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불멸의 청년, 영원한 모더니스트

문학-현대-산문 분야 『이상 소설 전집』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상 소설 전집

이상 지음, 권영민 엮음, 민음사, 2012








불멸의 청년, 영원한 모더니스트 


강유정 -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날개」),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실화」), “자네는 노옹일세. 무릎이 귀를 넘는 해골일세. 아니, 아니 자네는 자네의 먼 조상일세. 이상(以上)”(「종생기」) 이상의 소설은 멋진 에피그램, 잠언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이상이라는 작가를 통해 이 멋진 문장들을 얻게 되었다. 이 문장들 몇 개만으로도 우리 문학사에 김해경이라는 이름을 지녔던 작가 이상이 있었다는 것을 무척 다행으로 여기게 된다. 이 문장들 속에는 문학이라는 이름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담을 수 없는 역설과 모순, 패러독스와 아이러니가 있다. 그러니까,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먼저 패러독스를 문장으로 실천하고 가장 의욕적으로 아이러니를 구현한 작가, 그가 바로 이상이다.


이상은 모두 13편의 소설을 남겼다. 많지 않다 싶지만, 그가 1930년 스물한 살에 소설을 쓰기 시작해 1937년 스물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적은 숫자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흔히들 이상의 소설은 자전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만큼 자신의 생애와 밀접한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전적이라는 평가를 친절하고, 쉬운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그는 소설이 단순한 자기 기록과 어떻게 다른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방안으로 글쓰기를 선택한 듯이 보인다. 분명, 그의 소설에는 스스로를 지칭하는 ‘이상’이 자주 등장하고, 그와 교분을 나누었던 김유정이나 구본웅, 애인 금홍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소설 속 ‘이상’은 자연인 김해경이 아니다. 김해경과 이상의 자기 분리를 철저하게 실천했다는 점에서 이상의 소설은 현대 소설이 어떻게 우리 문학사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단숨에 설명해주는 계기가 된다. 이상이 지닌 모더니스트의 면모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간 청춘이자 그 청춘을 삐딱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한 모더니스트이기도 하다.


이상의 소설은 언제나 청춘의 사랑을 받는다. 그의 소설 자체가 청춘의 삐걱거림과 울렁거림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청춘을 지나지만 이상을 아는 청춘과 그렇지 않은 청춘의 간극은 클 수밖에 없다. 아마도 청춘 시절 이상을 알았다면 그는 문학의 한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울렁이는 현기증을 문장으로 담아낸 것, 그게 바로 이상의 문장이다. 청춘의 엔트로피가 고스란히 담긴 이상의 소설은 그래서인지 청춘을 가격한다. 그건 문학사적인 이해나 학문적 분석과는 좀 다른, 그냥 공감에 빠져버리는 마력과 닮았다. 이상과 교감한다면 청춘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상을 분석하기 시작한다면 바로 그 순간 우리의 청춘이 끝났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게 이상은 감각과 직관을 가격한다.


특히나 눈길을 끄는 것은 자멸과 자존감 사이의 진동이다. 이상의 소설 곳곳에는 ‘이상’이라는 인물이 출현하는데, 대부분 스스로를 낮잡아 보는 자괴감의 문체로 서술되어 있다. “나는 날마다 운명하였다. 나는 자던 잠을 깨이면 내 통절한 생애가 개시되는데 청춘이 여지없이 탕진되는 것은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웠지만 역력히 목도한다.”(「종생기」)와 같은 문장이나 “나는 리상이라는 한 우스운 사람을 안다.”(「지도의 암실」)과 같은 문장들이 그렇다. 소설 속 이상의 인물 ‘이상’은 늘 ‘외로된 사업’에 골몰 중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인을 다른 남자와 흔쾌히 공유하는 모습이나 그 여자가 남자와 사랑을 나눴던 장소들을 하나둘 씩 고변 받는 희극 속에 드리워진 이상은 안쓰럽고, 가련한 인물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듯 이상을 안쓰럽고 가련하게 그리는 존재가 바로 소설가 이상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현대소설에서 주인공이 더 이상 영웅이나 호걸이 아닌 안쓰럽고 가련한 인물, 그러니까 우리와 하등 다를 바 없이 평범하거나 오히려 그 이하의 인물임을 잘 알고 있던 작가였다. 그는 그 인식을 자신을 통해 형상화해낸 것이다.


이 자기 파괴적 모멸의 밑바탕에는 단단한 자기애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나르시시즘이 있다. 이상 문학 속의 나르시시즘과 자기 파괴적 에너지는 서로 상충하는 힘으로 균형을 이루고 묘한 문학적 역설적 힘을 만들어낸다. 이상의 문학을 즐긴다는 것은 그의 문장을 즐긴다는 것이고 그 문장의 묘미는 바로 이 어긋남과 삐걱거림 속에 있다.


역설과 냉소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바로 아이러니이다. 우리의 삶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깨달음, 단단한 자기애는 결국 깊은 자기 모멸과 동전의 한 짝이라는 사실, 사랑하는 여인을 공유하지만 그것이 비밀이 아닌 이상 자랑인 모순. 이 복잡다단한 감정과 사실 가운데서 이상의 소설은 지금껏 우리 문학 어느 곳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표정을 제공한다. 그것은 하루하루의 삶 속에 거의 박제되듯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 그 일상 속에 파묻힌 무의식적 공감대를 건드린다. 이상의 소설이 언제 읽어도 새롭고 혁명적인 것은 그가 살아 냈던 하루하루의 시간이 우리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현대성에서 비롯된다.


아내와 장지 하나로 방을 나누어 쓰는, 저 유명한 「날개」의 마지막 문장이 여전히, 현재의 잠언이 될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수면제 아달린과 은화, 커피와 기차역, 시계의 관계. 이 관계망은 2018년 여기,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낯선 숙제이다. 사라진 날개를 찾아 다시 한 번 비상해보고 싶은 욕망, 이러한 욕망을 갖지 않은 현대인은 없을 것이다. 이상은 그런 점에서 현대문학의 패러다임을 개척하고, 현대소설의 코드를 하나 개발했다. 여전히 이상의 코드는 유효하고 강렬하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이상 수필선집

이상 지음, 지식을만드는지식, 2017


이상 전집1: 시

이상 지음, 권영민 엮음, 태학사, 2013


이상연구

김윤식 지음, 문학사상사, 1987 







강유정 -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문학평론가·영화평론가·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05년 조선, 경향,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되며 생애 최고의 주목을 받았다. 고려대학교에서 학·석·박사를 마쳤고, 연구교수로도 지냈다. 민음사에서 〈세계의 문학〉편집위원으로 일했고, EBS 「시네마천국」, KBS 「박은영, 강유정의 무비부비」를 꽤 오래 진행했다. 현재는 경향신문에 기명칼럼인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를 연재 중이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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