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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영창대군 묘 永昌大君 墓

경기도기념물 제75호





선조의 유일한 대군인 영창대군 이의永昌大君李㼁(1606~1614)의 묘이다. 영창대군은 선조와 인목왕후仁穆王(1584~1632)의 왕자로 6세인 1611년(광해군3)에 영창대군에 봉해졌다. 1613년 이이첨李爾瞻이 꾸민 계축옥사가 일어나는데 이 무옥誣獄으로 영창대군의 외가外家인 연흥부원군 김제남延興府院君金悌男을 비롯한 많은 인사가 처형되었다. 영창대군도 이들이 옹립하려고 했다는 거짓말로 인해 대군의 작위를 빼앗기고 강화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후 강화부사로 내려온 정항鄭沆에 의해 살해되었다. 1623년(인조1) 인조반정으로 영창대군은 복권되고, 비로소 예에 맞게 안장되었다. 이때 조영된 묘소는 광주 세촌면(성남시)에 있었으며, 1971년 현재의 위치로 이장했다. 시호는 소민昭愍이다.


영창대군 묘,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선조의 유일한 대군인 영창대군 이의永昌大君李㼁(1606~1614)의 묘이다. 영창대군은 선조와 인목왕후仁穆王(1584~1632)의 왕자로 6세인 1611년(광해군3)에 영창대군에 봉해졌다. 1613년 이이첨李爾瞻이 꾸민 계축옥사가 일어나는데 이 무옥誣獄으로 영창대군의 외가外家인 연흥부원군 김제남延興府院君金悌男을 비롯한 많은 인사가 처형되었다. 영창대군도 이들이 옹립하려고 했다는 거짓말로 인해 대군의 작위를 빼앗기고 강화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후 강화부사로 내려온 정항鄭沆에 의해 살해되었다. 1623년(인조1) 인조반정으로 영창대군은 복권되고, 비로소 예에 맞게 안장되었다. 이때 조영된 묘소는 광주 세촌면(성남시)에 있었으며, 1971년 현재의 위치로 이장했다. 시호는 소민昭愍이다.


영창대군 묘표,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봉분 앞에는 이수방부螭首方趺의 묘표(1625년 건립), 상석床石, 향로석이 있고 좌우로 동자석, 망주석, 문인석이 있다. 비좌에는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고, 비의 앞면에는 ‘영창대군증시소민공지묘永昌大君贈諡昭愍公之墓’라는 명문이 있다. 이러한 석물들은 1623년경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봉분의 호석護石과 신도비는 현대에 제작한 것이다. 1623년에 제작한 영창대군 묘지석은 최근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서 출토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묘지석의 글은 우의정 신흠申欽이 짓고, 6촌 김천령金千齡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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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조선시대

    규모/ 1기

    / 단분, 상석 1기, 향로석 1기, 묘비 2기(구·신), 동자석 1쌍, 문인석 1쌍, 망주석 1쌍

    주소/ 안성시 일죽면 고은리 산24-5

    지정일/ 1983.09.19

    소유자/ 전주이씨 안성시 종친회

    관리자/ 전주이씨 안성시 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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