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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언제나 같다

문학-현대-산문 분야 『한국단편문학선』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단편문학선』

김동인 외 지음, 이남호 엮음, 민음사, 1998





시작은 언제나 같다


강유정 - 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한국단편문학선에 실려 있는 소설들은 한 번 쯤 들어보았을 법한 작가와 그들의 작품들이다. 김동인, 김유정, 이효석과 같은 이름들, 한국인이라면 누가 모를까. 하지만 작가의 이름과 작품들을 조용히 들여다보면, 이 선집에 실려 있는 작품들 중에는 낯선 작가도 있고 들어보지 못한 작품도 있음을 알게 된다. 말하자면, 한국의 초기 현대 문학 작품들은 우리가 다 아는 것 같지만 엄밀히 말해 잘 모르는 작품들이 더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대개 한국의 초기 현대 단편소설들을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만났다. 하지만 문학 교육의 현실이 늘 그래왔듯이 작품의 전문이 실리는 경우가 드물고, 대개 어떤 부분이 생략된 채 실리는 경우도 많다. 특히 시험을 보기 위해 문학 작품을 읽는 경우가 많으니 전문 읽기보다는 요령껏 핵심을 파악하도록 훈련받고, 그러다 보니 재미를 잃는 경우가 다반사다. 무릇, 취향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조금은 금지된 상황에서 즐기는 데서 비롯되지 않던가?


그러다 보니 이름은 낯익은 것 같지만 막상 해당 작가의 작품 전체를 볼 기회는 흔치 않다. 훗날 취미 삼아 읽는 소설책이 1920~1930년대 현대 소설일 경우는 더욱 드물다.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그건 학창시절에나 읽는 숙제 같은 암묵적 합의가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분명 다 읽지는 않았지만 왠지 읽은 듯한 기시감도 한몫 거든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단편문학선』은 우리가 살면서 한 번 쯤 읽어야 하는 한국단편문학들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 실려 있는 단편 소설들은 1920~196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 발표된 것들이다. 발표순으로 엮인 책의 목록을 따라가자면 1925년 〈조선문단 제4호〉에 실린 「감자」에서 시작해 1965년 동명의 작품집으로 출간된 선우휘의 「반역」으로 끝난다. 책에 실린 32편의 단편 소설들은 가히 한국 문학의 초기 모형을 엿볼 수 있는 대표작들이라 할 만하다.


대개 최초의 현대 소설을 이광수의 『무정』이라 일컫는데, 이는 이광수라는 작가가 단지 새로운 소설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소설이라는 자의식을 가졌음을 주목한 평가이다.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새로운 인물, 새로운 사건, 새로운 문체에 대한 고민의 결과가 바로 『무정』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김동인의 소설 「감자」 역시 김동인이 자신의 소설이 지향하는 어떤 세계관을 고스란히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피도 눈물도 없이 돈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도 그렇지만 지켜보는 관찰자 시점의 서술자나 현대적인 서술어 역시 새롭다. 김동인, 현진건, 이광수 등이 활약했던 1920~1930년대는 가히 격동기라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여기에 실려 있는 소설들은 그 격동기의 삶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문학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예술가들의 흔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단편문학선』에 실려 있는 작가들은 그저 예술가에 멈추지 않고 일종의 실천가였으며 사회적 교사의 역할을 겸했다. 그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정치적 성향이나 행적이 문제시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세기 초 문학은 그저 한 인간의 예술적 지향만이 아니라 시대적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함께 보여주는 사회적 산물로 대접받았고 존경받았다. 여기에 실려 있는 소설들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다양한 당대의 작가적 고민을 보여준다. 최서해가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중요한 발언대로 소설을 생각했다면 이효석에게 소설은 현실에 억눌려 있는 초자아로부터 이탈해, 자연과 호흡하는 리비도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했다. 이태준의 소설에는 이제는 사라진 조선의 마지막 문사의 운치와 회한 그리고 달라진 세계를 힘껏 살아가고자 하는 운동가의 면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세기 초가 어떤 격동기였는지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1권과 2권은 선명히 나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달라진 세계관을 읽기에 적합하다. 1권의 소설 작품들이 일제 강점기 한국의 현실을 보여준다면 2권에 실린 작품들은 대개 한국 전쟁 시기 전과 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두 번의 커다란 트라우마가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일제의 강점과 한국 전쟁이었을 것이다. 2권에 실려 있는 소설들을 보노라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한국 전쟁의 상흔을 견뎌내고 이겨냈는지를 잘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전쟁의 시기로부터 조금 동떨어진 세대라기보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온몸으로 경험했던 세대들의 소설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각별하다.


눈길을 끄는 작품 중 2개가 바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인데, 박경리의 「불신시대」와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가 그렇다. 「불신시대」는 전쟁 중 남편을 잃고 갑자기 가장의 자리에 서게 된 한 여성의 생존기라 칭할 만하다. 박경리 작가의 전기적 사실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전쟁의 결과를 온몸으로 안고 살아가야 했던 시절의 기록을 읽노라면, 그 어떤 역사의 기록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선명하다.


한편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는 생존과 생계와 같은 문제가 절실했던 시절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와 문장을 써낸 감각적 도발을 경험할 수 있다. 테니스, 비누 냄새, 므슈와 같은 당대 일반적으로 향유하기 어려운 체험을 서사화함으로써 한국 소설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감성의 영역을 일궈 냈기 때문이다. 부모의 재혼으로 가족이 된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멜로 드라마적 구성이 어떤 점에서 전쟁과 그 폐허로 완전히 흑백이 된 현실에 생생한 색채감각을 선사했으리라는 것은 짐작 이상이다.


이렇듯 『한국단편문학선』에 실려 있는 소설들은 그저 목록만을 보자면 한 번쯤 보았을 법한 작품들이지만 발표되었던 당시의 상황과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훨씬 더 생생한 문학의 유산임을 알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끝은 알기 어렵지만 시작은 분명히 알 수 있다. 여기 『한국단편문학선』에 실린 작품들이 바로 한국 문학의 시작이다. 그 시작을 알기에 적합한 선집이 바로 『한국단편문학선』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창비 20세기 한국소설』

(전50권) 김동인 외 지음, 창비, 2005~2006


『문지클래식』(전6권)

김원일 외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8







강유정 -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문학평론가·영화평론가·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05년 조선, 경향,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되며 생애 최고의 주목을 받았다. 고려대학교에서 학·석·박사를 마쳤고, 연구교수로도 지냈다. 민음사에서 〈세계의 문학〉편집위원으로 일했고, EBS 「시네마천국」, KBS 「박은영, 강유정의 무비부비」를 꽤 오래 진행했다. 현재는 경향신문에 기명칼럼인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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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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