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고전으로서의 성서, 민중의 책 성서

인문 분야 『역사와 해석』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사와 해석』

안병무 지음, 한국신학연구소, 1998







고전으로서의 성서, 민중의 책 성서


최형묵 - 한국민중신학회 회장






세계 신학계에서 한국 신학 하면 곧 민중신학으로 통한다.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된 이래 형성된 고유한 신학 사상에 대한 세간의 평가이다. 그 민중신학에 대해, 독일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종교개혁 이래 성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형성된 최초의 신학”이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수년 전 한국 방문 강연회에서 한 청중의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성서 해석의 역사에서 종교개혁이 중대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종교개혁은 성서를 교회 권력자들의 손에서 민중의 손에 건네줌으로써 권력에 의해 독점되었던 성서를 해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달이 큰 몫을 하였음은 물론이다. 이를 계기로 성서를 성서 자체에 따라 재해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것은 곧 현존하는 질서를 절대시하고 지배 체제에 대한 순응을 강요한 권력의 시선에 따른 성서 해석을 거부하고, 성서 자체에 의거하여 성서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였다. 이로부터 풍요로운 성서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고, 종교개혁 이래 꽃 피운 신학들은 그 풍요로운 해석을 기반으로 하였다.


몰트만의 견해는, 민중신학의 등장이 그에 필적할 만한 또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는 놀라운 평가이다. 안병무의 『역사와 해석』은 바로 그 민중신학적 성서 해석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대표작 가운데 하나다. 과연 어떤 점이 종교개혁이 가져다준 성서 해석의 변화에 필적할 만큼 독창성을 띠는 것일까? 저자 안병무의 말을 직접 인용해보자. “민중을 만난 후 성서만큼 민중적인 고전이 없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게 됐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성서를 민중 사건의 증언, 곧 민중 해방의 사건에 대한 증언으로 보고 있다는 데 그 독창성이 있다. 이것은 성서라는 책을 대하는 분명한 하나의 시선을 함축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시선이 포착하게 된 성서의 일관된 맥이 무엇인지 밝혀주고 있다. 이 책이 그 최종 판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는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내력이 있다.


이 책은 1970~1980년대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저 책상물림에 지나지 않은 한 성서학자의 간단한 저작이 아니라 민중의 삶의 현장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안고 분투하였던 실천적 신학자의 삶과 사상이 응축된 열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음이 답을 결정한다.” 저자 안병무의 지론이었다. 이 책은 당대 민중의 현실에서 제기되는 물음을 안고 성서의 세계를 파고들어 간 저자의 공력과 통찰이 돋보이는 저작이다.


이 책은 원래 1972년 『역사와 증언』이라는 이름을 달고 문고판으로 출간되었다. 그 출간 시기는 1970년 전태일 분신사건, 그리고 1972년 10월 유신체제의 등장으로 한국현대사에서 예사롭지 않은 시절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시대에 성서를 통해 어떤 답을 구하고자 했던 젊은이들에게 성서의 세계를 안내하고자 하는 의도로 저술되었다. 그 시대적 요구에 잘 맞았던 탓일까. 처음 그 책은 19판을 거듭하였고, 그에 책임감을 느낀 저자가 개정판을 내놓게 된 것이 1981년이었으며, 그때 이 책은 오늘 전해지는 『역사와 해석』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이 다시 12판을 거듭한 후에 1992년 증보판으로 그 최종적 판본이 완성되었다. 판본을 거듭하여 최종 증보판에 이르기까지 성서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심화되었고, 그 변화된 인식은 이 책에 여실히 반영되었다.


사실 처음 이 책이 나온 때는 전태일 사건 직후 민중신학적 인식이 막 움트는 시기였지만, 저자에게서 민중신학적 인식은 아직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성서를 대하는 기본 시각으로 제시한 것이 “고전으로서의 성서”였다. 물론 이 시각은 저자의 민중신학적 사유가 깊어진 이후 1992년 증보판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저자 자신이 밝히고 있다시피 판을 거듭하는 가운데 민중신학적 시각으로 일관되게 성서를 꿰려는 의도가 더욱 분명해졌고, 그에 따라 일부 내용이 추가 보완되었다. 그래서 도달한 결론이 성서는 “민중적인 고전”이라는 것이었다.


애초 “고전으로서의 성서”를 강조했을 때 뜻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특정한 종교의 경전으로서의 성서가 아니라 인류 역사의 공통된 다른 고전들과 마찬가지로 성서를 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샛말로 “인문학적 접근”이라고 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열린 시선으로 성서를 바라보았던 저자는 마침내 1970~1980년대 한국 현대사 한복판에서 등장한 민중에 대한 분명한 체험을 하면서 성서가 바로 그 민중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민중을 발견하고 다시 마주하게 된 성서에서 저자는 이제 피 튀기는 삶의 현장에서 분투한 민중들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민중의 고통과 좌절,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결코 저버릴 수 없는 구원의 희망을 증언하는 책이 곧 성서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 증언을 당대의 시선에서 온전히 해석하고자 하는 의도를 책에 담아내고 있다.


일반적 통념으로 보자면, 성서란 특정한 민족의 이야기이거나 특정한 종교의 경전에 지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특정한 민족의 이야기라면 바로 그 민족에게나 어떤 교훈을 지닐지언정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별 의미가 있을 수 없다. 특정한 종교의 경전이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또한 특정한 종교의 경전이라 할 때 그 내용은 대개 그 종교의 특수한 계율들로 가득 차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책은 그 통념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민중적 고전으로서의 성서”라는 저자의 입장은 그 특수한 경계를 넘어선 성서의 세계를 오늘의 독자들에게 펼쳐 보여주고 있다.


성서가 한 민족의 역사와 삶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 이야기들은 그 특정한 민족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인간사회라면 공통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삶의 정황과 그 안에서 분투한 사람들의 좌절과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성서가 전하는 계율들은 그 삶의 정황 가운데 특수한 맥락에 위치한 일부를 차지하고 있을 뿐 결코 전부는 아니다. 굳이 문학적 양식으로 말하더라도 성서는 가능한 모든 문학적 양식이 망라되어 있을 만큼 다양하다. 성서는 그 다양한 표현양식을 통해 구원을 향한 인간의 갈망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는 서사다.


“성서 서사의 위력은 인간의 해방, 압제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 사회적 평등의 추구 등 시공을 초월한 여러 가지 주제를 설득력이 강하고 명확하게 표현한 데서 우러나온다. 성서는 모든 인간사회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공동의 기원, 체험, 운명의식에 대한 뿌리 깊은 의식을 웅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성경: 고고학인가 전설인가』)


『역사와 해석』은 한국 민중의 현실에서 성서가 갖는 그 의의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오늘 한국사회에서 성서는 심각한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물질을 숭배하고 자기를 숭배하는 우상화의 논리와 사회적 소수자를 배척하는 차별의 논리가 성서에 근거하여 정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서를 통해 그러한 논리들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 마땅한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역사와 해석』은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히브리 민중사』

문익환 지음, 정한책방, 2018


『민중신학의 탐구』

서남동 지음, 동연출판사, 2018


『민중신학 이야기』

안병무 지음, 한국신학연구소, 1991






최형묵 - 한국민중신학회 회장



연세대 졸업, 한신대 대학원에서 기독교윤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천안살림교회 목사, 한신대 외래교수, 한국민중신학회 회장,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운영위원 등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 『뒤집어보는 성서 인물』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공저) 『반전의 희망, 욥』『한국 기독교의 두 갈래 길』『한국 근대화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평가』 역서로 『무함마드를 따라서- 21세기에 이슬람 다시 보기』 등이 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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