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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사상의 은사와 의식화의 원흉 사이에서

사회 분야 『대화』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화』

리영희 지음, 임헌영 대담, 한길사, 2005







사상의 은사와 의식화의 원흉 사이에서


윤석윤 - 숭례문학당 강사






평전이나 자서전은 대개 역사적으로 업적을 남긴 인물들에 대한 삶의 기록이다. 그들의 기록은 개인사를 넘어서 시대와 역사 앞에 귀감이 될 수 있는 저작이다. 평전의 경우는 주인공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연구자나 평전 작가에 의해서 저술된다. 기록과 자료, 주변 인물에 대한 인터뷰, 주인공이 남겨 놓은 글이나 저작물을 활용한다. 자서전은 저자가 직접 쓰거나, 전기 작가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평전은 자서전에 비해 주인공에 대한 평가가 비교적 객관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서전은 주인공의 주관적인 시각과 평가로 독자가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언론인과 대학교수, 사회비평가와 국제문제 전문가로 활동했던 리영희의 『대화』는 어떨까? 자서전이지만 이 책의 출간 배경은 남다르다. 많은 사람과 출판사에서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사상의 편력’을 기록으로 남기자고 요청했지만 거절했다. 자신의 시대적 역할은 이미 끝났고 소리 없는 존재로서의 삶을 만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 70세에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다. 정신과 몸에 마비가 왔고, 모든 일이 불가능해졌다. 4년 후 다행히 신체와 정신이 일부 회복되면서 마음을 바꾸었다.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답하라는 뜻으로 해석했다. 손은 마비로 글 쓰는 게 어렵지만 입으로 말하는 것은 가능했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이 대담자로 참여했다. 그는 저자와 오랫동안 좋은 인연이었고, 자서전의 내용을 좋은 질문으로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어떻게 기자가 되었을까? 배경이 재미있다. 1950년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중학교 영어교사를 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유엔군 통역 장교로 입대하여 7년 동안 전방 전투 지역과 후방 부대에서 근무했다. 소령으로 예편하기 직전 부산 집 화장실에서 우연히 신문에 난 기자 모집 광고를 보았다. 합동통신사 외신부 기자였다. 언론사 최초의 공채 시험으로 273명이 지원하여 5명이 합격했다. 그는 합격자 5명 중 5등이었다. 다른 네 명은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 출신이었다. 그가 합격한 이유는 탁월한 영어 실력 때문이었다. 면접에서 시험관들이 그의 대답을 제대로 못 알아들을 정도로 영어가 유창했다고 한다. 게다가 프랑스어도 할 줄 알았다. 중국어 실력도 있어서 나중에 국제문제 전문가로서의 밑거름이 되었다.


리영희는 한국 언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저널리스트다. 격동의 현대사를 직접 체험한 증인으로 독재 권력에 맞서 예리한 필봉을 휘두른 우상 파괴자였다. 기자가 된 후 진실을 밝히는 저널리스트를 천직으로 삼았다. 그가 작성한 특종 기사를 보면 얼마나 철저한 기자였는지 알 수 있다. 1961년 5·16쿠데타를 성공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수행 기자로 함께했다. 국무부 관리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한미협정의 내용을 파악하여 특종을 했다. 미국 정부가 5·16 세력을 인정해주는 조건으로 ‘민정이양’과 ‘한일협정’을 빨리하라는 내용이었다. 이것 때문에 수행 취재에서 배제당하고 중도 귀국을 하게 된다.


1964년 한일회담으로 특종을 했다. 일본이 한국에 배상해야 하는데 현금 상환과 개인에 대한 상환을 배제한 것이다.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오히라 외상과의 비밀 합의 내용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규정된 일본의 의무를 임의적으로 면제한 것이다.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일본이 점령 통치했던 베트남, 미얀마, 필리핀은 일본에 재산청구권을 요구해서 모두 배상을 받았는데 말이다. 불의한 정권이 행한 잘못된 대표적인 외교 사례다. 또 다른 특종은 알제리에서 개최된 제2차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 대한 기사다. 남북한 대표를 초대하여, 남북한의 동시 유엔 가입 가능성을 토의하자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최초의 반공법 위반 필화 사건이 되었다.


언론인이자 지식인으로서 그의 수난은 이후에 계속 이어진다. 1969년 베트남전쟁과 국군 파병에 대한 비판적 기사 때문에 조선일보에서 강제 퇴직된다. 합동통신사 외신부장으로 일하면서 군부독재·학원탄압 반대 ‘64인 지식인 선언’에 참여하여 강제 해직된다. 그 후 1972년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조교수가 되어 학자의 길을 걷는다. 그가 저술한 『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 『8억 인과의 대화』의 내용이 빌미가 되어 반공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복역한다. 이후 1980년에는 ‘광주소요 배후 주동자’ 중 한 사람으로 또 구속된다. 30대 중반부터 60대 초반까지 독재 권력에 의해 아홉 번의 연행, 다섯 번의 기소 또는 기소유예, 세 번의 징역을 살았다.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나의 삶을 이끌어준 근본이념은 ‘자유(自由)’와 ‘책임(責任)’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棄權)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背信)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리영희는 고난과 시련에 맞서며 지사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의식’이 없으면 그 지식은 죽은 지식”이라고 말한다. 기자로서 강제 퇴직도 여러 차례, 교수로서 강제 해직 몇 사면·복권과 복직이 되풀이되었다. 그의 삶 속에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그는 거짓과 허위로 가득한 어둠의 시대를 진실과 이성의 빛으로 밝게 비추었다. 그는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지 않고 거짓에 도전했다. “자유는 형벌이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자유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마다하지 않았다. 많은 청년·학생·지식인들이 그를 ‘사상의 은사’라고 불렀지만 독재 권력은 ‘의식화의 원흉’이라 불렀다. 그의 저서가 민주화운동의 교과서였다.


자서전의 절반은 저자의 개인사이고, 나머지 절반은 그의 사상적 담론을 담고 있다. 국내 상황과 시대정신, 20세기 인류사적 격동의 의미와 가치를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자서전의 제목을 『대화-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이라고 한 이유다. 저자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였는지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많은 책들, 외국의 신문과 자료를 읽고, 다른 나라의 비밀 정보들을 검색하여 기사를 쓰고 책을 저술했다. 저자는 글쓰기에 있어서 중국 작가 루쉰을 모델로 삼았다. “글 쓰는 기법, 문장의 아름다움, 속에서 타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때로는 정공법으로, 때로는 비유·은유·풍자·해학·익살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세련된 문장 작법을 그에게서 많이 배웠지요.” 저자는 ‘기자 리영희, 언론인 리영희, 지식인 리영희’로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책세상, 2018


『역사란 무엇인가』

에드워드 H. 카 지음, 김승일 옮김, 범우사, 1996


『괴테와의 대화』(전2권)

요한 페터 에커만 지음, 장희창 옮김, 민음사, 2008






윤석윤 - 숭례문학당 강사


대학과 대학원에서 교육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여러 회사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50대 중반에 독서공동체 숭례문학당에서 독서와 토론, 글쓰기를 공부하면서 ‘화려한 노후’ 준비를 마쳤다. 현재 문화센터와 도서관, 학교와 대학, 교육청에서 시민과 학생, 사서와 교사들에게 독서법과 독서토론,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동안 몇 권의 책을 공저했다. 『이젠, 함께 읽기다』『책으로 다시 살다』『당신은 가고 나는 여기』『은퇴자의 공부법』『아빠, 행복해?』 등이다.


information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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