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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한국인의 삶의 문법의 역사를 추적하다

인문 분야 『한국 철학사』 리뷰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경기천년을 기념하여 ‘새로운 경기’로 나아가기 위해 도민의 생각의 틀을 확장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야별 우수 도서 100선을 선정하였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추천과 심의로 경영경제, 과학, 문학, 문화, 사회, 아동, 인문의 7개 분야에서 200선이 엄선되었고, 10대부터 50대 이상의 경기도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100선이 선정되었습니다. 선정된 책들은 도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읽을거리를 찾는 도민에게 실질적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종 선정된 경기그레이트북스 100선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kr), 경기천년 홈페이지(ggma.ggcf.kr) 및 경기문화콘텐츠플랫폼 GGC(ggc.ggcf.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 철학사』

전호근 지음, 메멘토, 2018








한국인의 삶의 문법의 역사를 추적하다


김시천 - 상지대 교양대학 교수







철학이란 무엇일까? 이제는 빛이 바랜 낡은 물음처럼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이 문제는 언제나 우리의 삶과 마주할 때 다시금 제기된다. ‘철학’은 19세기 이래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소개되었고, “진리에 대한 탐구”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동아시아의 학자들은 철학을 “인간의 삶에 대한 성찰”이라는 의미로 수용했다. 이런 맥락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철학의 역사를 “한국인의 의식 저변에 깔려 있는 삶의 문법”으로 읽어낸 책이 있다. 바로 전호근의 『한국철학사』가 그 책이다.


전체 5부 3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신라의 원효에서 시작하여 20세기 끝자락의 무위당 장일순에 이르기까지 1300여 년에 걸친 시대를 다룬다. 그 기나긴 역사의 여정에서 저자는 심산유곡에서 울려 나오는 해탈의 염불 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유학자들이 정사하며 논쟁했던 도성의 한복판을 지나기도 하고, 새로운 지식을 찾아 머나먼 북경까지 다녀온 학자들의 여정을 따르기도 한다.


저자에게 한국철학이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해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며 그 답을 찾고자 했던 선인들의 생각의 결이다. 그러한 생각의 결들은 성덕대왕신종 같은 유물들에 새겨지고, 나아가 한반도를 살아온 수많은 사람의 삶에 일종의 문법처럼 새겨진 흔적이다. 그래서 불교, 도교, 유교라는 구분은 한국인의 삶의 문법에서, 흐름은 다르지만 우리의 삶의 결을 구성해온 그 무엇으로 엮인다.


한국사의 역사 서술이 단군에서 시작된다면, 한국철학사의 첫 새벽이 원효에서 시작되는 이유는 그런 삶의 문법에서 도출된다. 중국으로 유학을 가고자 했으나, 유학을 가던 중에 해골 속의 물을 달게 마셨다가 아침에 일어나 해골의 물을 마신 걸 알고 구토하고 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원효의 이야기는 결국 이러한 삶의 문법을 잘 대변한다. 중국에 있든 한국에 있는, 세속에 있든 산속에 있든 중요한 것은 제대로 생각하는 데 있음을 아는 것, 바로 그것은 원효가 한국불교뿐만 아니라 한국철학의 첫 새벽이 된 까닭이다. 따라서 한국철학사가 따라야 할 여정은 그 “한국인의 삶의 문법”을 일궈낸 사유를 추적해가는 일이다.


