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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신숙주선생 묘 申叔舟先生 墓

경기도기념물 제88호





정난공신 신숙주申叔舟(1417~1475)의 묘이다. 신숙주의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범옹泛翁, 호는 희현당希賢堂·보한재保閑齋이다. 1441년에는 집현전부수찬을 역임하였고 훈민정음을 창제하는데 성삼문과 함께 기여한 바가 컸다. 1452년 수양대군이 사은사로 명나라로 갈 때 동행하였으며, 계유정난 이후에 정난공신 2등이 되고 도승지에 올랐다. 이후 병조판서에 올라 국방과 외교를 관장하였고,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하면서 왜인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1462년에는 영의정에 올랐으나 잠시 사직하였다가 1467년에 다시 예조판서가 되었다. 예종 대에 수충보사병기정난익대공신輸忠保社炳幾定難翊戴功臣의 호를 받았다. 저서로는 성종 대에 『세조실록』, 『예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고, 『동국통감』, 『국조오례의』를 완성하였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신숙주선생 묘 전경, 2015 ©의정부시


신숙주의 묘는 의정부시 고산동 구성마을 뒤편 부용산 밑에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봉분은 군부인 윤씨와 쌍분이다. 묘역은 크게 3계階로 구분되어 있으며, 상계에는 봉분 2기과 묘표 1기, 중계에는 장명등 2기, 문인석 2기, 하계에는 무인석 2기를 배치하였다. 상석, 향로석은 현대에 제작한 것이고, 묘역 아래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신도비, 1971년에 건립한 신도비, 한글학회에서 1971년에 건립한 한글창제기념비가 있다.


신숙주선생 묘, 2015 ©의정부시


묘표는 두 봉분 사이에 1기를 배치하였다. 건립연도는 1897년(고종34)으로 후대에 추보한 것이다. 형태는 옥개방부형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용마루와 내림마루는 굵고 단순하게 나타냈으며, 대석에는 칸을 구획해 안상을 장식한 흔적이 남아있다.

장명등은 중계의 동서로 각 봉분 앞에 2기를 배치하였다. 형태는 팔각형인데, 사대부묘역에서는 드문 예이다. 개석은 규모가 큰 편인데, 상단은 원수圓首형이고 아래에는 하엽을 조각하였다. 처마의 곡선은 완만하고, 각 추녀마루는 얕게 양각하였다. 화창은 4면만 뚫려 있으며, 화창 내부에는 불을 지필 수 있는 등좌燈座가 있다. 화사석과 대석은 한돌로 조성되었다. 비교적 단순하게 조성되었지만, 15세기 후반 사대부 묘에 놓이는 대표적인 형태이다.

석인은 중계에 문인석을, 하계에는 무인석을 배치하여 마치 왕릉같은 구성이다. 문인석은 형태는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이고, 장대한 규모이다. 목이 가슴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둔중한 신체형태이고 사각기둥에 가까운 경직된 모습인데, 15세기 석인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얼굴은 타원형이나 눈썹과 둥근 눈의 윤곽을 깊게 선각하였으며, 입부분을 돌출시킨 기법은 15세기 석인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옷주름은 큰 소매를 따라 직선형으로 조각하였는데, 등간격으로 일정하고 얇게 양각하여 형식적이다.

무인석은 검을 짚고 있는 집검형執劍形이다. 옷은 갑옷이 아니라 허리 아래 주름이 잡힌 포袍를 입고 있으며, 모자는 정수리가 뾰족한 소모자를 쓰고 있다. 이러한 의복과 소모자는 갑옷이나 관복의 밑받침옷으로 입던 편복의 유형으로 15~16세기 사대부 묘 무인석상이나 시자석인상侍者石人像에서 보이는 형태이다. 신체는 원통형에 가까운 둔중한 기둥형태로 구성요소는 매우 얇게 양각하고, 세부는 단순화시켰다. 얼굴은 문인석상과 유사한 인상이며 큰 타원형의 눈 주위를 깊게 선각하여 강조하였고, 유난히 수염을 길게 조각하여 무인석의 기상을 표현하였다. 사대부 묘에서 매우 드물게 조성된 무인석으로 15세기의 전형적인 양식이고, 미술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석인상이다.


신숙주선생 신도비,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신도비는 묘역 하단 남동쪽에 위치하여 있는데, 정방형의 형태로 규모가 크고 당당하다. 비문은 마모되어 육안식별이 거의 어려운 상태이다. 건립연도는 1477년(성종8)이고, 비문은 청렴한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이승소李承召(1422~1484)가 찬하고 서예가로도 이름을 높였던 정난종鄭蘭宗(1433~1489)이 글을 썼다. 형태는 옥개방부형屋蓋方趺形으로 개석과 비신의 폭이 유사한 것이 특징이다. 비신과 옥개는 하나의 대리석으로 제작되었으며 대석은 화강암이다. 대석의 윗면에는 커다란 복련을 시원하게 배치하였고, 앞뒷면에는 안상문을 조각하였다. 이 신도비는 15세기를 대표할 수 있는 형태와 격식을 갖춘 희귀한 석물이다.

전체적으로 15세기 후반기의 묘제와 석물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쌍분의 묘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팔각장명등, 문·무인석, 정방형 사모의 신도비 등 특이하고 우수한 석물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인근의 홍달손洪達孫(1415~1472) 묘역의 배치와 석물 구성이 유사하여 주목되며, 당대 명문세가의 명성만큼이나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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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시대/ 조선시대

    규모/ 1기

    / 쌍분, 묘비 1기, 상석 2기, 향로석 2기, 장명등 2기, 문인석 1쌍, 무인석 1쌍, 신도비 2기(구·신)

    주소/ 의정부시 고산동 산53-7

    지정일 / 1985.09.20

    소유자/ 사유

    관리자 / 고령신씨 종중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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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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