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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우리 민족의 얼을 바로 세워주는 큰 스승의 웅혼한 외침

인문 분야 『뜻으로 본 한국역사』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함석헌 지음, 한길사, 2003






우리 민족의 얼을 바로 세워주는 큰 스승의 웅혼한 외침


이원석 - 문화연구자






한국에 큰 스승이 없다고들 말한다. 어떤 뜻인지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결코 정확한 평가는 아니다. 선생(先生)은 우리에게 살아갈 모범을 보여주고 나아갈 목표를 알려주는 이다. 제자는 그저 선생의 삶과 가르침을 따라가야 할 뿐이다. 또한 큰 스승이라고 하면, 한 국가의 역사를 궁구(窮究)하고, 나아갈 방향을 조명해주어 민족의 혼을 새롭게 규정하는 이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성직자이자 교육자인 그룬트비가 덴마크의 정신적 기초를 바로 세웠듯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큰 스승은 바로 함석헌 선생이다.


한국의 근대사 속에서 함석헌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를 기억하는 세대가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게다. 하지만 지금에라도 그를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수많은 업적을 제하더라도 그의 초기 저작인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한 권만이라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는 〈성서조선〉 1934년 1월호부터 1935년 12월호에 실었던 원고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근간으로 1950년에 출판한 단행본이다. 〈성서조선〉은 무교회주의자 김교신이 주도적으로 펴낸 잡지다. 1927년에 창간되어 엄혹한 일제시대에 적은 수에게나마 정신적 자양분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 1942년에 158호 권두언이 독립정신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폐간되었다.


〈성서조선〉에 실린 원고는 1933년 12월 31일부터 1934년 1월 4일까지 한 주에 걸쳐서 조선 역사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되었다. 이 강연을 원고로 풀어낸 과정을 함석헌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성서조선 동기(冬期) 집회에서 한 주일 동안에 한 말을 두 해에 걸쳐 매달 나오는 〈성서조선〉 잡지에 실을 때에는 학교 시간에 교수를 하는 이외에는 이것이 나의 주된 일이었다. 지도교수가 있는 대학도 아니지 도서관도 참고서도 없는 시골인 오산이지, 자료라고는 중등학교 교과서와 보통 돌아다니는 몇 권의 참고서를 가지고 나는 내 머리와 가슴과 씨름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파리한 염소 모양으로 나는 씹는 것이 일이었다. 지푸라기 같은, 다 뜯어먹고 남은 생선 뼈다귀 같은, 일본 사람이 쓴 꼬부려댄 모욕적인, 또 우리나라 사람이 쓴, 과장된 사실의 나열을 나는 씹고 또 씹어 거기서 새끼를 먹일 수 있는 젖을 내보자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제 읽어도 가슴을 울리는 대목이다. 이런 애국의 마음으로 쓴 글이 발단이 되어 그는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성서조선〉는 당연히 압수당했다. 그러다 해방 후에 우리 언어와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마침내 책으로 묶이게 된 것이다. 하나 곧이어 일어난 6·25전쟁으로 이 책은 다시금 불쏘시개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이 책은 독립 후 우리 민족의 심리적 공백을 파고들었다. 많은 이가 찾았기에 결국 1961년에 다시 펴내기에 이렀다. 이때에 주목할 점은 드디어 우리가 아는 제목으로 바꾼 것이다. 서울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해방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그의 시야가 놀랍게 확장되었던 탓이다. 그는 원고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체에 걸쳐 크게 수정을 하여 모든 교파주의적인 것, 독단적인 것을 없애버리고 책이름도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고 고쳤다.”


더욱 주목할 부분은 이렇듯 확장된 시야에도 불구하고 책의 근본적인 역사철학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1965년에 삼중당 판으로 새로 낼 때에 그가 부친 서문은 그런 의미에서 흥미롭다. 당시 6·22 한일 기본조약에 대하여 온 국민이 들고일어나던 상황에 그도 휘말리게 되었고, 그런 이유로 새로 써 주기로 한 원고는 계속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쓰면 불과 몇 페이지면 될 줄 뻔히 아는 것이지만 쓸 수가 없었다. 나도 까닭을 모른다. 그렇다, 고난의 까닭을 알 사람이 없다. 여러 날 후에야 가슴속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고난의 역사는 고난의 말로 써라.’ 나는 이제야 비로소 역사적 현재의 쓴 맛을 알았다.”


1961년 역사철학을 구체화하여 논하였으나, 함석헌은 이미 처음부터 우리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로 규정하였다. 아마도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십자가」, 윤동주)를 믿고 따르는 기독교인이었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생각하면 우리는 고생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나온 사람 같다. 4천 년이 넘는 역사에 우리는 이제껏 태평성대라는 것을 모른다.” 그는 애초에 인류 역사 자체가 고난라고 말한다. 그가 진정으로 주목하는 것은 고난의 의미이다. 그는 고난에는 뜻이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고난은 죄를 씻고, 삶을 깊고 위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난의 역사는 곧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커다란 사명을 의미한다. 고난의 짐을 지라고 부름을 받았다는 의미는 단단한 껍질 안에 숨어 있는 진리의 열매를 드러내라는 사명을 받았다는 뜻이다. 고난에 무릎 꿇지 말고 분연히 일어나 정의와 사랑의 진리를 드러내라는 뜻이다.


“이것(우리가 인류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은 세계의 하수구요, 공창(公娼)인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중략) 그러므로 한국·인도·유대·흑인 이들이 그 덮어 누르는 불의의 고난에서 이기고 나와서, 제 노릇을 하면 인류는 구원을 얻는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이 세계는 (불의의 결과로 닥칠) 운명이 결정된 것이다.”


이런 고성(高聲)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 국가의 역사를 궁구하고, 나아갈 방향을 조명해주어 민족의 혼을 새롭게 규정하는” 큰 스승의 큰 안목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강고한 기독교적 안목이 담긴 조선사 서적으로 출발했으나, 30여 년 후에는 세계 시민의 넓은 시야가 배어있는 역사철학서로 쇄신되었다. 에드워드 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내놓은 유명한 정의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에 비추어 보면, 그의 웅변이 좀 더 가깝게 다가올 것이다.


물론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역사서로서나 역사철학서로 아쉬운 대목이 없지 않다. 역사서로서의 아쉬움은 그가 전문적인 사학자가 아닌데다,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던 데 기인한다. 하나 역사철학서로서 보여주는 웅혼한 시야에 대해서도 조금은 비판적으로 살펴볼 여지가 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단선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어야 할뿐더러 우리 역사나 우리 민족에 대한 이해 모두 급변하는 상황에 맞춰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딛고 가야 할 디딤돌이다. 모든 국민의 손에 들려주어야 할, 진정 우리의 고전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함석헌 평전』

김성수 지음, 삼인, 2011


『역사란 무엇인가』

에드워드 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까치, 2015


『한국의 정체성』

탁석산 지음, 책세상, 2008






이원석 - 문화연구자



책으로 널리 세상을 밝힐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글을 쓰는 작가다. 첫 단행본인 『거대한 사기극』으로 2013년 한국출판평론상 우수상을 받았다. 이후로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공부란 무엇인가』『인문학 페티시즘』『공부하는 그리스도인』『서평 쓰는 법』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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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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