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구쁘다를 아십니까

인문 분야 『우리 글 바로 쓰기』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글 바로 쓰기』

이오덕 지음, 한길사, 2009







구쁘다를 아십니까


김세나 - 콘텐츠큐레이터




얼마 전 『대한외국인』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외국인과 한국인이 나와 퀴즈 대결을 펼쳤다. 마지막 10단계에서는 ‘구쁘다’의 뜻을 묻는 질문이 나왔는데, 생소한 단어 등장에 출연진들 모두가 당황했다. 게다가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정답을 맞혀 모두 놀라워했다. ‘구쁘다’는 ‘고프다’와 비슷한 말로, ‘배 속이 허전하여 자꾸 먹고 싶다’ 또는 ‘먹고 싶어 입맛이 당기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방송 이후 ‘구쁘다’가 포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른 걸 보면, 이 단어의 뜻을 잘 몰랐던 이들이 많았던 듯하다. 각종 줄임말이 유행하는 요즘 '구쁘다'도 “구혜선처럼 예쁘다” 같은 줄임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 아름다운 우리말이라며,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오늘날 우리말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쓰는 이가 얼마나 될까. 일찍이 교육운동가이자 아동문학가인 이오덕 선생은 우리 말과 글을 바로 쓰는 일은 밖에서 들어온 불순한 말을 먼저 글 속에서 가려내어 깨끗이 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일체의 외래어 사용을 반대했고, 한글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은 번역투의 어법이나 일본식 언어, 지식인층이 쓰는 어렵고 생경한 한문 투의 문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쓸데없이 복잡한 문장에도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이오덕 선생의 저서 『우리 글 바로 쓰기』에서는 우리 말과 글을 제대로 바르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에 따르면 잡스러운 말을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중국글자말, 둘째는 일본말, 셋째는 서양말이다. 우리 민족은 오랜 시간 한자를 써온 데다가 일제 치하에 일본말도 함께 써온 터라 ‘-적’ ‘-에서의’ ‘-의’ 등 일본 한자말과 일본어투가 많다.


예를 들어 우리말에서는 토씨 ‘의’를 잘 쓰지 않고 흔히 생략한다. ‘우리 집’ ‘아빠 구두’ ‘엄마 가방’ 같은 말을 ‘우리의 집’ ‘아빠의 구두’ ‘엄마의 가방’ 식으로 잘 말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어에서는 ‘の’와 같은 관형격 조사가 문장에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를 따라 쓰다 보니 꼭 쓰지 않아도 될 ‘의’가 우리 문장에서 자주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오덕 선생은 “지금 우리말에서는 다른 어떤 바깥말의 오염보다도 토씨 ‘의’를 함부로 쓰는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라고 했다. 책에는 우리말에서 토씨 ‘의’가 왜 잘 쓰이지 않는지부터 ‘의’를 될 수 있는 대로 없애야 알기 쉬운 글이 된다는 걸 여러 예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레크레이션(놀이), 일러스트레이션(삽화), 오리엔테이션(예비교육), 이미지(심상), 스케줄(일정) 등을 안 써도 좋은 서양말이라며, 모두 알맞은 우리말로 바꿔 써야 한다고 일갈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말을 우리말답지 않게 만들고 있는 사례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주장을 뒷받침해간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넋이 빠진 겨레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고 탄식하면서 말이다.


이오덕 선생이 이토록 밖에서 들어온 말들에 대해 걱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말들은 말과 글을 공연히 어렵게 만들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깨뜨린다. 우리 생각과 삶에 꼭 붙은 표현이 아니라서 자꾸 쓰다 보면 남의 나라 사람들의 감정이나 생각의 체계, 생활태도를 따라가게 된다. 말과 글이 따로 떨어져 우리 삶과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으니, 말과 글이 민중을 등지게 되고,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도 비민주로 되기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1988년 제3회 단재상을 받으면서 한 연설에서 말과 글에 대한 그의 생각을 오롯이 알 수 있다.


