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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인평대군 묘 및 신도비 麟坪大君 墓 및 神道碑

경기도기념물 제130호





조선 인조와 인열왕후仁烈王后의 3남인 인평대군 이요麟坪大君李㴭(1622~1658)의 묘와 신도비이다. 인평대군은 1629년(인조7) 대군에 봉해졌으며, 1634년(인조12) 관찰사 오단吳端의 딸 복천부부인福川府夫人 동복오씨同福吳氏(1622~1658)와 혼인했다. 병자호란 이후 큰형인 소현세자昭顯世子와 함께 청나라 심양瀋陽에 볼모로 보내졌으며, 공물貢物의 양을 줄이는 등의 정치적 활동을 했다.

인평대군은 인조의 명으로 능창대군綾昌大君의 후사가 되었으며, 생전에 미리 자신의 묘자리를 정하고 석물을 갖추어 놓았는데 그 묘자리가 광주 능창대군 묘 곁이었다. 1693년(숙종19) 8월에 인평대군과 부부인의 묘소를 포천의 현재 위치로 이장하고, 신도비는 1694년(숙종20)에 옮겼다.


인평대군 묘,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인평대군의 묘소는 호석護石을 두른 봉분 주위에 곡장曲墻을 둘렀으며, 묘표(1658년 건립)와 혼유석·상석·향로석을 차례로 설치했다. 상석 앞에는 장명등, 좌우에는 동자석과 망주석, 문인석을 건립해 놓았다. 서쪽 문인석과 망주석 앞에는 주준석酒樽石으로 추정되는 석물도 배치되어 있으며, 동쪽 곡장 밖에는 비신 없는 귀부龜趺도 있다.


인평대군 신도비,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묘역 남동쪽에 어제비御製碑가 비각碑閣안에 설치되어 있으며, 신도비는 봉분의 정남향에 위치하고 있다. 이수귀부螭首龜趺 형태의 신도비는 효종의 명으로 1658년에 건립되었으며, 비문은 영의정 이경석李景奭이 짓고, 처백부妻伯父 좌참찬 오준吳竣이 썼으며, 처백씨妻伯氏 이조참판 오정일吳挺一이 전자篆字를 썼다. 신도비의 뒷면에는 1659년(현종1)에 조각한 복천부부인의 신도비 음기陰記가 있다. 비문은 효종의 명으로 이경석이 찬했으며, 오정일이 쓰고, 둘째 아들인 복창군 이정福昌君李楨이 전액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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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조선시대

    규모/ 일원

    / 단분, 묘비 1기, 상석 1기, 향로석 1기, 동자석 1쌍, 장명등 1기,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호석, 신도비 1기

    / 신도비 높이 325cm

    재질/ 석재(화강암)

    주소/ 포천시 신북면 신평리 산46-1

    지정일/ 1992.06.05

    소유자/ 전주이씨 인평대군파 종중종회

    관리자/ 전주이씨 인평대군파 종중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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