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

경기문화재단

우리 역사소설의 영원한 모범

문학-현대-산문 분야 『임꺽정』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임꺽정』

홍명희 지음, 박재동 그림, 사계절, 2008








우리 역사소설의 영원한 모범


강영주 - 상명대 명예교수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은 백정 출신 도적 임꺽정의 활약을 통해 조선시대 민중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린 대하 역사소설이다. 이 작품은 1928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조선일보〉에 연재되어 폭넓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일제 말에 출판되자 전 문단의 찬사를 받으며 우리 근대문학의 고전이라는 정평을 얻었다. 그런데 해방 후 홍명희가 월북하여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낸 까닭에 이 책은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다가, 1980년대에야 다시 출판되어 지금까지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홍명희는 도쿄 유학 시절의 절친한 벗이던 최남선, 이광수와 함께 ‘조선의 세 천재’라 불리며 신문학 창시자의 한사람으로 간주하던 인물이다. 그가 남긴 소설은 『임꺽정』 단 한 편뿐이지만, 이 책은 전10권에 달하는 장편 거작인 데다가 한국근대문학사상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될 만하다. 『임꺽정』은 식민지시기에 발표된 우리 소설 중 가장 규모가 큰 대하소설이다. 이 작품은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 각 1권씩과, 「의형제편」 3권, 그리고 말미가 미완으로 남은 「화적편」 4권을 포함하여 전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은 임꺽정을 중심한 화적패가 아직 결성되기 이전인 연산군 때부터 명종 초까지의 정치적 혼란상을 폭넓게 묘사하는 한편, 백정 출신 장사 임꺽정의 특이한 가계와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의형제편」은 ‘박유복이’ ‘곽오주’ ‘길막봉이’ ‘황천왕동이’ ‘배돌석이’ ‘이봉학이’ ‘서림’ ‘결의’의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는 후일 임꺽정의 휘하에서 화적패의 두령이 되는 주요인물들이 각자 양민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청석골 화적패에 가담하기까지의 경위를 그리고 있다. 「화적편」은 ‘청석골’ ‘송악산’ ‘소굴’ ‘피리’ ‘평산쌈’ 그리고 미완된 ‘자모산성’의 6장으로 되어 있으며, 임꺽정을 중심한 청석골 화적패가 본격적으로 결성된 이후의 활동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는 화적패들이 지방 관원들을 괴롭히거나 토벌하러 나온 관군과 대적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홍명희는 애초부터 󰡔임꺽정󰡕 전체를 몇 개의 편으로 나누되, 각 편이 독립성을 지니는 형태가 되도록 구상했다고 한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임꺽정』의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 「의형제편」 「화적편」은 각기 별개의 장편소설로 읽힐 수 있을 정도로 독립성이 강하다. 게다가 「의형제편」과 「화적편」도 각 장이 한 편의 중편소설이라 해도 좋을 만큼 독립성이 뚜렷하다. 그러므로 대하소설을 읽는 데 부담을 느끼는 독자들은 󰡔임꺽정󰡕 중 가장 뛰어난 부분인 「의형제편」만 읽거나, 「의형제편」 중에서도 신세대들이 좋아하는 ‘황천왕동이’장이나 ‘이봉학이’장만 읽어도 작품의 독특한 맛을 느끼고 즐길 수 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역사소설들은 지배층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궁중비화나 권력투쟁을 다룸으로써 통속적인 흥미를 자아내려고 한다. 이와 달리 『임꺽정』은 주인공 임꺽정을 비롯하여 다양한 신분의 하층민들을 등장시켜, 당시의 민중생활을 폭넓게 묘사하고 있다. 또한 의도적으로 임꺽정의 전기 형식을 피하고, 청석골의 여러 두령도 그에 못지않게 큰 비중을 지닌 인물로 그리고 있다. 이와 아울러 주목할 것은 주인공을 결코 영웅으로 미화하지 않은 점이다. 임꺽정은 휘하의 두령들과 마찬가지로 남다른 능력과 함께 인간적인 약점도 지닌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이 책은 세부 묘사가 정밀하고 조선시대의 풍속을 탁월하게 재현한 리얼리즘 소설이다. 다양한 계층의 인간들이 등장하는 데다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에 대한 묘사가 매우 풍부하여, 그 자체만으로도 독특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홍명희는 “『임꺽정』만은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情調)로나 모두 남에게서는 옷 한 벌 빌려 입지 않고 순조선 거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 이것이 나의 목표였습니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에 따라 『임꺽정』은 이야기투의 문체를 취하여 구수한 옛날이야기의 한 대목을 듣는 듯한 친숙한 느낌을 준다. 곳곳에 전래 설화가 삽입되고 조선시대 풍속들이 다채롭게 묘사되어 있으며, 고유한 우리말과 속담들이 풍부하게 활용되고 있다. 『임꺽정』의 등장인물들은 순박하고 인정이 넘치며 밑바닥 삶의 고난을 해학으로 넘기는 민중적 지혜를 지닌 인물들로 묘사되어, 조선시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임꺽정』은 『수호지』나 『홍길동전』과 같은 의적소설의 계보에 속한다. 또한 구성방식이 『수호지』와 유사하고, 야담과 야사에서 소재를 취했으며, 이야기투의 문체를 구사하고 있는 점에서 동양문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임꺽정』은 등장인물을 각 계층의 전형으로서 형상화하고, 장면 중심의 객관적 묘사에 치중하며, 극도로 치밀한 세부 묘사를 추구한 점에서 한국 근대소설 중 어떤 작품보다도 서구 리얼리즘 소설의 성과를 훌륭하게 소화한 작품이다. 구성방식에서는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쿠프린의 장편소설 󰡔결투󰡕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다.


『임꺽정』은 남북한을 막론하고 우리나라 역사소설가들에게 널리 영향을 미쳤다. 분단 이후 남한에서 가장 많은 역사소설을 집필한 박종화의 역사소설들과 황석영의 『장길산』, 북한 역사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과 최근 남한에서 영화화된 홍석중(홍명희의 친손자)의 『황진이』 등은 특히 『임꺽정』의 영향을 크게 받은 작품들이다.


홍명희는 학자로서도 높이 평가되었을 정도로 조선사와 조선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현대 작가 중에 홍명희처럼 조선조 말에 명문 양반가에서 태어나 종들까지 합해 식구가 수십 명인 대가족 속에서 조선시대의 언어와 풍속을 몸소 체험하며 자란 인물은 없었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학습에 의존하여 역사소설을 써야 하는 오늘날의 작가들에게 『임꺽정』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모범이요, 우리 역사소설의 교과서와 같은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벽초 홍명희 평전

강영주 지음, 사계절, 2004


장길산 

황석영 지음, 창비, 2004


황진이

홍석중 지음, 대훈닷컴, 2006





강영주 - 상명대 명예교수



상명대학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한국근대역사소설연구」로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 유학하여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1982년부터 상명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했다. 저서로 『한국역사소설의 재인식』, 『벽초 홍명희 연구』, 『통일시대의 고전 『임꺽정』 연구』 등이 있으며, 편저(공편)로 『벽초 홍명희와 『임꺽정』의 연구자료』가 있다. 임화문학예술상(학술 부문)을 받았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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