달리 말해 저자는 삼국시대 원효부터 20세기 장일순에 이르는 한국적 사유의 특징을 “양극단을 통합하고 상대를 포용하는 관점”에서 파악한다. 한국철학의 첫 새벽을 원효에서 찾았던 까닭은, 신화적 사유와 구분되면서 이성에 호소하는 철학이자 당시 불교 사상계의 이론적 대립을 극복할 대안으로 원효가 ‘화쟁론’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화쟁’은 온갖 쟁(諍)을 화(和)한다는 논리로 사회적 삶이 분열되고 갈등이 격화될 때마다 등장하는 중요한 한국적 삶의 문법이자 원효 사상의 핵심이다. 이러한 시각은 한국 현대철학까지 이어져, 서양 철학을 ‘수용’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한국인의 삶을 위한 ‘융합’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유영모, 함석헌, 장일순이 현대 철학자로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100여 년간 한국철학의 역사를 그려내고자 한 책은 여러 권이 있다. 그러나 대개의 저술들은 주로 유학과 불교, 도교를 분야별로 정리한 책들이거나 다양한 전공을 한 학자들이 각자의 맥락에서 해당 주제나 인물들을 소개하고 논평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 일반적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최초로 한국의 지성사를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시각에서 읽어내고자 한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보여주는 매력과 특징은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책이 한국철학의 독자성과 고유성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저자는 “수천 년 동안 장구한 사유를 이어 온 동아시아 전통 지식인들의 오래된 고민이 반영된 결과임을 밝히고자” 했다. 유학이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 공자가 창시한 것이라거나, 도교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서 유래하여 삼국 시대에 한반도에 수용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만난 철학자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나를 채워주고 내 영혼의 일부가 되었다”라고 하듯이, 지난 역사 과정에서 우리들의 삶을 채워주고 우리 영혼의 일부가 되어 삶의 문법이 된 사유와 고뇌의 흔적을 찾아 나가는 여정이 바로 이 책이 따라가는 길이다. 그가 승려인지 유학자인지, 문인인지 철학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은 일종의 지성사와 철학사의 경계, 문학사와 종교사의 벽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그 궤적을 따를 뿐이다.


이 때문에 저자는 『고려사(高麗史)』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같은 역사 문헌에서부터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동경대전(東經大全)』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많은 문헌들을 원용하며 한국철학사의 사유의 흔적을 재구성한다. 때로는 원효와 의상(義湘)처럼 철학자들을 대조하기도 하고, 때로는 태극(太極) 논쟁, 사칠(四七) 논쟁 등 철학사의 중요한 논쟁들 다룬다. 그 외에도 교종과 선종, 성리학과 양명학, 서학과 동학 등 대립되는 철학적 사조와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기나긴 역사 시기와 수많은 인물을 다루면서도, 저자는 핵심적인 주제를 논의할 때 고립적인 방식으로 서술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동양과 서양의 철학을 비교하면서 한국적 사유의 특징을 포착하여 그 차별성을 드러내 준다. 예컨대 주자학과 칸트 윤리학의 유사점을 통해 주자학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하거나, 18세기 조선의 백과전서파와 유럽 계몽사상가가 어떻게 같고 다른가를 알려주는 식이다. 이런 서술은 한국의 철학적 사유가 주변 세계와 교류하면서 발전하고, 스스로의 역사와 삶의 영역에서 사유를 개척해 왔음을 동시에 보여주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흔히 철학의 역사는 “부친 살해의 역사”에 비견되곤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헤겔은 칸트를 비판하면서 스스로의 철학을 정립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철학의 역사를 다른 시각에서 살필 수 있음을 목도하게 된다. 철학이 지혜의 추구이고 진리를 향한 노력의 산물이라면, 그 지혜와 진리는 언제나 우리가 발 디디고 서 있는 삶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한국철학사』의 현대철학이 강단에 섰던 박종홍과 월북한 신남철, 태백산으로 들어간 박치우가 나란히 현대철학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함께 있고, 우리 삶이 그래왔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우리 삶의 문법이 다양했음을 보여주려는 또 하나의 시각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삶의 문법을 통해 분단과 이념을 넘어서는 또 다른 ‘화쟁’을 보여주는 시도이자 그 정신이다. 많은 독자에게 공감되고 널리 읽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한국철학스케치』(전2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지음, 풀빛, 2007


『한국철학에세이』

김교빈 지음, 이부록 그림, 동녘, 2008


『한국현대철학사론』

이규성 지음,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김시천 - 상지대 교양대학 교수



상지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2014년부터 고전과 인문학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인문학 전문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를 제작,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철학에서 이야기로』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무하유지향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논어 학자들의 수다, 사람을 읽다』 등이 있다.




세부정보

  • 주최/ 경기도

    주관/ 경기문화재단

    선정위원/ 한기호 위원장(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김종락(대안연구공동체 대표),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강양구(코리아메디케어 콘텐츠본부장),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진행/ 김세나(콘텐츠큐레이터), 윤가혜(경기문화재단), 김민경(경기문화재단)

    문의/ 문화사업팀 031-231-0849

@참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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