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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한응인 묘역 韓應寅 墓域

경기도기념물 제157호




우의정을 지낸 한응인韓應寅(1554~1614)의 묘이다.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졸재百拙齋·한유촌韓柳村이다. 승정원주서·예조좌랑·병조좌랑·지평·정언 등을 지내고, 1584년 종계변무주청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88년 신천군수로 재직 중 이듬 해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을 적발한 공으로 호조참의가 되었고, 다음해 평난공신平難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임진왜란 때 왕을 따라 평양에 도착하여 임진강 방어에 힘썼다. 1599년 사은사謝恩使로 다시 명나라에 갔고, 그 뒤 우찬성에 올랐다. 1600년 이조판서, 다음해 호조판서·병조판서 등을 거쳐, 1605년 부원군府院君에 진봉되고, 1607년(선조40) 우의정에 올랐다. 초서草書에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백졸재유고百拙齋遺稿』가 있고,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한응인 신도비, 2008 ©안산문화원


한응인의 묘는 사사동 청주한씨 묘역 안에 위치하여 있고, 부인 전주이씨와 합장한 단묘이다. 묘역은 2계로 구분되어 있고, 상계에는 봉분과 호석·묘표·혼유석·상석이 있으며 하계에는 향로석·망주석·문인석 2기씩을 배치하였다. 청주한씨 묘역 입구 하단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신도비는 옥개방부형屋蓋方趺形이고, 건립연도는 1642년(인조20)이고, 비문은 김류金瑬(1571~1648)가 짓고, 한인급韓仁及(1583~1644)이 글씨를 썼으며, 전액은 김광현金光炫(1584~1647)이 썼다. 개석은 팔작지붕형태이고 윗면에 연판문을 조각하였다. 비신의 석질은 양호한 편이나, 총탄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한응인 묘, 2015 ©경기문화재연구원


묘표는 봉분의 정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수방부형圓首方趺形으로 윗면이 반달형태이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대석은 화강석으로 제작하였다. 망주석은 하계에 2기를 배치하였다. 운두雲頭에는 여의앙련如意仰蓮을, 염의簾衣에는 당초문을 조각하였다. 주신이 짧아 규모가 아담한 편이며, 주신에는 작은 세호細虎를 조각하였다. 문인석은 2기를 배치하였다. 형태는 금관조복형이고, 홀을 든 모습이다. 금관의 량梁은 선각으로 단순화하였고, 앞면의 폐슬이나 뒷면의 후수 장식도 선단형태만 간략화하였다. 전체적으로 평면적이고 형식화된 17세기 문인석의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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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 시대/ 조선시대

    규모/ 일원

    / 단분, 묘비 1기, 혼유석 1기, 상석 1기, 향로석 1기,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신도비 1기

    주소/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 산18-6

    지정일/ 1995.08.07

    소유자 / 청주한씨 문중

    관리자/ 청주한씨 문중

글쓴이
경기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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