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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여주 흔암리 선사유적 驪州 欣岩里 先史遺蹟

경기도기념물 제155호




<여주 흔암리 선사유적>은 청동기시대 전기의 대표적인 마을 유적이다. 이 유적은 현지 주민의 제보로 고故 김원룡 교수가 지표에서 채집한 석기, 토기들을 1962년 학술지에 소개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서울대학교박물관과 고고인류학과가 1972년부터 1978년까지 7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집자리 16기를 확인하였다.


여주 흔암리 선사유적 항공사진,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유적은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해발 123m 야산 정상부와 이곳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 상에 위치한다. 집자리는 긴 네모꼴이며, 규모는 11.6~42 평방미터로 다양하다. 집 규모로 보았을 때, 결혼을 한 단혼 가족 내지 3대에 걸친 대가족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 내부에서는 화덕 자리와 기둥 구멍, 그리고 저장 구덩이가 조사되었다. 화덕 자리는 집자리 중앙에 놓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한쪽에 치우쳐 있다.


 

여주 흔암리 7호 주거지 수혈벽 및 토기출토 상태, 1997 ©서울대학교박물관


집자리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았을 때, 남성과 여성의 작업 공간이 나뉘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화덕 자리에 가까운 공간에서 여성들은 주로 요리와 방직 작업을 하였고 남성들은 출입구에 가까운 공간에서 석기를 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자리에서 출토된 토기는 구멍무늬, 골아가리무늬, 겹아가리짧은빗금무늬 등을 단독으로 새기거나 모든 무늬가 시문된, 이른바 흔암리식토기가 있다. 또한 굽다리접시 모양의 붉은간토기와 흙으로 만든 그물추가 출토되었다. 석기는 간돌검·돌화살촉·바퀴날도끼·돌도끼·반달돌칼·돌보습·갈돌·갈판·가락바퀴 등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12호 집자리에서 다량의 탄화미와 보리·조·수수 등의 곡물이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흔암리 청동기인들은 먹거리를 위해 농경과 더불어 사냥, 어로, 채집을 병행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불에 탄 벼·화살촉·반달돌칼·구멍띠토기), 1997 ©서울대학교박물관


유적 연대는 출토된 유물과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를 참고할 때, 기원전 8~6세기 무렵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규모의 청동기시대 유적이 조사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문토기 편년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를 제공하였다는 점, 그리고 우리나라 민무늬토기의 계보와 관련하여 많은 연구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학사적으로 높게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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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정보

  • 시대/ 청동기시대

    규모/ 일원 집터 / 16기

    / 지정구역 48,999㎡

    주소/ 여주시 점동면 흔암리 1-1

    지정일 / 1995.08.07

    소유자 / 여주시

    관리자/ 여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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