“말이 근본이다. 글은 말에서 생겨난다. 그런데 지식인들의 글은 말에서 너무 멀리 떠나 있다. 글이 살아 있는 말이 아니고, 삶에서 우러난 겨레의 말법으로 쓰는 글이 아니고, 글에서만 쓰는 말, 밖에서 들어온 말, 남들이 쓰는 말을 따라서 쓰는 글이 되었다.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은 무식하고, 생각이 얕다고 생각한다. 말을 떠난 글이 이제는 횡포를 부려 순수한 우리말을 쫓아내고 주인 노릇을 하면서 겨레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려 하고 있다. 즉 말이 으뜸이던 역사가, 글이 으뜸이 되어 말이 글의 지배를 받는 잘못된 역사가 되었다. 이제라도 어머니가 가르쳐준 말, 조국이 가르쳐준 말, 내 말을 도로 찾아 배워야겠다.”


『우리 글 바로 쓰기』가 의미 있는 이유는 단순히 외래어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까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글 쓰는 사람들의 필독서로 손꼽히는가 보다. 물론 한편으로는 이오덕 선생의 주장을 세계화와 인터넷의 발달 등 사회 변화는 무시하고 언어의 역사성을 거스르는 행위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한 예로 ‘먹거리’라는 단어를 들 수 있다.


실제로 2011년 이전만 해도 ‘먹거리’는 표준어가 아니었다. ‘-거리’는 ‘내용이 될 만한 재료’라는 뜻의 의존명사로 때로는 접사처럼 붙어 또 다른 낱말을 만들어낸다. ‘국거리(국+거리)’ ‘군것질거리(군것질+거리)’에서 볼 수 있듯 명사 뒤에서는 바로 이어서 붙고, ‘읽을거리(읽-+-을+거리)’ ‘볼거리(보-+-ㄹ+거리)’처럼 동사나 형용사 뒤에서는 어미 ‘-을’과 함께 연결되어 쓰인다. 우리말에서 어미 없이 동사나 형용사로 명사를 꾸밀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먹거리’는 ‘읽을거리’ ‘볼거리’를 ‘읽거리(×)’ ‘보거리(×)’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먹을거리’라고 부르는 게 맞다.


이오덕 선생도 ‘먹거리’를 잘못된 조어라고 비판했었다. 그러나 2011년 ‘먹거리’는 표준어가 되었다. 어법에는 맞지 않지만 많이 쓰이기 때문에 표준어로 인정한 것이다. 이렇듯 모든 언어는 고정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나 환경에 따라 생성·변화·소멸한다. 그래서 우리말을 철저하게 지키고자 한 국어 순결주의자 이오덕 선생의 주장이 다소 과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은 올바른 우리말을 구사하기 위해서 『우리 글 바로 쓰기』를 꼭 읽어보라고 권면했던 유시민의 말로 대신하려 한다.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글이 병든 줄도 모르고 오히려 이오덕 선생의 주장이 지나치거나 극단적이라고 말한다. 그대로 다 지키려고 하면 손발이 묶인 것 같아서 글을 쓰기 어렵다고도 한다. 옳지는 않지만 일리 있는 지적이다. 『우리 글 바로 쓰기』는 너무나 철저하다. 그대로 다 따르기는 어렵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늘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저마다 할 수 있는 만큼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내가 겪은 바로는, 많이 받아들일수록 못난 글을 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만큼은 분명하다. (중략) 나는 이오덕 선생이 글공부에 관해서는 당대의 명의(名醫)였으며, 『우리 글 바로 쓰기』는 효과가 뛰어난 백신이라고 생각한다.”(『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 권정생 지음, 양철북, 2015


『내 생애 첫 우리말』

윤구병 지음, 천년의상상, 2016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박남일 지음, 서해문집, 2004







김세나 - 콘텐츠큐레이터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출판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자로 일했다. 2016년에는 ‘온 국민 우리말 바로 쓰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금은 맞고 그땐 틀리다」 방송을 진행했으며, 2017년에는 지역서점 ‘세렌북피티’를 설립하고 운영하기도 했다. 현재는 출판프리랜서들을 위한 플랫폼 ‘퍼블리랜서’를 만들고 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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