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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원시 벽화에서 포스트모던까지 예술의 본질을 쫓다

문화 분야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 지음, 휴머니스트, 2014









원시 벽화에서 포스트모던까지 예술의 본질을 쫓다


안광복 - 중동고 철학교사





예술은 ‘고급 취향’이었다. 악기를 익히거나 붓을 손에 익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탓이다. 게다가 돈도 적잖이 들곤 한다. 필요한 교습을 받고, 쓸 만한 악기나 물품을 구하는 데 금전 지출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컴퓨터의 발달은 예술에 들어가던 품을 크게 줄여 놓았다. 컴퓨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쓰면 초현실주의 화가처럼 폼 나게 사물을 비틀어 표현할 수 있고, 악기를 전혀 모른다 해도 음악 편집 앱으로 멋진 비트를 넣어 작곡하며 연주할 수도 있다. 그만큼 예술 창작과 감상이 ‘대중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의 사회는 점점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예술과 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제는 시민의 감성을 제대로 고양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예술을 이해하는 눈이 없다면, 식욕, 성욕, 수면욕 같은 낮은 수준의 욕구에 휘둘리는 삶을 꾸려갈 터다. 이런 처지의 사람들이 대부분인 사회는 본능에 충실한 저급한 문화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시민 또한 ‘생각 없는 문화 소비자’ 정도에서 머무를 터다. 반면, 미적 감수성을 튼실하게 갖춘 시민은 예술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뿐더러 문화 생산자로서 시대를 이끌기도 한다.


이 점에서 아름다움의 본질을 탐색하는 미학(美學)은 우리 시대에 매우 필요한 학문이다. 감상자의 수동적인 처지에서 벗어나 미에 대해 성찰하며 나름의 가치관을 세우도록 하기 때문이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는 1994년에 나왔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새 책은 유행이 지난 다음에 읽는다”는 벤야민의 말을 소개한다. 진정 가치 있는 책은 세월의 검증을 거치며 ‘고전’으로 인정받는다는 뜻이리라. 이 책도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좋은 책이다. 20여 년 동안 꾸준히 읽혔을뿐더러, 예술에 대한 풍부한 소개와 더불어 혜안과 통찰을 안기는 깊은 이야기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책에는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서부터 포스트모던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아름다움에 대한 탐색이 섬세하게 담겨 있다.


책의 내용을 따라 가보자. 원시 시대 벽화는 매우 사실적이다. 왜 그럴까? ‘사냥꾼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그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들소나 양 같은 사냥감을 동굴 벽에 그린 후 창과 돌을 던졌다. 그림은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한 주술 행위였던 셈이다. 원시인들은 사냥감들의 급소와 움직일 때 주로 쓰는 근육 등에 대한 정보를 그림에 충실히 담았다. 게다가 사냥하는 ‘시늉’은 정말로 동물을 쫓게 될 때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기도 했다. 예술의 출발은 아름다움보다는 ‘실용’과 ‘기술’에 방점이 있었다.


이러한 생각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까지 이어진 듯싶다. 그리스인들은 예술을 “테크네(teche), 곧 합리적 규칙에 따른 활동”으로 여겼다. 따라서 당시에는 회화, 조각뿐 아니라 의자나 침대를 만드는 수공 활동과 학문까지도 예술로 여겼다. 당연히, 고대 그리스의 조각들은 인체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 견주면, 서양 중세의 회화들은 사실성 면에서 조악하기 그지없다. 중세의 미술 수준이 고대 그리스보다 못하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예술은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기독교 세계관에 충실했던 중세인들은 덧없는 일상보다는 영원한 본질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들은 죽으면 스러지고 말 신체를 세밀히 묘사하기보다는 변하지 않는 상징을 통해 신적인 가치를 구현하려고 했다. 우리 눈에 어떻게 보이건, 영원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사물은 항상 똑같다. 성화(聖畫)인 이콘(icon)이 항상 똑같은 표정에 비슷한 구도로 되어 있는 것도, 대상을 그릴 때 원근법을 무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학의 세계관이 지배한 근대에 와서는 또다시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묘사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 그러나 카메라가 등장하자 미술은 사실을 모사(模寫)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벗어났다. 예술의 가치가 독창적인 느낌의 표현으로 옮겨진다. 나아가, 예술에서 사실적 묘사가 사라지고 독창성이 강조되면 될수록 해석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예컨대, 뒤샹의 ‘샘(Fountain)’은 그 자체로는 눕혀 놓은 변기일 뿐이다. 그러나 비평가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변기는 그 가치를 가늠하기조차 힘든 예술 작품으로 거듭났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미술은 이제 어디로 나아갈까? 필요한 고급 기술을 갖추었는지, 얼마만큼의 공력을 들였는지는 더 이상 훌륭한 예술을 가늠하는 잣대가 못 된다.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통조림」은 슈퍼마켓에 흔하던 캠벨 통조림을 그대로 그렸을 뿐이다. 폰타나의 「공간개념, 기대」도 캠퍼스 가운데를 칼로 길게 찢어놓았을 뿐이다. 이것이 예술인 까닭은, 그것도 무척 고가의 미술품인 까닭은 무엇일까?


해석의 중요성은 예술 세계에서만 강조되는 게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해석은 이미 현실을 잡아먹고 있다. 언론 매체를 통해 현실을 접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매체가 어떻게 사실을 ‘해석’하여 알렸는지에 따라 사안의 중요성이 다르게 다가온다. 더 나아가 이제는 가짜가 진짜보다 훨씬 더 중요해지기까지 한다. 인터넷 게임 아이템을 얻기 위해 현실에서 강도 짓을 하는 일은 더 이상 우리에게 희한한 사건이 아니다. 원본이 사라지고 가짜와 복제가 판을 치는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시대,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이렇듯 ‘미학 오디세이’가 펼치는 장대한 탐색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독자는 예술을 넘어 세상과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에 빠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진중권의 미학오디세이』는 ‘문사철(文史哲)’의 깊은 세계로 이끄는 데 손색이 없는 안내자라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결코 무겁지 않다. 장(章)마다 제시되는 에셔와 마그리트의 수수께끼 그림들, 젊은 시절 진중권 특유의 재기발랄함을 좇다 보면 ‘책을 읽는다’는 표현보다는 ‘보고 즐긴다’는 말이 더 어울릴 듯싶다. 가벼운 서술로 깊고 넓은 성찰을 이끈다. 이 책이 20년이 넘게 시민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며 고전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예술 수업』

오종우 지음, 어크로스, 2015


『이미지와 환상』

대니얼 J. 부어스틴 지음, 정태철 옮김, 사계절, 2004


『칸트 미학』

크리스티안 헬무트 벤첼 지음, 박배형 옮김, 그린비, 2012 







안광복 - 중동고 철학교사


『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 『철학 역사를 만나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 등 십 수 권의 철학 교양서를 낸 인문 필자다. 대한민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이 십여 년 간 서울 중동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며 대중을 위한 강연과 글쓰기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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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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