창작한 소설이니 당연히 한문이 아니라 한글로 지어야 했다. 당시 여성은 한문보다는 한글이, 그것도 소설이라면 더더욱 한글 소설과 친했을 것이다. 또한 김만중은 당시 다른 지식인들과는 달리 소설을 무조건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역사책 『삼국지』보다 소설책 『삼국지연의』가 주는 감동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소설이 가지는 효용적 가치를 충분히 인식한 결과다. 따라서 그는 한글 소설 『구운몽』을 지어 어머니를 위로하는 한편 그가 지닌 사대부로서의 포부를 담아내려 했다.


『구운몽』은 잘 알려져 있듯이 성진이 꿈을 꾸고 깨어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성진은 초월적 세상에서 육관대사를 스승으로 삼아 불도를 닦는 스님이다. 성진이 육관대사의 심부름을 가다가 여덟 명의 선녀를 만나게 되는데, 이 만남 자체가 색욕을 다스리지 못한 죄라 하여 지상 세계로 적강하게 된다. 지상 세계로 적강하는 순간이 바로 성진이 꿈을 꾸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여덟 명의 선녀 역시 성진과 같은 죄목으로 인간 세상에 환생한다. 소설에서는 초월계가 현실이고 꿈속이 환상이다. 그런데 소설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정반대다. 꿈속이 지상 세계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이 되는 셈이다. 소설의 구조와 독자가 서 있는 현실의 구조가 반대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은 성진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 읽을 수도 있고, 양소유의 삶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성진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면, 당시 정치적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의 회한을 가졌던 김만중의 소회를 읽을 수 있으며, 양소유의 삶에 눈길을 돌린다면 사대부 남성으로의 포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모두 16회로 구별되어 있으며 회장체 소설의 형식을 띤다. 1회는 성진의 입몽(入夢)을 16회는 성진의 각몽(覺夢)을 주로 다루고 있고, 나머지 부분은 양소유의 화려한 삶의 행적을 담고 있다. 최고로 높은 관직에 오르고 아름다운 여덟 명의 부인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던 양소유는 어느 날 갑자기 그러한 삶이 무상하다고 느낀다. 깨달음을 얻은 후 성진이 꿈을 깨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성진의 입장에서 보자면 꿈속에서 누린 부귀공명과 여성과의 사랑 등이 모두 덧없는 일장춘몽이었던 셈이다. 성진의 이 깨달음을 두고 불교, 도교 등의 복잡한 이론을 내세운 학설이 다양하지만, 현실적 욕망에 대한 경계를 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또한 이러한 깨달음은 정치적 갈등에서 지칠 대로 지친 당시 김만중의 소회와도 충분히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대부분 양소유의 지상의 삶이 차지하고 있다. 16회 중 무려 14회 분량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양소유의 삶에 눈길이 더 많이 머물 수밖에 없다. 물론 성진이 꿈에서 깨어나 그 삶을 부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소유의 비중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구운몽』에서 양소유는 너무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결코 그 의미가 송두리째 부정될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


가난한 선비의 집에서 태어나 최고의 관직에 오르기까지 양소유는 별다른 정치적 갈등을 겪지 않는다. 그가 지닌 역량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다. 천상의 존재가 환생했으니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양소유의 삶은 모든 것이 여덟 선녀와의 만남과 연관되어 있다. 그가 겪는 임금과의 갈등도 난양공주 이소화와의 혼인을 둘러싼 갈등이고, 전쟁터에서의 위기도 여성 자객 섬요연과의 사랑 혹은 용왕의 딸 백능파와의 사랑으로 극복된다.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화려한 애정 행각을 벌인다.


양소유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조선시대 남성 사대부의 욕망 구조를 읽을 수 있다. 양소유가 2처 6첩을 거느린다는 표면적인 내용도 그렇지만 양소유는 자신이 좋아하거나 자신을 좋아하는 여성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모두 받아들인다. 당시 사회가 아무리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였다고 하지만 이런 양소유의 행위는 제어되지 않은 남성적 욕망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작품 속의 정경패가 거짓 귀신에게 홀린 양소유를 두고 “색이 굶주린 아귀와 같다”고 말한 대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물론 김만중은 이 책을 창작하면서 이러한 의미를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남성 사대부들에게 당연히 되었던 부분이 소설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구운몽』은 보는 각도에 따라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지닌 작품이다. 삶의 회한을 느낄 수 있는가 하면 더할 수 없이 화려한 삶의 여정을 맛보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의 문체를 따라 읽으면 김만중의 문장 품격을 만날 수도 있다. 두고두고 읽으면서 그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의미를 음미하게 되는 팔색조 같은 작품이다. 게다가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지은 소설이라고 하니, 이 소설의 어느 부분이 어머니를 위로할 수 있었을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사씨남정기』

김만중 지음, 류준경 옮김, 문학동네, 2014


『창선감의록』

작자 미상, 이지영 옮김, 문학동네, 2010


『옥루몽』 남영로 지음, 김풍기 옮김, 그린비, 2006






송성욱 - 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고전소설이 주 전공이며, 주요 저서로 󰡔한국 대하소설의 미학󰡕 『조선 시대 대하소설의 서사문법과 작가의식』 등이 있다. 역서로 『구운몽』 『춘향전』 『사씨남정기』 등이 있으며, 최근 논문으로 「고전소설의 이원적 구조와 TV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도깨비〉와의 비교를 중심으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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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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